<앵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블랙박스는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는 건 물론이고, 조작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현재 시판되는 블랙박스들이 이런 영상조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습니다.
김수형 기자입니다.
<기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택시가 시속 80km 가까운 속도로 그대로 달려나갑니다.
그리고는 교차로를 가로질러 나오는 오토바이를 그대로 들이받습니다.
택시 운전자는 사고 직후, 유일한 증거였던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고는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했다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정병천/서울 강동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장 : 블랙박스를 받아보니까 사고 당시에만 지워졌어요. 블랙박스를 만졌느냐 했더니, 만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지만, 경찰이 블랙박스를 국립 과학수사 연구원에 보내 삭제 영상을 복원하면서, 택시 운전자는 결국 구속됐습니다.
이 택시기사처럼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는 수준을 넘어 위조하는 것도 가능한 지 전문가와 함께 확인해봤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영상 편집기를 사용해 앞차 번호판에 간단하게 글자나 숫자를 추가해 다른 번호판을 만들거나, 블랙박스 영상에 찍힌 신호등도 쉽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위조된 영상을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에 다시 집어넣기만 하면 누구든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형중/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영상을 정교하게 변조하거나 삭제해버리면 현재 시판되는 블랙박스로는 이것을 알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험개발원 집계결과 지난 5월 현재, 차량용 블랙박스를 장착한 승용차는 220만 대로 전체 승용차의 16.7%나 됩니다.
보험사들은 차량 소유주에게 보험료를 3% 정도 깎아주면서 블랙박스 장착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상일/새누리당 의원 : 자동차 보험 가입자 중 블랙박스 장착 특약을 맺은 사람에 대해서는 영상을 함부로 위·변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블랙박스 KS 표준에는 영상삭제나 위·변조 방지 장치를 넣게 돼 있지만, KS 인증을 받은 블랙박스는 올 연말이나 돼야 출시될 것으로 보입니다.
(영상취재 : 신동환, 영상편집 : 이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