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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인비 부모 "국위 선양, 가문의 영광"

US여자오픈 우승 뒷 얘기<br>박인비 부모 인터뷰

[취재파일] 박인비 부모 "국위 선양, 가문의 영광"
US여자오픈 우승으로 한국선수 최초의 메이저 3연속 우승을 달성한 박인비선수의 부모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박건규씨의 사업장이 있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을 찾아갔습니다.

페트병 포장재를 만드는 회사 건물로 들어서니 1층 현관부터 계단, 2층 복도, 회의실, 사무실까지 온통 박인비의 우승 사진과 우승컵, 우승했던 퍼터 등 수많은 기념품들이 액자와 유리 상자에 반듯이 담겨 길게 진열돼 있었습니다.

페트병 제조회사 건물이 아니라 마치 박인비 전시관에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약속된 시간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서 불쑥 2층 집무실로 들어갔는데 박인비 선수의 부모님께서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기자와는 그동안 전화 통화만 하고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부모님 성격이 워낙 화통하고 털털해서 금세 오랜 지기처럼 편안해지더군요. 30분만 하겠다던 인터뷰가 1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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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ap
기자 : US여자오픈 우승하고 귀국해서 첫 인터뷰이신데 우승 뒷 얘기 좀 들려주세요. 

아버지 (박건규, 52세) : 말도 마세요. 사실 마지막 날 너무 떨렸어요. 작년에 우승 문턱에서 역전당한 쓰린 상처들이 완전히 다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인비가 4~5타 차로 앞서가도 안심할 순 없었죠.

그러다가 마지막 홀에 오니까 비로소 우승컵이 눈 앞에 왔다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막 소리 지르고 이 사람(박인비 어머니) 껴안고…인비가 우승 퍼팅 하고 걸어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내 딸이지만 정말 대견하고 '가문의 영광'입니다.

어머니 (김성자, 51세) : 내 딸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낸 건지 미국 NBC 투데이쇼에서 출연해 달라고 했을 때 실감이 났어요. 출연 요청이 왔을 때가 현지 시간으로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요. 각종 매체 인터뷰 하느라고 저녁 밥도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 6시 뉴욕 맨해탄 스튜디오로 와 달라는 거예요.

아버지 : 처음엔 출연 못한다고 했죠. 밥도 먹어야 하고 렌터 카도 반납해야 하고 짐도 싸야 하고…
서보낵 골프장에서 뉴욕 맨해탄까지 차로 2시간 이상 가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NBC방송사 PD와 LPGA 사무국 직원이 계속 끈질기게 설득을 해오는 거예요. 렌터 카 반납 대신 해주고 뉴욕에서 호텔 스위트 룸 3개 잡아주고  버스 대절해주고...다 해줄테니 짐만 꾸려서 오시라는 거예요. 인비한테 얘기했더니 인비는 선뜻 출연하겠다고 해서 강행군 한 거죠.

밤 11시에 버스 타서 뉴욕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반…3시간 눈 붙이고 6시에 NBC 야외 스튜디오  에 가니까 쪽 대본(질문지)을 주더라구요. 인비는 질문지 미리 보면 생각이 많아져서 오히려 말을 더듬게 된다며 일부러 질문지를 보지 않았어요.

유명 인사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는데 우리 딸이 뉴욕 시내 한복판에 서서 앵커들이랑 대화를 주고 받으니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더군요.

어머니 : 투데이쇼 생방송 마치고 스포츠채널 ESPN과 골프채널 스튜디오도 바로 옆에 있어서 내친 김에 한꺼번에 3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인비랑 저녁 비행기 타고 서부 라스베가스로 갔죠. 라스베가스에 한밤중에 떨어졌어요. 너무 피곤해서 다음날은 오전 내내 잠만 잤어요.

기자 : 라스베가스는 왜 가셨나요?           

어머니 : 집 보러요.인비가 고등학교 때 라스베가스에서 살았는데 몇년 전에 그 집을 팔았거든요. 다시 사려고 하니 집 값이 많이 올라서 쉽지 않네요.

기자 : 상금 많이 생겼잖아요?

아버지 : 그게…언론 보도만큼 다 받는게 아니예요. 가령 우승 상금이 100만 달러면 35%가 소득세로 나가고 비용과 경비 제외하면…(웃음) 그래도 집 다시 살 생각하니 좋네요.

기자 : US여자오픈에서 따님이 일을 낼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어머니 : 사실 코스를 둘러보고 인비 아빠가 "여기서는 아무도 언더파 못친다."고 했어요. 전장도 길고 그린과 코스 세팅도 어렵고 바람까지 불어서….

