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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매닝 일병은 왜 배심 재판을 거부했을까…'반역죄 무죄'의 비결?

[취재파일] 매닝 일병은 왜 배심 재판을 거부했을까…'반역죄 무죄'의 비결?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에게 엄청난 분량의 비밀 문건과 동영상을 제공했던 브래들리 매닝 일병에 대한 1심 재판이 드디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미국 시간으로 7월 30일, 우리 시간으로는 31일 새벽에 1심 평결이 나왔습니다. 결론은 이미 보도가 됐듯이 이적 혐의는 무죄, 간첩법 위반 혐의 2건 가운데 1개는 무죄이고 다른 1개는 유죄, 절도, 컴퓨터 사기 등의 20개 혐의는 유죄.

적을 이롭게 했다는 반역죄가 무죄가 된 건 매닝 일병에게 이들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알카에다를 비롯한 미국의 적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인정했다는 겁니다. 이게 유죄가 됐으면 종신형의 선고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장 무거운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온 겁니다.

물론 유죄가 인정된 나머지 혐의들만 해도 형량을 다 합치면 100년이 넘는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매닝이 이미 유죄를 인정한 (guilty plea) 10개의 다소 ‘사소한’ 혐의들에 대한 형량만 해도 징역 20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매닝의 나이가 이제 25세에 불과하다고 해도 엄청난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종신형을 피한 건 매닝에겐 다행이죠.

형량도 형량이지만 무엇보다 법적으로 ‘반역자’가 되는 것을 피한 건 큰 소득입니다. 물론 매닝에게서 자료를 받아 공개했고 스스로도 이 때문에 국제적 떠돌이가 되어서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 감금돼 있는 줄리언 어산지는 이번 평결을 맹비난했습니다. 오마바 정부를 ‘국가 안보 극단주의자’라고 비난했더군요.

하지만 평결이 내려지자 담당 변호사가 살짝 미소를 지었고 그가 매닝의 귀에다 무슨 말을 하니 매닝도 아주 살짝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봐도, 엄청난 군사, 외교 기밀과 자료들을 빼돌렸고 애국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 그것도 군사 재판에서 이적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끌어냈으니 상당한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여기서 오늘 나온 기사를 조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Verdict, 즉 평결은 양형에 앞서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겁니다. 미국의 형사재판은 유무죄에 대한 평결과 그 평결 결과에 따른 양형의 선고라는 두 단계로 마무리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은 배심제이기 때문에 유무죄를 판단하는 평결을 배심원단, 즉 Jury가 하게 되죠. 그런데 오늘은 군사재판을 담당한 Denise Lind 대령이 직접 평결을 발표했습니다. 왜냐고요? 매닝 일병이 배심재판이 아닌 판사에 의한 재판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위키리크스 매닝 캡


미국에서 배심 재판을 받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입니다. 이번에 매닝이 재판받은 군사법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세부적인 배심 절차는 일반 민간 법정과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당사자는 배심원 대신 전문 법률가인 판사에게서 재판받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재판과 같은 방식을 선택하는 거죠. 이 대목은 일종의 소송 전략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봐야겠죠. 배심원단을 설득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판사를 설득하는 게 나을까 하는 판단의 결과입니다. 이번에 매닝은 대령 계급의 현역 군인 신분이기는 하지만 법률 전문가인 군 판사에게 유무죄 판단을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 언론들 중에는 이 부분을 재판 초기부터 나름 특이한 대목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Lind 판사는 처음 재판이 시작될 때부터 매닝의 몇 가지 신청을 기각했고, 매닝에게 다소 불리한 상황으로 재판을 몰고 갔다고 합니다. 매닝이 위키리크스에 넘긴 일부 기밀 문서들이 처음에는 기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치려고 했으나 기각당했다고 합니다. 또 재판에 넘기는 데 600일도 넘게 걸린 것과 관련해 120일 이내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는 매닝의 주장도 기소가 지연된 것에 합당한 면책 사유가 있다며 기각했다는 거죠.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판사라도, 대부분 자신을 반역자라고 생각하는 현역 군인들 중에서 뽑은 배심원들보다는 나을 거라는 판단을 매닝이 했을 거라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죠. 신분이 보장되는 군 판사에 비해서 보통의 현역 군인들이 매닝을 반역 행위를 한 사람으로 여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겁니다. 실제로 일반 군인들 사이에서 그런 여론이 높았다고 하더군요. 그걸 아는 매닝으로서는 이들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 보다는 그나마 독립적인 군 판사를 선택한 거죠.

어쨌든 Lind 판사는 3일하고도 16시간이나 숙고를 한 끝에 이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는 평결에 도달했습니다. 어떤 양형 결과가 나올지 지켜봐야겠지만 매닝의 전략이 일단은 성공을 한 셈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변호사들은 자신이 재판받을 일이 생기면 배심원이 아닌 판사에 의한 재판을 더 선호한답니다. 무엇보다 배심원단이 여론에 휩쓸리기 쉽고, 따라서 재판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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