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어디까지가 미국의 정당방위?

플로리다 짐머만 사건의 본질은…

유희준 기자 yoohj@sbs.co.kr

작성 2013.07.23 09:55 수정 2013.07.23 14: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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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플로리다 주택가에서 17세 흑인 청소년이 자율 방범대원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의 여파가 1년 넘게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뉴욕과 워싱턴 DC, 마이애미, 시카고, LA, 보스톤 등 100곳에서 조지 짐머만의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시위대는 이번에 문제가 된 ‘정당방위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건 초기에도 과잉 정당방위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우라도 총을 먼저 쓰기 전에 위험한 상황에서 피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신설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많은 흑인이 이번 사건으로 큰 고통을 느끼고 있다며 미국의 ‘정당방위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CNN에 출연해 ‘정당방위법’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정당방위법’ 재검토에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정당방위법’을 성토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법은 이른바 ‘Stand Your Ground Law’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 언론은 이를 의역해 '정당방위법'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역할 경우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의 본질과 핵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정당방위의 정확한 영어 표현은 'Self Defense'입니다. ‘Stand Your Ground’는 ‘당신의 땅을 지켜라’로 번역할 수 있는데요. 미국에서 정당방위 관련 개념에 'Self Defense'라는 용어 대신 왜 ‘Stand Your Ground’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법원

 먼저 정당방위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형법 제21조에 나오는 정당방위는 급박부당(急迫不當)한 침해에 대하여 자기 또는 타인의 권리를 방위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된 가해행위(加害行爲)를 뜻합니다. 정당방위의 기본적인 개념은 우리나라와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권리 방어를 위해 부득이하게 된 가해행위’란 부분에서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가해행위에서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부당한 침해가 이뤄진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서 정당방위의 정당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번 짐머만 사건의 핵심도 자세히 살펴보면 정당방위 자체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플로리다州에서 채택하고 있는 ‘Stand Your Ground Law'의 문제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정당방위 행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총기 사용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총기 사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총기 사용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정당방위의 행위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고, 정당방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규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나오는 개인의 총기 소유 관련 조항을 살펴볼까요?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이와 관련해 조지타운대 법대 피터 버니 교수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광활한 땅을 개척해야 했던 미국에선 총기 소유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로 간주돼 왔으며, 여기에는 국가가 개인을 온전히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관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정헌법 2조의 해석을 놓고 학설이 나뉘고 있지만, 분명한 건 현실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를 자유롭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실제로 미국의 개인 총기 보유율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인 1명 당 총기 1정을 소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론에 들어가 볼까요? 미국 대부분 주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당방위 관련 법률을 살펴보는 겁니다. 정당방위 행위와 총기 사용의 근거 규정이 바로 요즘 우리 언론에서 ‘정당방위법’이라고 쓰고 있는 ‘Stand Your Ground'와 ‘Castle Doctrine' 규정입니다.
폴리스라인
 먼저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 법은 집 주인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도망칠 필요 없이 총기로 대항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공격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위협에 물러설 필요 없이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No duty to retreat regardless of where attack takes place). 이 법은 캘리포니아와 조지아, 인디애나, 아이오와, 메사추세츠 등 미국 26개주에서 채택하고 있는데요. 짐머만 사건으로 ‘정당방위법’ 논란을 촉발시킨 플로리다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이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은 집 주인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경우 집안에 들어온 침입자를 총으로 쏴 죽여도 기소할 수 없다는 법입니다.(No duty to retreat if in the home) 코네티컷과 일리노이,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해 16개 주에서 이 법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법’과 차이 나는 부분은 정당방위의 장소를 집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위협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집 밖에서 벌어지는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 연수중 골프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미국은 골프장 안에 주택단지가 조성돼 있는데요. 어떤 집들은 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동반자 중 한 명이 친 공이 근처 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동료들이 함께 공을 찾으러 갔는데요. 누군가 집 주인 허락 없이 들어갔다 총 맞아 죽을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다들 우스개 여기로 남의 집 마당을 오가며 계속 공을 찾았는데요. 다행히 그 집에 아무도 없어 뭐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남의 집 마당에 허락 없이 들어가 공을 찾는 행위에 대한 법리 공방이 오갔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제가 살던 주는 ‘캐슬 독트린’과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모두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가 저문 저녁 시간에 골프를 치다 공을 찾으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면 집 주인이 총을 쏴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지금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핵심적인 내용은 집 주인이나 경비원이라 하더라도 정당방위를 할 정도로 심각한 위협이 있었는지 여부와 그런 위협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총기를 사용했는지 여부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아닌 과잉방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짐머만 사건의 배심원이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근거 법률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칫 과잉 방위로 무고한 생명을 뺏을 수도 있는 관련 법률을 개정하자는 게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미국 사람들의 여론이고 그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