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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너목들'이 법정 드라마라고?

[데스크칼럼] '너목들'이 법정 드라마라고?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너목들')가 지난 1일 1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중반부터 꿈의 시청률이라는 20%를 훌쩍 넘기며 2회 연장까지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특히 '연하남 설정'으로 여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드라마다. 

'너목들'은 여러 장르를 오간다. 주인공 박수하(이종석 분)와 장혜성(이보영 분)의 러브 스토리가 큰 맥을 이루기 때문에 '로맨스'고, 민준국(정웅인 분)의 잔혹한 살인 행각이 드라마 전체의 긴장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스릴러'다. 여기에다 법정을 주무대로 하기 때문에, '법정 로맨틱 스릴러' 정도의 장르로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내가 만난 법조인들에게 '너목들'은 그냥 '법정 드라마'였다. 이들은 심지어 '너목들'을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의 법정 드라마'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무슨 말입니까? 당연한 질문이 이어졌다. 법정을 주 무대로 하긴 했지만, '너목들'은 엄연히 로맨스라는 게 내 생각이었으니까.

법조인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렇다. '많은 법정 드라마와 영화가 있었지만, 대부분 현실 왜곡이 심했다. 그런데, '너목들'은 매우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용어 사용, 사건 에피소드, 법정의 분위기와 디테일, 국선 변호사 등 현실 법조계를 거의 왜곡 없이 다뤘다.'는 것이다. 로맨틱 스릴러든 아니든, 법조인들에게는 이 대목이 제일 중요하니 '그냥 법정 드라마'로 와닿는다는 뜻이었다. 

박혜련 작가는 이 드라마 집필을 위해 2011년부터 2년 동안 각종 재판을 방청하며 법정을 취재했다고 한다. 대본을 쓸 때 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로부터 조언을 구했고, 대본이 완성된 뒤에는 완성본을 들고 현직 법조인들을 찾아가 감수를 부탁했다. 대본을 사전에 읽어봤던 한 판사는 "나 이전에 많은 감수를 거친 듯, 법률 용어 사용이나 재판 진행에 관한 부분에서 오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재판장 역할을 맡았던 탤런트 김광규 씨는 드라마 제작을 지원한 대법원 판사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 "<사건번호 2013 고합 0000> 같은 것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법복 입으니까 매우 더운데 여름 법복은 없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런 세세한 취재 덕분에 '너목들'에서는 '높으신 판사님'들이 더운 법복 때문에 재판을 할 때 법대 뒤에선 발 밑에 선풍기를 틀어놓는다는 장면을 담아내기도 했다. (실제 법정에서는 발 밑 선풍기는 물론이고, 체질적으로 몸이 더운 일부 판사들이 세숫대야에 물을 떠놓고 발을 담근 채 재판을 하기도 한다.)
너목들

드라마가 인기를 끌다보니 여러 언론사에서 '옥의 티 찾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기자들로부터 '너목들에서 재판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나 법률 용어 사용에 오류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변호사, 판사가 꽤 있다. 그런데 '옥의 티' 관련 기사가 없는 것을 보면 그다지 성공하진 못한 모양이다. 법조계를 제법 오래 취재한 편에 속하는 나도 드라마를 보면서 '옥의 티' 찾기를 해봤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드라마는 가상의 지명인 '연주시'를 무대로 전개됐는데, '연주지방법원'으로 나오는 장면 대부분은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이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점과 서울에서 가까워 촬영지로 적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딱 한 장면, 국선 변호인 면접을 보는 회의실 장면은 대법원에서 촬영됐다. 권위의 상징인 대법원이 처음으로 드라마 찍는데 장소를 내 준 것이다.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침 덕분일텐데, 대법원의 이런 전향적인 협조가 결국은 법조인 입장에서도 불만이 없는 '법정 드라마' 탄생에 기여한 것 아닌가 싶다.
법원

법정스토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스토리로 인기를 끈 최근의 사례다. 그러나 실제 법조인들은 '부러진 화살'의 현실 묘사에 과장, 왜곡이 심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100% 공감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너목들'은 그런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많은 법조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현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눈여겨 볼 대목이다. 예술을 하다보면 과장이나 축소가 불가피할 때도 있겠으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조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리얼리티는, 글 쓰는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나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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