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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개성공단 물자반출 첫 날, 가장 많이 들고 나온 건…

북측 근로자들 짐 옮기기 도와줘…반출해도 걱정 막막

[취재파일] 개성공단 물자반출 첫 날, 가장 많이 들고 나온 건…
개성공단 물자 반출 첫날, 도라산 출입국사무소는 아침부터 부산했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한 게 아침 7시 반쯤이었습니다. 마침 통일부가 개성공단 방북 인원을 대상으로 '특별 교육(?)'을 실시하고 있더군요. 우리 기업인들은 평소엔 출입증만 있으면 그냥 통과했는데, 특별 교육이 있다니 의아해 하시더라고요. 알고보니 최근 남북 간 분위기가 안 좋으니 북한을 자극할만 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중엔 언론사 인터뷰를 아예 하지 말란 내용도 있었다고 한 기업인은 슬쩍 얘기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사장님과 직원들은 방송 카메라를 더더욱 피하시는 눈치였습니다.

물자를 반출하려는 기업들은 대체로 5톤 이상의 화물차를 가져왔습니다. 대체로 회사소유의 화물 차량들이 많았지만, 일부는 초대형 택배 차량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화물차량 섭외에 어려움을 겪은 곳도 있었습니다. 방북이 가능한 택배 기사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11톤 짜리 택배 화물차의 경우 평소 일당이 50만 원인데, 이날은 최고 8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는군요. 개성 공단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택배 기사들이 베짱 영업을 하며 돈을 번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방북 차량은 한 기업당 3대로 제한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3대를 꽉 채워서 가져간 기업은 많지 않고, 화물차 2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수십 만 원에 달하는 물류비 부담이 크다보니 어려운 형편에 맞춰 완제품 정도만 싣고 나오겠단 전략이었죠.
 
여러 사장님들에게 뭘 먼저 가져오겠냐고 물으니까, 열에 아홉은 당장 팔 수 있는 '완제품'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완제품 팔아도 몇푼 안 되는 돈보다 그나마 거래선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는군요. 원자재나 설비는 부피가 크고, 굳이 꺼내와봤자 쓸모가 없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었습니다.

공단으로 출발하기 전 많은 사장님들은 장마철 날씨를 걱정했습니다. 개성공단을 오랫동안 비운 사이 제품과 시설이 비에 젖어 파손되거나 부식될 염려를 드러냈습니다. 이미 시설 점검을 다녀온 사장님들 얘기로는 모 신발업체의 피해가 제일 크다고 전했습니다. 건물 증축 공사를 하려고 3층 천장을 열어두었는 데 갑자기 통행이 금지된 겁니다. 그사이 장마가 찾아왔고 엄청난 빗물이 지하와 자재 창고 등으로 흘러들어가 쫄딱 비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한 도자기업체는 전기료를 걱정해 전기 메인 스위치를 내리고 떠났다가 돌아와선 뒷목을 잡았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정전돼면서 전기 가마를 제어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모두 날아가버려 복구가 불가능해졌단 겁니다.

이날 기업인과 정부 요원 등 174명이 화물차 백여 대를 가지고 개성공단으로 들어갔습니다. 북한 측 근로자들 일부가 나와서 우리 측의 물자 반출을 도와줬다는군요.

하지만, 공단 안에서 반출 작업은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다는군요. 북한은 완제품이 아닌, 금형(제품을 찍어내는 틀)을 가지고 나가는 것에 대해 대단히 신경질적이었습니다. 한 기업은 남측에서 계속 영업을 하려고 금형을 반출시키려고 했다가 북한 당국과 3시간 동안 실갱이를 벌였습니다. 북한 측 근로자들은 짐을 옮겨주며 많이 도왔지만, 당국은 반출을 도우려는 의지가 그다지 없었다는 겁니다.

한 가득씩 짐을 가져온 사장님들의 얼굴은 그자디 밝아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심에 가득찬 한 사장님은 피해를 고스란히 기업에게 떠넘기는 우리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시더라고요. 뇌리에 남은 사장님의 한탄을 고스란히 적어봅니다.

"정부더러 차라리 개성공단을 폐쇄하라고 하세요. 공단을 일찌감치 접었으면 우리도 아예 포기하고 새살림을 차렸을 겁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돈은 두배로 들고 빚만 쌓여갑니다. 정부 지원은 없냐고요? 빚 내서 빚 갚으라더군요. 싼 금리의 대출을 알아봐준다는 게 정부 지원의 실체입니다. 공단이 폐쇄되는 동안 알바 자리 구한다는 사장님들이 주변에 한둘이 아닙니다. 이대론 죽을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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