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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케이블 채널 속옷 패션쇼, 거리에서 한다면?

애매한 경범죄 처벌법…해설서 나와도 '아리송’

[취재파일] 케이블 채널 속옷 패션쇼, 거리에서 한다면?
케이블 채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속옷 패션쇼. 이런 옷을 길거리에서 입는다면?

심야에 인적이 뜸한 골목길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따라갑니다. 벌써 한 달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면?

헷갈리기만 한 경범죄 처벌 규정.

먼저 처음 경우부터 보면, 속옷을 입고 길을 걸어 다니는 건 경범죄인 ‘과다 노출’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서 상의를 탈의한 차림은 처벌되지 않습니다. 드러낸 부위가 어디인지, 신체 노출 결과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느꼈는지가 판단기준입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은 어떨까요. 한 달이나 같은 일이 반복됐다면 스토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경범죄 처벌법상 이 남자는 ‘지속적 괴롭힘(스토킹)’을 한 것이 아닙니다. 스토커 처벌은 피해자가 전화나 구두, 서면으로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따라오지 말라”고 한 뒤에도 남자가 계속해서 따라와야 스토킹 혐의가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그 대신 경범죄 처벌법상 ‘불안감 조성’에는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여자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라고 하면 처벌이 어렵습니다.
애매한 경범죄 처벌

알면 알수록 헷갈리기만 한 경범죄 처벌법. 경범죄 처벌법이 만들어진 지는 벌써 60년 가까이 됐습니다. 불분명한 조항이 많다보니 10번이나 개정됐고 지난달 25일엔 애매하다는 평가를 없애기 위해 ‘경범죄 처벌법 해설서’까지 발간했지만, 시민들 입장에선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지적입니다.

해설서에 따르면 ‘과다 노출’은 ‘사회 통념, 행위의 장소나 주변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불안감 조성’의 경우엔 ‘불안감 등 주관적인 감정에 대한 판단은 평균의 일반인을 기준으로 한다’고 합니다. 결국 '그때그때 다르다‘는 건데, 일부 인권단체에선 이런 애매한 조항들이 표현의 자유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하고 나섰습니다.

애매한건 이 조항들 말고도 더 있습니다. 처벌법상 ‘구걸 행위’는 걸인이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인데 어떤 행위가 정확히 통행방해인지 정확하지 않고, ‘장난 전화’는 전화 등을 여러 차례 해서 괴롭히는 걸 말하는데 여기서 ‘여러 차례’의 기준이 불분명합니다.
애매한 경범죄 처벌

이에 대해 경찰은 “모든 경범죄 처벌을 수치화 하면 오히려 인권침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법원에서 판결을 할 때, 모든 기준을 수치화 하지 않고 이전에 판결했던 사례, 즉 판례를 검토하듯이 경범죄 처벌도 같은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경찰의 설명에도 한동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의 말대로 하자면 판단 기준이 되는 ‘판례’가 생기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시민들은 일단 문제의 소지가 되는 행위를 하면 안 되겠지만, 경찰도 일종의 형법인 경범죄 처벌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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