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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정전…종전…공전

워싱턴에서 정전협정 60주년을 보내며…

워싱턴 시간으로 2013년 7월 28일 새벽 3시 40분, 서울은 오후 4시 40분이다. 일요일 새벽 워싱턴의 SBS지국으로 출근해 막 8시뉴스 기사를 송고했다. 6.25 전쟁의 총성이 멈춘지 60년,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한반도 시계의 초침은 그렇게 60년을 흘러왔고, 또 흘러가고 있다.

한국전 정전(停戰) 60주년 기념식이 워싱턴에서 열린 날, 분주한 하루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라 취재진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6.25 때 산화한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군악 연주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먼저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박근혜 대통령 특사단장인 김정훈 의원과 정승조 합참의장이 오바마의 좌우에 선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비쳤다. 헤이글 국방장관이 그 뒤에 섰다. 그리고 잠시 뒤 오바마 대통령이 연단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우리말 인사를 건넸다. 역시 대단한 웅변가였다. 참모들이 준비한 스크립트를 읽는 것이었겠지만, 청중의 가슴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here, today, we can say with confidence that war was no tie. Korea was a victory. When 50 million South Koreans live in freedom -- a vibrant democracy, one of the world's most dynamic economies, in stark contrast to the repression and poverty of the North -- that's a victory and that's your legacy."

한국전은 비긴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는 메시지였다. (일부 언론은 '한국이 이긴 전쟁'이라고 오보를 날렸지만, 오바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미국은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임을 동맹국들과 적대국들이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루전 토요일 아침 뉴스에 출연하면서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한반도 상황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제시할지 관심"이라고 끝을 맺었는데,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앞서 미 의회에서 열린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만난 한국 당국자들도 '별다른 대북 메시지가 없을 것이다',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는 상태'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었다. 6.25의 총성이 멎은지 60년. 한반도는 말 그대로 정전상태, 적대행위(hostilities)를 멈춘 휴전상태다. 전쟁도 종전(終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휴전선을 사이로 대치하며 60년을 지내왔다.

2000년 6.25 발발 50주년, 2003년 정전 50주년, 2010년 6.25 발발 60주년, 2013년 정전 60주년.. 역사는 진보한다지만 한반도의 시계는 돌고 돌아 제자리다. 천안함과 연평도, 북한의 3차 핵실험, 핵 투하까지 상정한 고강도 한미연합훈련, 미국을 핵미사일로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협박이 이어지며 한반도의 안보는 안갯속이다.

서로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겠다며 경쟁적으로 취하는 군비증강 조치가 종국에는 모두의 안보를 약화시키는 '안보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암울하다.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정전협정 기념식을 치르며 과거를 회고했지만 한반도의 미래 비전을 설계하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60년 전 초침이 멈춰버린 시계만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이다. 공전(空轉)이다.

허드너 씨는 지금쯤 어디 있을까? 88살의 노병 토머스 허드너. 온갖 기념 행사에 파묻힌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 귀를 쫑긋하게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63년 전인 1950년 허드너 중위는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였다.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다. 12월 4일, 지상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던 미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공중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그런데, 동료인 흑인 제시 브라운 소위가 조종하던 'F4U 코세어'기가 중공군의 총격을 받고 장진호 부근에 추락했다. 허드너는 자신의 전투기를 눈 덮인 동토에 착륙시키고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끝내 찌그러진 기체에서 브라운을 빼내지 못했다. 동료를 적진에 남겨둔 채 구조 헬기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브라운은 아내 "데이지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며 의식을 잃어갔다고 한다. 추락한 전투기와 브라운 소위의 시신이 적군의 손에 들어갈까 걱정한 미군은 이틀 뒤 추락 현장에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그로부터 63년이 지나 허드너씨가 북한 땅 적지(敵地)를 밟았다. 전장에서 산화한 전우 브라운 소위의 사진을 쥐고 함경도 장진호로 향했다. 북한군이 안내에 나섰다. 그런데, 하필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무너지고 길이 끊기면서 허드너 씨 일행은 도저히 장진호까지 가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북한군 인사들은 허드너 씨가 오는 9월 다시 방북해 전우의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6.25 때 전사한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을 재개했으면 한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허드너 씨 소식과 유해 발굴을 재개하자는 북한의 비공식 제안은 동행 취재에 나선 CNN과 CBS, VOA(미국의 소리) 방송 특파원들의 평양발 보도로 미국 시청자들에게 알려졌다.정전협정 60주년 기념식에 모인 참전 용사와 가족, 그리고 실종 장병들의 가족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약속했다.
오바마


"..Korea reminds us that our obligations to our fallen and their families endure long after the battle ends. To this day 7,910 Americans are still missing from the Korean war. And we will not stop working until we give these families a full accounting of their loved ones.."

한국전 실종 미군 7,910명의 생사를 완전히 파악해 가족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때까지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언적 다짐인지 전략이 깔린 구상인지 궁금하다. 현실이 암울할 수록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시간이 흘러 정전협정 70주년, 80주년, 90주년 그리고 '역사적인' 100주년 기념식을 더욱 성대하게 치러야 할까? 벌써 어제의 일이 돼 버린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을 보내며 든 짧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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