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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여름 찜통 더위에 고드름…얼음을 지켜라!

경남 밀양 얼음골의 비밀

[취재파일] 한여름 찜통 더위에 고드름…얼음을 지켜라!
김영근 얼음골 관리사무소장. 밀양 얼음골의 얼음과 함께한 지 21년째입니다. 얼음 지킴이. 얼음이 자식 같다고 했습니다. 해마다 밀양시청에서 얼음 좀 오래 가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얼음을 지키는 수밖에 없는데, 21년 노하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야구장의 그것처럼 생긴 녹색 그물을 바위틈 위에 걸쳐 놓습니다. 낙엽이나 이물질이 바위틈으로 날아 들어가면, 속에 있는 고드름, 얼음이 녹을까봐 그러는 겁니다. 얼음 위에 뭔가 쌓이면 공기가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니까, 아무래도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그럼 얼음이 녹습니다.

온도가 올라간다? 바위틈 공기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알면 이해가 될 겁니다. 바위틈에 전자 온도계를 내려놓고 봤더니, 기온이 급전직하로 떨어집니다. 밖에서 24도였던 기온이 금세 1도까지 떨어졌습니다. 10도도 아니고, 1도입니다. 김 소장님이 자기만 보는 거라고, 높은 바위틈에 숨겨놓은 다른 수은 온도계는 정확히 0도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날의 기온인데, 황당할 따름입니다. 이런 냉기에 나뭇잎이 쌓이면, 이불을 덮듯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밖이 24도라고 했던 것도 이상하죠?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밀양은 그날 오후 2시에 33.0도를 찍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촬영했으니까, 얼음골 계곡은 최고 기온보다 10도 가까이 낮았던 셈인데, 얼음이라는 이름값을 한 셈입니다.

평소 그물을 덮어 두는 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가 오면? 얼음골 바위틈에 빗물이 흘러들지 않도록 아예 덮어버립니다. 그래야 얼음이 녹지 않으니까요. 얼음이 있는 바위틈은 하늘을 향해 뻥 뚫려 있어서, 빗물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얼음은 금방 물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럼 얼음골은 그냥 '골'이 됩니다. 또 늦가을이 되면 이곳저곳 수북이 쌓인 낙엽을 일일이 걷어냅니다. 쉽게 말해, 이불을 걷어내야 합니다. 얼음을 정말 애지중지하죠. 겨울에 바위를 더 차갑게 만들어 이듬해 더 꽁꽁, 얼음골이 얼음을 더 예쁘게 얼리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얼음골 관리사무소는 사실상 얼음 관리사무소입니다. 21년간 쌓아온 비법으로, 지난해에는 얼음을 무려 9월 초까지 유지했다고 했습니다. 얼음을 녹이지 않고, 얼마나 잘 보존하느냐는 얼음골 상인들의 그해 지갑 두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 얼음골 계곡에서 흐르는 물, 차갑다는 표현이 부족합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오래 버티기 해보라는 소장님 말을 듣고, 촬영도 끝났겠다, 양말 벗고 발 담갔다가 후회했습니다. 11초 버텼습니다. 처음 3~4초 정도는 피부가 차갑다는 신호를 보내다가, 갑자기 너 뭐하는 짓이냐며 아프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뼛속까지 아립니다. 열화상 카메라를 대봤더니, 화면이 시퍼렇게 나오고, 숫자는 3도를 가리켰습니다. 얼음물에서 얼음만 걷어내면 이 정도 아닐까요. 폭염주의보 33도에서 영상 3도로, 단번에 떨어지는 30도의 급격한 낙차에 발이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21년 소장님은 몇 분을 버티시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그런 내기 안 하신다고, 딱 잘라 말하십니다. 참 현명하십니다.

