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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포통장도 필요 없다"…진화하는 피싱 사기

[취재파일] "대포통장도 필요 없다"…진화하는 피싱 사기
한 달 전쯤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인데, "쇼핑몰의 거래통장을 피싱 사기 계좌로 신고 해서 지급정지시켰으니, 정지된 것을 해지하고 싶으면 자신한테 돈을 달라"며 협박이 왔다는 내용입니다. 안타깝게도 제보하신 분과 연락이 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금감원에 물어보니 이렇게 허위로 정지시키면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고, 피해자가 빨리 이의신청 등의 대응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거래통장이 정지되면 피해가 작지 않을 텐데, 그리고 피싱 때문에 별별 일이 다 생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수록 기발해지는 피싱

그런데 피싱 사기 자체도 기발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수법을 얘기하려면 '대포통장'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요, 아시다시피 사기범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남의 명의로 된 대포통장을 주로 씁니다. 노숙자들의 명의를 쓰거나, 인터넷에서 파는 통장을 사다가 쓰는 거죠. 피싱 사기 근절에 나선 정부도 이 점에 착안해서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대포통장 근절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통장을 발급할 때 단기간에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드는 사람은 목적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고, 또 사기의심계좌의 경우는 은행들끼리 계좌정보를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대포통장 모집책과 유통책, 계좌 명의제공자 등을 단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범인이 곧바로 돈을 찾지 못하게 하는 지연 인출 제도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300만 원을 넘으면 돈을 보내자마자 바로 찾아가지 못하고 10분간 계좌에 묶이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그 사이 사기라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송금한 통장을 지급정지시켜버리면, 그 통장에서 사기범들은 돈을 빼낼 수가 없고 대포통장을 마련하는 데 쓴 돈만 날리게 되죠. 그래서 그런지 경찰청 통계를 보면 올해 1~4월 경찰에 접수된 전화 금융사기 사건이 1천40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천485건보다 43.6%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피싱 수법은 이런 방지책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금감원에 접수된 2건의 사건을 보면, 사기범들은 대포통장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물품을 구매합니다. 수법을 자세히 보면요, 우선 파밍이 등장합니다. 파밍은 PC를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이용자가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면 가짜 은행사이트에 연결되도록 해 PC 사용자의 금융정보를 알아내 은행계좌에서 돈을 빼 가는 수법이죠. 그런데 예전 같으면 파밍으로 빼낸 돈을 대포통장에 넣은 다음 ATM기에서 인출해 갔습니다. 하지만, 신종 수법은 빼낸 돈으로 물건을 삽니다. 현금화하기 쉬운 상품권이나 귀금속 같은 물품들인데, 피해자의 계좌에서 바로 물품을 파는 업체 계좌에 대금으로 돈을 보내는 것입니다. 즉, 대포통장을 이용하지 않고 피해자의 돈으로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인 거죠. 물론 물품을 다시 현금화해야 하지만, 대포통장을 이용하지 않다 보니 중간에 실패할 위험은 줄어들게 됩니다.

또 다른 한 건은 아예 국제적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였습니다. 해외에 있는 한인 숙박업체가 이용됐는데요, 숙박업체 주인 얘기를 들어보니, 한 사람이 며칠 간 묵으면서 "여행 경비가 모자라니 한국에서 당신 계좌로 돈을 보내면 그것을 빼서 나한테 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700만 원 정도가 계좌로 들어와서, 그 돈을  건네줬는데, 며칠 뒤 이 숙박업체 주인의 계좌가 지급정지됐습니다. 한국에서 피싱으로 빠져나간 돈이 주인 계좌로 바로 송금됐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받아 간 사람은 연락이 끊겼다고 하는데, 주인 말로는 부근의 다른 숙박업소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현금 관련


"피해금 환급 사실상 불가능"

그런데 문제는 이럴 때 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대포통장일 경우에는 피해자가 지급정지를 신청했을 때 통장에 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되돌려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물품 판매업체는 대금을 받고 물품을 팔았을 뿐입니다. 업체 입장에서는 오히려 영문도 모르게 지급정지가 돼서 황당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업체는 돈을 돌려줄 수 없다, 지급정지나 빨리 풀어달라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간 물품을 회수하거나, 상품권 같은 경우는 거래가 안되도록 정지시키지 않는 이상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금감원도 사실상 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 스스로 파밍같은 피싱 사기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의 대책이라고 합니다. 또 물품 판매업체, 특히 현금화하기 쉬운 상품권이나 중고차, 귀금속 업체들도 이런 신종 수법에 휘말려 회사 계좌가 지급정지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니 본인확인 같은 절차를 철저히 해달라고 금감원은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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