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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화상 경마장 반대 기자회견을 다녀와서

[취재파일] 화상 경마장 반대 기자회견을 다녀와서
(언론의)기계적 중립은 결국 마사회를 편드는 꼴이라며 기사를 원망하는 댓글을 봤습니다. 취재 뒷 이야기를 쓰는 이 자리를 빌어 변명 좀 하겠습니다.

오늘 장외 마권발매소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보고 들으면서 울부짖는 학부모님들의 심정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부모가 나쁜 환경에서 통학하도록, 교육받도록 놔두고 싶겠습니까. 심정적으로는 100% 학부모님 편을 들고 싶었습니다. 마사회가 실정법의 테두리를 명확히 벗어나 추진하는 부분이 취재가 됐더라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는 위법사항을 밝혀내지 못한 기자의 능력 부족을 1차로 원망하고 반성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했을지언정, 취재된 팩트를 왜곡해가며 기사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한 쪽 편을 들 수 있지만, 취재된 여러 팩트들을 모아 시청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일단 이번 기사와 관련해 취재한 팩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한국마사회가 현재 용산역에 있는 장외 마권발매소를 9월까지 원효로에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하려 한다. 신설이 아니라 이전이다.
- 이전 계획은 2009년 건물 신축 단계부터 시작됐으며, 이미 농림부와 용산구청의 인.허가 과정을 거쳤다.
- 장외발매소는 법적으로 학교로부터 200m 이내에 들어설 수 없는데, 용산구 이전 건의 경우 200m를 아주 조금 넘게 떨어져 있다.
- 2009년 관련 규정이 바뀌면서 신설이 아닌 동일구역 내 이전의 경우 주민 동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지자체의 동의는 이미 구한 바 있다.

그 밖에도 배포된 기자회견문에는 발매소 이전 과정에서 벌어진 전 마사회 직원의 횡령과 과도하게 부풀려진 이전 비용에 대해 씌여 있었습니다. 이미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부분도 있지만, 일부 내용은 의혹 수준일 뿐, 다른 측면에서도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내용은 '이전 문제' 자체와는 사실 무관한 부분들로 자칫 문제의 초점을 흐릴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기자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팩트들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기자회견문에서는 마치 경마팬들을 잠재적 범죄자 내지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굳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경마팬들도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아들들일텐데 그렇게까지 비하할 이유나 합리적 근거가 있나 싶었습니다. 기자가 마사회나 경마팬들을 두둔할 이유도 없고, 도박 빚에 시달리다 보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경마를 즐기는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의 아이를 이미 해하기라도 한 것처럼 언급하는 부분은 틀림 없이 과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면 오히려 일반 시청자들에게 오해와 반감을 살 수 있다고 설명까지 했습니다.

도박은 나쁘다, 고로 도박장은 아예 없어지는 것이 좋다. 굳이 있어야 한다면 도심에서 아주 먼 곳에 떼어놓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도 들었습니다. 100% 동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국가와 사회는 도박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고, 복권을 찍어내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럼 이 국가와 한국마사회는 완전 악당일까. 그 집단과 사람들은 원래 못돼 먹어서 주민들 재산을 탕진시키려고 주택가를 파고 들고,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존재할까? 결과론적으로 그들이 그렇지 않느냐라고 얘기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기자로서는 어찌됐든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의 입장을 기사에 일부 반영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있을 수도 있는 반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겁니다.

오늘 취재의 쟁점은 이전이냐 신설이냐, 교육 환경을 훼손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딱 2가지였습니다. 신설이 아닌 이전이었기에 지역 주민들이 보기에 유해하기 그지없는 장외발매소는 이번 주말에도 8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영업을 할 것이고, 20여년 전에는 바로 그 자리 옆에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별 문제없이 잘 운영되어 오던 발매소를 이전하려고 하자 문제가 된 겁니다. 바로 학교 코 앞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장외발매소의 신설과 이전은 가급적 외곽지역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을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맞는 얘기고, 법에서 정한 200m는 넘을지언정 교육 환경은 나빠질 것이라는 데 동의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중심으로 인터뷰도 요청했습니다. 교묘히 법의 테두리를 빠져 나가려는 마사회의 의도도 의심스러웠고, 다른 무엇보다 아이가 우선이라는 말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급적 외곽지역을 원칙으로 한다는 그 규정에도 분명히 함정은 있습니다. 이 좁은 나라에서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땅이 얼마나 될까요. 주민이 적게 사는 곳이라면 그런 유해시설을 받아들여도 되고, 그 주민들은 그냥 희생해야 하는 걸까. 사실 모든 과정이 어찌됐든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겁니다. 용산구의 문제도 더 공론화되고, 주민들의 함의가 모이게 되면, 어느 쪽으로든 민주적으로 결론이 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벌써 2만에 가까운 서명을 받았고, 오늘 기자회견을 연 것도 그런 공론화를 위해서였지, 100% 본인들의 입장만 실어주는 입맛에 맞는 언론이 필요해서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학부모들의 노력이 그냥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로 시청자들이 위임한 소중한 전파를 사용한 겁니다.

마사회
한국 마사회 측은 경마가 금요일과 주말에만 열리고, 실제로 통학 관련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수의 학생만이 앞을 지나더라고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또, 기존의 발매장을 확장 이전하기는 하지만 입장 정원을 동결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백화점 문화센터처럼 주민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얘기까지, 참 많은 이유와 변명을 듣기는 했지만 결국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시설에 투자를 하는 걸 겁니다.

1회 베팅 상한액을 10만 원으로 정해놓고도, 그 이상 베팅할 수 있도록 수수방관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를 보면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이 3% 가량 떨어졌고, 매출이 더 떨어지기 전에 쾌적한 환경에서 도박을 즐길 수 있도록 재투자하겠다는 심산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로 막무가내로 매도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고, 그렇게 함으로써 경마팬들은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도박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식하게 하자면 화끈하게 주민투표라도 해서 결정을 하면 좋겠지만, 거기에 드는 사회적 비용또한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이렇게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있으니 그 노력이 조만간 결실을 맺겠죠. 이 사회에 경마 같은 도박이 과연 필요하냐, 아니냐를 묻는다면 분명 얘기가 다를 겁니다. 하지만 이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누군가 그것을 즐기는 가운데, 그 시설의 이전과 신설 문제를 논의하면서 그런 불가침의 선을 그어 놓고, 그 명제를 논리로 싸움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용산구청이 마사회 측에 발매장 이전 자진 철회를 요청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는 이전 승인을 취소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 대다수의 뜻이 담긴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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