계곡 전체가 자연 에어컨, 곳곳이 냉장고입니다. 꼭 얼음까지 가야만 자연 에어컨 바람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결빙 지역으로 가는 길 군데군데에서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처럼 냉기가 흘러내립니다. 관광객들 대부분 그 냉기가 어디서부터 뿜어져 나오는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와 신기하다, 그러면서 계속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올 뿐입니다. 그건 얼음골 겉핥기입니다. 소장님의 힌트, 시커먼 바위틈은 모두 에어컨으로 보면 된답니다. 길섶 바위틈 앞에 한번 앉아보니까, 폭염주의보의 사각지대, 그야말로 명당입니다. ‘여기가 명당’ 이런 화살표 표지판 좀 붙여 놓으시죠? 그럼 얼음골 망가진다고, 소장님은 고개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 이걸 뼈저리게 실감케 되는 것도 얼음골의 매력입니다. 그 이름처럼, 얼음처럼 추울 거라고 알고 가는 건데도, 막상 에어컨의 계곡 안에 들어서면 이거 대체 뭐지? 내 몸의 감각을 의심하게 됩니다. 등산로를 올라갈 때는 바위틈에 접한 곳이 그렇고, 차갑게 식어 무거워진 공기가 가득 찬 바위 아래로 내려가면 모든 곳이 그렇습니다. 여름철 얼음골의 해는 오후 5시가 지나면 벌써 넘어갑니다. 일조량이 적습니다. 얼음골 계곡은 북향인데, 동서남 쪽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에서 계곡을 바라보면, 고드름이 있는 결빙 지역은 하트 모양의 산악 지대 중앙에 폭 안겨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하트 지형이 계곡에 얼음의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하트 속 한 민박집에서 밤새 이불을 돌돌 말고 잤습니다.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돌무더기, 이른바 ‘너덜’도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특징입니다. 수 미터에 달하는 돌들이 많은 만큼, 돌들 사이의 틈이 무척 넓은데, 그 틈 사이에 겨우내 차가워진 공기가 잘 머물러 있다가 늦봄과 여름까지 밖으로 천천히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돌 사이에 있던 얼음은 녹지 않고 곧바로 수증기로 기화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얼음의 생명은 한여름까지 이어진다는 게 하나의 가설입니다. 주변에는 폭포, 너덜 아래는 지하수, 수분 공급도 충분합니다. 실제로 돌 틈에서 측정한 습도는 90%를 넘었습니다. 부경대학교 변희룡 교수, 재난안전연구원 김도우 박사의 설명입니다.


풍혈지_500

다른 가설도 있습니다. 카이스트 송태호 교수는 단순한 열의 순환으로 얼음골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여름에는 차가운 돌무더기가 공기를 냉각시키고, 그렇게 무거워진 공기가 돌무더기의 틈 사이로 내려가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면서, 너덜 하단의 얼음 구멍 곳곳에서 새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공기는 열을 계속 빼앗기면서 0도까지 떨어질 수 있고, 얼음이 녹는 속도를 충분히 늦출 수 있다는 얘기죠. 겨울에는, 여름에 따뜻해졌던 돌이 공기를 데우면서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 너덜 상단의 구멍에서 따뜻한 바람이 새어 나오는 이른바 ‘온혈’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겨울에 온혈까지 올라가는 등산로는 눈이 사르르 녹습니다. 실제로 부경대 변희룡 교수는 이 온혈을 관찰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학자들이 얼음골 연구를 시작한 게 벌써 50여 년입니다.

이런 신기한 ‘풍혈’이 전국에 25곳입니다. 밀양은 특히 얼음이 얼 정도여서 풍혈 가운데 유별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여름이 여름 같지 않으니, 고산 지역의 북방계 식물과 희귀한 식물이 많이 자랍니다. 최근 산림청은 이런 풍혈의 훼손이 심각하다면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얼음골은 이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거대한 돌무더기는 펜스로 둘러싸여 있고, 얼음 구멍은 그물로 덮여 있어서, 얼음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취재진도 잠깐 조명을 치고, 휴대전화를 집어넣어 고드름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소장님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조명 치면 얼음 녹아요~ 촬영 되게 오래하네... 얼른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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