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학교폭력 대책, 처벌보다 선도 중심

[취재파일] 학교폭력 대책, 처벌보다 선도 중심
어제(23일) 정부에서 발표한 현장중심의 학교폭력 대책 보도자료는 거의 한 권의 책에 가까웠습니다. 예방교육부터 CCTV까지 학교폭력과 관련된 모든 사안이 언급됐습니다.

방대한 내용 가운데 SBS 8시뉴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이 제목으로 뽑은 것은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학교폭력으로 처벌을 받았다면 학생부에 기록하고 졸업 후에도 5년동안 보존해야했지만, 앞으론 졸업 후 2년까지로 기한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또 교내 심의에서 가해학생의 행동 변화가 있었다고
인정되면 졸업 직후 이 기록을 삭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습니다.

지난 정부에선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록과 5년 기록 보존 방안이 가장 강력한 학교폭력 억제책이라고 밀어붙여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경기.전북 교육청에서 학생부 기록을 거부했을 때, 교육부는 관련 교사들을 징계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발 물러선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어제 브리핑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그 이유를 솔직히 밝혔습니다.

"그동안 학교생활기록부에 일단 기재를 하고 나면 그것이 전혀 삭제가, 반성을 하든지 행동변화를 보이는 것과 관계없이 행동변화를 보였는데도 삭제가 안 되니까, 학생을 선도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많다, 그러니까 정말로 진심으로 반성하고 행동이 변하면 그것이 삭제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만 학생들 선도에 좀더 효율적이겠다는 현장의 요구가 많이 있었습니다."

학교폭력의 학생부 기록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 졸업 이후 삭제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교육부와 팽팽하게 대립해온 경기교육청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졸업 이후 삭제는 취업과 진학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간삭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학생부 기록을 얼마나 오래 남기느냐를 떠나서, 저는 이번 대책에서 교육철학의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다시는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해학생을 엄격하게 처벌하는데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도 반성한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철학적인 변화는 예방대책의 하나로 제시된 '대안교실'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비롯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교실을 운영하는데, 무조건 국영수 수업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관심분야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지진아, 또는 문제아로 규정할 게 아니라 이들에 대한 교육도 고민하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학교폭력 가해학생 등 부적응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충남 아산의 대안학교, <충무교육원>에 가보니 이 학교에 와서 훨씬 밝고 행복해졌다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않으면 주변인이 될 수 밖에 없는 학교의 특성상 소외됐던 자신들을 이곳 선생님들은 이해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욕설이나 생활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각급 학교에 설치되는 '대안교실'이 이 학교의 장점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요? <충무교육원>의 학생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학교폭력 가해경험이 있는 한 학생은 피해학생이 눈에 보이면 괴롭히고 싶기 때문에 분리해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고, 다른 학생은 같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별도의 반에 배치되면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 오히려 더 괴로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교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이곳에 온 학생들은 24시간 생활지도 교사가 밀착형 지도를 하는데도 위험한 행동을 하기 일쑤여서 교사들이 언제나 긴장상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일반 학교에서 특별 생활지도가 가능하겠냐는 것입니다. 특히 '대안교실'을 운영하기 위해선 헌신적인 교사들이 필수적인데, 수업시수를 줄여주는 것만으로 교사들의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우리의 소중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학교폭력의 늪에서 구하고 제대로 교육시키겠다는 정책의 방향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서 현실적인 보완책을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어제 보도가 나간 뒤, 교육부 관계자는 '대안교실' 시범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