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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집트는 실패한 혁명의 상징인가(?)

무르시 정권 축출과 시민혁명의 미래

[월드리포트] 이집트는 실패한 혁명의 상징인가(?)
오늘로 무르시 대통령, 아니 이제는 어쨌든 권력에서 축출된 과거형이 된 비운의 지도자인 이집트의 무르시 정권을 둘러싼 역사의 소용돌이가 시작된 지 공식적으로 일주일째입니다. 무르시가 집권 1주년을 맞았던 6월 30일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본격화되고 이후 군부의 최후통첩과 전격적인 대통령직 박탈, 그리고 임시정부 구성과 이슬람 진영의 반발까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의 많은 언론들이 갖는 가장 큰 관심은 아마도 이슬람 진영의 강력한 반발이 시리아나 리비아 혹은 과거 90년대 20만명 이상이 희생된 알제리처럼 내전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내전 위험, 그리고 분열된 이슬람

지금 시점에서 내전 비화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리비아 내전 과정에서 서방이 반 카다피 진영에 무기를 대규모 공급했는 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집트 사막지대와 북부 델타 지역을 거쳐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중간 경유지였던 이집트에도 당연히 엄청난 양의 무기들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로 인해 이집트 내의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무장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무르시 정권 축출 이후 ‘안샤르 알 샤리아’같은 무장조직과 팔레스타인 내 하마스의 조직원들까지 이집트에서 무장투쟁에 나설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 하마스는 사실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 무르시 정권과 혈맹같은 사이였습니다. 과거 무르시가 수감됐던 감옥에서 하마스 조직의 도움으로 탈옥했던 것으로 알려질 정도입니다.- '

이런 무장투쟁의 확산 가능성과 함께 잦은 외침과 서구 침탈의 역사 속에 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이슬람 수니파 지하디스트들의 양성소 같은 곳이 돼 왔다는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입니다. 9.11 테러를 주도했던 알 카에다의 2인자 자와히리를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과격파 가운데 상당수가 이집트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뽑힌 이슬람 정권이 군부의 쿠데타로 전복됐으니 무장한 이슬람 세력들에겐 어찌보면 훌륭한 무장투쟁의 명분이 생긴 셈입니다. 문제는 이런 무장투쟁이 산발적 테러가 전면적인 내전으로 확산되려면 그만한 지지기반이나 지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현 상황은 좀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이번 무르시 정권 축출 과정에서 이슬람 진영의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됐습니다. 지난 해 총선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자유정의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던 원리주의 정당 누르당은 무슬림형제단과 무르시에게 조기대선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하며 사실상 무르시 퇴진을 요구해 온 야권과 입장을 같이 했습니다. 또 이슬람 수니파의 최고기관인 알 아즈하르의 최고지도자는 군부의 무르시 축출 성명 발표 때 자리를 같이 할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야권의 무르시 퇴진 요구 서명에 동참한 2천 2백만명의 이집트 국민 절대 다수가 바로 무슬림들입니다.

특히 무르시 정권 축출을 주도한 엘시시 국방장관은강한 이슬람주의 성향을 지닌 군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랜 세속주의 전통 속에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비교적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에 익숙했던 터라 아무리 무슬림들이라 해도 ‘이슬람 강화’를 외친 무르시 정권의 메시지가 먹히지 않았다는 거죠. 결국 무르시 정권과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 세력 내부에서도 상당히 고립돼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한다면 이슬람 과격파들의 무장투쟁 가능성과 시도가 늘어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이게 전면적인 내전으로 비화되기엔 동력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집트 혁명은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나(?)

문제는 앞으로 입니다. 대다수의 서방 언론과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번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 축출을 선거로 뽑힌 합법적 정부를 군이 나서 전복한 명백한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시민혁명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합니다. 군사독재를 물리쳤던 시민혁명이 다시 군사통치 체제로 회귀하는 정치적 후퇴라는 것이죠.

여기서 눈 여겨 봐야 할 대목은 군의 개입을 용인한 이집트 범야권의 고민입니다. 이번 무르시 퇴진 운동을 주도한 타마라드(반란)라는 조직은 이집트 내 전통적인 좌파블럭인 4.6 청년운동 등 청년세력과 온건 자유주의 세력 등이 총망라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11년 무바라크를 축출한 코샤리 혁명의 주도세력으로 군부의 정치개입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르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나타난 퇴행적 변화, 즉 이슬람 헌법 개정과 무슬림 형제단의 권력독점, 전력과 유류난 등 유례없는 최악의 경제난 속에 백척간두로 내몰린 서민의 삶 앞에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고 판단입니다.

‘반 무르시’를 지지하는 압도적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상태였지만, 권력을 쥔 무르시와 무슬림 형제단과의 힘의 균형을 무너뜨릴 조력자로 이집트 국민의 신뢰가 절대적인 군부의 개입을 불가피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불가피하다고 해도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부와 대통령을 무너뜨린 군의 개입이 쿠데타라는 점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민주 헌정 질서가 자리잡지 못하고 또 한번 후퇴하게 됐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집트의 시민혁명이 실패한 것이냐는 아직 결론을 내리기가 이른 것 같습니다.

시민혁명을 확산시킨 동력으로 평가받는 SNS에 익숙한 이집트의 젊은 세대들은 광범위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가 누리고 싶은 삶의 질을 판단함에 있어 이집트 사회가 처한 특수성이나 종교적 한계등을 뛰어넘어 이미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적 눈높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빵’과 ‘자유’를 달라는 시민혁명 당시의 구호가 의미하는 것도 정치 종교적 차별없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과 삶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혁명의 과실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보로 가능했던 무르시 정권의 탄생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됩니다.

종교적 색채를 강화하고 언론과 여성인권을 제한하려는 이슬람 정권의 시도는 이집트 시민들에겐 ‘혁명에 대한 배신’으로 각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르시 정권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 시민들은 군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르시 축출을 ‘제2의 시민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얼마나 빨리 민간에 권력을 다시 이양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가 질식 상태에 놓인 이집트 경제를 되살리고 ‘빵과 자유를 달라’는 시민혁명의 구호를 현실화해야 하는 버거운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군부가 주도하는 과도정부가 과도 정부 총리로 엘 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을 지명한 점입니다. 북한 핵 문제로 시끌시끌하던 90년대 IAEA를 이끌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국제적 인물인 엘 바리데이는 지난 2011년 시민혁명 와중에 고국인 이집트로 돌아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듭니다.

지식인층과 젊은이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빈약한 국내정치 기반 때문에 결국 지난 대선엔 출마를 포기하죠. 하지만 이후 무르시 정권의 역주행에 맞서 분열된 이집트 야권을 하나로 묶어 내고 이번 무르시 퇴진 운동을 주도하며 야권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엘 바라데이 총리 지명은 아마도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 계산된 조치로 보여집니다. 과도정부의 얼굴 역할을 하며 분열된 이집트 여론을 모아세우고 국내정치기반을 닦는다면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집권 1년만에 쿠데타로 권력을 잃은 무슬림 형제단 등이 순순히 협조할 리가 만무하고, 최악의 경제난 등 난제가 산적해 있어 오히려 엘 바라데이에겐 총리 취임이 독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결국 이번 군부 개입을 통한 무르시 정권 축출이 제2의 시민혁명으로 평가 받으려면 결국 과도정부의 권력이양 과정이 얼마나 순탄하게 진행되느냐, 또 새 정부가 시민자유를 확산시킬 절차적 민주주의 뿐 아니라 빵을 먹여주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얼마나 채워 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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