아버지 : 그런데 기협이(남기협 : 박인비 약혼자)는 언더파 충분히 친다는 거예요. "인비는 무조건 언더파 친다. 그리고 우승하려면 8언더파 정도는 쳐야 된다."라고 해서 제가 그랬죠.
"인비가 만일 여기서 언더파 치고 우승하면  내가 기협이 금일봉 준다." (웃음)
인비가, "아빠 질텐데~" 라며 기협이를 쳐다보더라구요. 기협이가 인비한테 "인비야 이번 시합은 날 위해서 쳐 줘. 알았지?"라고 말하면서 같이 웃으면서고 지나갔는데 인비가 진짜 우승한 거예요. 그것도 기협이가 말한대로 정확히 8언더파로 말이죠.

3라운드까지 10언더파였는데 마지막 날 우연인지 몰라도 2타를 까먹고 8언더파로 끝나니까 소름이 싹 돋더라구요. 역시 사랑의 힘이…'제 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실감 나더군요(웃음).

기자 : 약혼자 남기협 프로와는 언제 결혼시킬 예정이세요?

어머니 : 내년 말 쯤이요. 그 전에는 투어에 전념하고 또 둘이 어떤 목표가 있는 것 같아요.

인비가 기협이 한테 정말 많이 의지해요. 기협이는 프로 생활 해봤으니 인비를 부모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문제점이나 고칠 점을 기협이가 얘기하면 인비가 금방 알아들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말 하는데 무슨 말을 못 듣겠어? (웃음) 인비가 외로움을 많이 타요. 친구도 부모도 채워줄 수 없는 공백을 기협이가 채워준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면 인비의 짜증과 응석,모든 것을 다 받아주더라고요. 나이 차가 7살이나 나니까 큰 오빠처럼요.

아버지 : 인비가 2009년 슬럼프가 왔는데 그 때 골프 그만둔다는 소리 너무 많이 했어요. "아빠, 은퇴하면 안돼?" 자주 푸념하면서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가족 회의를 했죠.

그랬더니 미국에서 인비를 지켜보던 이모가 그러는 거예요. "지금 인비한테 가장 필요한 건 남기협이다." 인비의 스승 백종석 코치도 똑 같은 얘기를 했어요. "박인비 옆에는 남기협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기협 프로를 설득하기 시작했죠. 투어에 동행해 달라고….

기협이가 처음엔 무지 부담스러워했어요. 투어에 동행해서 인비가 잘 치면 다행이지만 못치면 둘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주위의 보는 눈도 있고...그래서 2011년 말 약혼을 시켰죠. 남기협 프로가 투어에 동행하기로 결심하면서 인비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어요.

첫째, 앞으로 5년간은 절대 골프 그만둔다는 얘기 안하기.
둘째, 짜여진 시간표 대로 무조건 따라하기.

어머니 : 인비는 군말 없이 따랐어요. 정말 신기한 게 그 때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 성적도 점점 좋아지고 그랬어요. 2012년 LPGA 에비앙 대회에서 4년 만에 우승하고 인비한테 전화가 왔어요. "골프 시켜줘서 엄마, 아빠 너무 고마워요."라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매일같이 골프 그만두겠다고 투정하던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니 그 때 너무 짠했어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최근 인비 방을 정리하다가 일기를 발견했는데 2012년 에비앙대회 끝나고 최종라운드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상황을 꼼꼼하게 복기해서 적은 거예요. 1번홀 티샷 하기 전의 심정,세컨샷 미스했을 때 심정,2번홀은 어땠고 3번홀에선 어땠고...퍼팅할 때 심리 상태까지 18홀 내내 묘사한 거죠.

아버지 : 그걸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인비가 1번홀부터 18번홀까지 마음이 어땠는지를. 남들은 포커페이스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떨고 있었는데 그걸 다스리기 위해서 치열하게 속으로 자기 자신과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책의 맨 앞장에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골퍼인가? 늘 행복한 골퍼가 되자" 이렇게 써 놓고 멘탈 트레이닝을 하는 거죠.

기자 : 손목 코킹을 안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 : 인비가 어릴 때 한국에서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푸시업을 하는데 너무 손목이 아프다고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비는 푸시업을 손바닥을 대고 하는게 아니라 주먹 쥐고 하더라구요. 그 때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미국 가서 레슨을 받으러 다니는데 자꾸 손목이 아프다는 거예요. 그 때 오른쪽 손목에 혹이 났었어요. 그래서 정형외과를 데려는데 의사가 말해주더라구요. "인비는 손목의 조인트와 조인트를 연결하는 부분이 남들보다 짧다. 유연성이 떨어져서 손목을 과도하게 코킹하면 부상이 올 수 있다." 중학교 3년 내내 데이빗 리드베터한테 배웠는데 레슨 받으면서 계속 손목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었어요. 레슨을 가기가 싫대요. 그러면서도 대회에 나가면 성적은 좋았어요.

