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전쟁을 전후한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진실규명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아직도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기에는 갈 길이 멀기만 합니다.
황현구 기자입니다.
<기자>
한국전쟁 직전인 지난 1949년 4월 20일, 이승만 정권은 국민보도연맹을 창설합니다.
좌익세력을 보호한다는 것이 설립 명목,
하지만 실제는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된 겁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원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희생을 당합니다.
청주 청원은 물론 도내 전역에서 보도연맹원 소탕작전이 벌어져 4천 200여 명의 양민이 무참히 학살됐습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와 충북대책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학살사건까지 포함하면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만순/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미진하나마 조사를 했는데, 이명박 정부나 현 박근혜 정부에서 이념과 관계없이 역사의 진실규명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학살은 대부분 야산에서 자행됐지만 청원군 오창 양곡창고학살사건의 경우처럼 면내 한복판에서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보도연맹원 400여 명이 양곡 창고에 갇혔다가 헌병대와 군인, 그리고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대부분 숨졌습니다.
[전정웅/오창 양곡사건 희생자 유족회 고문 : 창고에 들어가서 시체를 찾으려고 했더니 피가 얼마나 흥건한지 복숭아뼈까지 고였다.]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은 학살사건 발생 60년이 지난 뒤에 국가를 상대로 한 지리한 법정 싸움을 벌여 배상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하지만 배상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배상신청을 하지 않은 유족들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최익준/오창 양곡사건 희생자 유족회장 : 민주화나 인혁당 사건에 비해서 사실상 이 보도연맹 사건은 시간이 60년이 지난 상태에서 지금 받은 액수가 상당히 적습니다.]
억울하고 무고하게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다시 한 번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 배상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청주] 민간인 학살 사건…갈 길 먼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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