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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잊혀져선 안 될 사람들'…유해발굴이 절실한 이유

[취재파일] '잊혀져선 안 될 사람들'…유해발굴이 절실한 이유
“여긴 매장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유해가 1~1.5미터 깊이에서 나란히 뉘인 채 발견되고 있어요. 아주 이례적입니다. 보통은 지표나 깊어봐야 10~20cm에서 발굴되는 게 보통이거든요.”

유해 발굴 현장은 강원도 양구, 62년 전 도솔산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습니다. 적군이 점령한 24개 고지를 탈환한 전투였는데 험난한 지형 때문에 공격이 불리한 탓에 미 해병사단도 작전에 실패한 지역이었지요. 우리 해병은 16일 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고지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도솔산 전투는 해병대 5대 작전 중 하나로 꼽힙니다.

50명이 넘는 장병들은 이 역사의 현장에서 ‘붓질’을 했습니다. 수술할 때나 쓰는 의료용 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였기에 마스크는 금세 땀에 절었습니다. 60년 넘게 땅 속에 묻힌 유해에서 이들은 조심스레 붓으로 흙을 털어냈습니다. 혹시 DNA가 섞일 수도 있어 붓은 유해 한 구에 하나만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발굴한 유해는 오동나무 관에 입관해 최고의 예우로 태극기를 감쌌습니다.

발굴을 담당한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이 현장이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 새 발굴된 전사자 유해 57구가 모두 땅 속 1미터 이상의 깊이에서 발견된 것이지요. 치열한 전투 후 미처 전우의 시신을 묻어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이 발굴 현장에는 ‘언젠가 전쟁이 끝나 아무도 우리의 희생을 알아주지 못하더라도 전우인 우리가 기억하고 예우한다’는 숭고한 뜻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이례적’입니다. 대개는 지표면이나 10~20cm의 얕은 깊이에서 유해가 발굴되는 게 보통입니다. 60년이 흐르면서 산이 깎이고 도로가 들어서고 건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온전한 유해가 발굴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찾은 유해도 나무뿌리가 뚫고 자라거나 유전자 감식이 어려운 경우가 태반입니다. 유해가 묻힌 현장을 조사하는 작업부터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까지 모든 작업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실제 지난 2000년부터 발굴된 7천 4백여 구의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건 83구에 불과합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미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한국전 미군 전사자의 유해를 찾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전사자 유해 송환을 시작한 미국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 유해는 끝까지 찾는다'는 국가적 신념을 바탕으로 기존 기관들을 통합해 지난 2003년 '합동전쟁포로·실종자확인사령부(JPAC)'를 세웠습니다. 모두 8만 3천명에 이르는 미군 전쟁포로와 실종자를 발굴해 신원 확인을 하는 기관이지요. 특히 미국은 한국전에 참전하는 자국 군인의 치아, 의료 기록 등을 미리 제출받아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나라와 달리 신원 확인을 쉽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무승부가 아니라 승리한 전투”라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기적처럼 이뤄낸 한국의 현재 모습이 곧 '승리의 증거‘라고 역설했습니다. 미국이 치켜세운 이 ’승리‘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깔려 있습니다. 승리의 결실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끝까지 찾아 기릴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앞으로 2~3년이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가족이나 전쟁 당시 살았던 지역 주민들이 고령이 돼 점차 ’전쟁의 기억‘이 사라져 간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조사부터 발굴, 신원확인까지 하나하나가 난관인 유해발굴단원들이 바라는 건 딱 하나, 제보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던 곳, 유해를 봤던 곳이라는 제보부터 스스로 유가족임을 알려 유전자 샘플 채취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덧) 유전자 샘플 채취는 가까운 보건소에서 채취에 동의한다는 문서만 작성하면 5분도 안 걸립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1577-5625(오!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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