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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름도 생소한 '라민 카림루' 열풍

[취재파일] 이름도 생소한 '라민 카림루' 열풍
올해 상반기, 나름 문화부 기자랍시고 이런 저런 콘서트를 많이 다녀봤는데요. 그 가운데서 기억에 남을 공연을 꼽으라면 조용필, 이문세 씨의 공연이 떠오릅니다.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공연장에 온 팬들 때문입니다. 나이도, 시대도 잊고 '맹목적'이었던 팬들.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도 물론 열성적이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팬 층을 넓혀온 이들의 파워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명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바로 뮤지컬 배우 '라민 카림루'입니다.

뮤지컬 배우가 무슨 콘서트냐고요. 아니 '라민 카림루'가 누구냐고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핫(Hot)한 남자 배우, 라민 카림루(이하 라민)를 먼저 소개합니다. 이란 출신의 배우 라민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과 앙졸라,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 등 주요 역할을 맡으며 20대 후반부터 이미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습니다. 특히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앙졸라 역할로 무대에 오른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 안그래도(!) 레미제라블에 푹 빠져있는 전세계 뮤지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 라민이 최근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유명한 뮤지컬 곡(일명 넘버)들에, 자작곡도 4곡이 포함됐습니다. 컨트리 풍의 노래들로 다소 오래된 느낌도 있었지만, 매번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로만 듣던 라민의 목소리를 경쾌한 기타 밴드 반주에 들으니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라민은 이 앨범 한 장을 들고 일본을 들러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티켓이 많이 팔렸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네 그렇습니다'. 이틀간, 그것도 평일에 열린 서울 콘서트 티켓은 인터넷 예매가 시작된 지 18분 만에 모두 동났습니다. 좌석이 없어 급하게 광주에서도 콘서트를 한차례 더 열었습니다. 라민은 단 한번도 한국 뮤지컬 시장에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수로 처음 연 공연이 매진이라뇨. '라민'이 뭐라고...

라민 카림루_500


국내 뮤지컬 팬들은 2,30대 여성들이 많지요. 라민의 콘서트장에도 이런 뮤지컬 팬들로 가득했습니다. 모두 유튜브나 공연 실황을 담은 DVD만으로 라민을 알게됐다가, 이번 기회에 직접 보겠다고 힘겹게 공연장에 온 팬들입니다. '진짜 내한할 줄 몰랐다', '실제로 보니까 심장이 두근거린다', '목소리가 예술이다' 등등. 조용필, 이문세 씨의 공연장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라민을 보러 온 팬들의 열성은, 이미 티켓을 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용하지만 강렬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매니아 층에 국한된, 일부에 치우친 현상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제 눈에는 좀 달랐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커졌고, 팬들이 그만큼 많고, 또 배우에 대한 팬들의 믿음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얘기입니다.  

10만원 안팎의 뮤지컬 공연 티켓. 선뜻 지갑 열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엔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뮤지컬 작품들이 널렸습니다. 예전엔 영화관으로 향하던 사람들도, 여유가 되면 하나 봐 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공연을 보고나면 뮤지컬 넘버가 담긴 OST, 공연실황 DVD 등 다양한 상품들이 줄줄이 팬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합니다. 음반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공연의 감동을 간직하고 싶은 소장가치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배우가 직접 나서서 콘서트를 연다는 건 뮤지컬 작품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효과를 낳게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라민의 가수 활동은 외국 뮤지컬 시장에선 작품이 무대에 오른 연장선상에서 가능하다면 언제나 일어날 법한 활동인 셈입니다. 사라브라이트만, 마틴 매커친 등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유명한 이들 배우도 뮤지컬에서 이미 큰 호응을 얻은 배우들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합니다.

우리나라 배우들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최근 뮤지컬 배우 홍광호 씨가 대형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쳤고, 전동석, 김승대 씨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음반을 발매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옥주현 씨도 뮤지컬 넘버들로 연말에 미국에서 콘서트를 열 계획입니다. 가수 활동이라는게, 매번 무대에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는 이들에게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닐 겁니다. 예전엔 가수들이 종종 뮤지컬 무대에 섰다면, 이젠 뮤지컬 무대에 익숙한 배우들이 가수들처럼 콘서트를 여는 형식입니다. 외국 배우들처럼 도전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도들이 이제 시작 단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시도의 배경에 든든한 팬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그만큼 성장했고, 다방면으로 능력있는 배우들에 힘입어 한번 더 뮤지컬의 부가가치도 한번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작품이 좋으니 봐달라' 라고만 하는 것보다 영리한 접근 방식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공연은 팬들이 지갑을 여는게 아깝지 않도록 정성껏 만들어야 겠지요. 하지만 이미 팬층을 확보한 배우들에겐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닐겁니다. '안그래도 작품에 푹 빠진' 팬들의 마음은 늘 열려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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