대회에서는 선생님 말씀 듣지 않고 코킹 안하고 자기 감각대로 쳤던 거죠. 이런 스트레스 과정이 3년 반복됐는데 이젠 안되겠다 싶어서 선생님을 바꿔보려고 부치 하먼에게 갔던 거죠. 부치 하먼에게 손목 고충을 얘기했더니 백 스윙은 안건드리고 다운 스윙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더라구요. 거기선 스트레스 안 받고 레슨 받을 수 있었죠.

아버지 : 인비는 코킹이 안되니까 채를 예쁘게 뒤로 빼는 백스윙이 안되는거예요. 팔을 가파르게 올리는 업라이트 스윙이 될 수 밖에 없어요. 대신 어깨 턴을 100% 완벽하게 해서 일정한 리듬으로 다운 스윙을 하는 연습을 반복해서 하다보니까 지금 스윙을 만든거죠.

어머니 : 여기에 남기협 프로가 다운스윙이 가는 길을 가르쳐 줬어요.어깨가 닫히거나 열리지 않게 피니시 자세를 많이 봐줬죠.

아버지 : 그러니까 인비한테는 선생님이 둘 인거예요…백종석 프로하고 기협이 우리 사위…

기자 : 그랜드슬램 욕심이 나실텐데?

아버지 : 인비는 뭘 너~무 하고 싶으면 그게 잘 안된대요. 이번 US오픈에서도 1, 2라운드 끝나고 우리한테 그러더라구요. "아빠 ,엄마 이 정도면 됐지? 만족하지?" 스스로 위안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도 "그래, 여기까지 이 정도 왔으면 됐다. 참 잘했다. 우승은 안해도 돼..." 그렇게 말해줬어요.

그런데 그런 아이한테 브리티시 우승하자는 얘길 우리가 어떻게 해요? 집 사람하고 우리끼린 "이거 무조건 해야 된다. 그랜드슬램 기회가 또 오진 않으니까"라고 눈만 마주치면 얘기 하지만 인비한테는 차마 말을 못하는 거예요. 부담 될까봐. 인비한테 전화오면 이렇게 말해요. "브리티시는 너 한테 안맞는 코스니까 우승 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마라."  

어머니 : 브리티시 대회 가면 방도 없어요.우리가 안간다고 해서 숙소도 안 구해놨어요. 근데 비행기 표는 인비 모르게 사 놨어요. 우리가 가면 어디서 자지? 마루에서 자야 하나?(웃음) 

기자 : 회사 건물을 박인비 전시관으로 만들어 놓으셨네요?

아버지 : 2008년 인비가 US여자오픈 우승했을 때 사진을 처음 여기에 걸었는데 또 한 장의 LPGA 우승 사진을 걸기 까지 꼬박 4년이 걸렸었요. 그게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 대회 우승 사진이예요. 그 사이에 일본 대회 우승도 몇 번 했는데 그래도 LPGA에서 다시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 정말 딸이 그렇게 이쁠 수 없었어요. 이 사람이랑 둘이 꼭 껴안고 많이 울었죠. 인비가 주니어 시절부터 탔던 우승컵과 사진들, 기념품들을 다 모아 놓고 매일 매일 닦았어요. 공 들이고 공 들이고...다음 시합도 우승하라고요. 닦고 공들이니까 지금은 이렇게 건물 전체를 빙 둘러 우승컵과 사진들이 걸리게 된 것 같아요.

어머니 : 이게 인비 아빠의 인생이에요. 저렇게 매일 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가봐요. 출근할 때 매일 사진 보고 흐뭇해 하고...난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아버지 : 저는 인비한테, 이 우승컵들은 시집갈 때도 절대로 못준다고 했어요. 내가 무덤까지 갖고 갈거라고...난 이걸 보면서 행복하니까요. 다행히 인비는 우승컵에 관심 없어요. 아빠 다 가지래요. 나중에 인비 어렸을 때 썼던 용품들이랑 다 모아서 이렇게 전시관을 늘려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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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외신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데 박인비 어머니가 기자에게 박인비의 친필 사인 모자와 사인 공을 선물이라며 건네줬습니다. 올 시즌 첫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던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기념 모자였습니다.

모자를 들고 나오면서 2층 계단에 전시된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 기념품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승컵과 사진, 챔피언 연못에 뛰어든 뒤 입었던 흰색 가운, 그리고 예비 사위 남기협씨가 담아왔다는 '챔피언 연못'의 물까지...그 때의 감동이 고스란히 기자에게도 전달됐습니다.

박인비는 11일 밤 캐나다에서 열리는 LPGA투어 매뉴라이프 파이낸셜 대회에 출전해 4개 대회 연속 우승에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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