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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통령 비밀 수장고' 직접 가보니…

'철통보안' 남북정상회담 기록 어떻게 공개되나

[취재파일] '대통령 비밀 수장고' 직접 가보니…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대통령 기록관은 한적했습니다. 여의도 정가의 모든 이슈를 휩쓸고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원본 자료가 보관된 곳이지만, 대통령 기록관은 찾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2008년에 문을 연 곳답게 건물은 최신식이었고, 1층에는 대통령 전시관까지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된 대통령 전시관은 과거 취임식 영상을 비롯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공개 자료들이 꽤 많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비밀 창고' 대통령 지정 기록 서고 어떻게 들어가나

기록원
하지만 2007년 남북정상회담 자료 같은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이렇게 일반에 공개된 자료가 아닙니다. 국가 기록물 가운데 최고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보관된 장소에 접근조차 쉽지 않습니다. 보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서 금고문처럼 두꺼운 보안 철문을 몇 개를 열고서 한참을 들어가야 '대통령 지정기록 서고'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취재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방의 문을 여는 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먼저 철문을 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보안 해제장치가 3개나 필요합니다. 첫째는 전자 카드키, 두번째는 보안담당자의 지문, 세 번째는 열쇠입니다. 각각 다른 사람이 보관하고 있는 보안 해제 장치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봉인을 열수가 없습니다. 

기록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록물 보관 서가에 잠금 장치가 돼 있습니다. 그걸 열면 칸막이에 또 다른 잠금 장치가 있다고 합니다. 기록에 접근하는 데만 5중 철통 잠금 장치가 돼 있는 겁니다.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기록관 안에 단 두 명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고, 대통령 기록관장의 승인을 받아 출입을 철저히 기록한 뒤에 가능합니다. 그것도 기록물의 관리 차원에서 출입이지, 기록물을 열람할 수는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밀은 철통 보안 속에 최소 15년 이상 이 서고에 잠자게 돼 있는 겁니다.

만약 이 지정기록 서고에 불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물을 뿌려 끌까요? 아닙니다. 가스로 불을 끈답니다. 이너젠이라는 가스를 뿌려 순식간에 불을 끕니다. 내부에는 24시간 CCTV 카메라를 통해 화재 발생 여부는 물론 침입자를 항상 감시합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록' 어떻게 찾나

대통령 지정기록물 서고에는 얼마나 많은 기록이 있을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은 34만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은 24만 건이 있습니다. 무려 58만 건의 비밀 자료가 서고 안에 있는데 이 자료를 찾는 게 보통 난이도가 아닙니다. 이 자료들이 각 사건별로 상자 안에 있다면 좋겠지만, 각자 분류 기준에 따라 여기 저기 자료가 나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기록도 적어도 100건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각자 다른 번호표 달고 여기저기 다른 서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국가기록원 직원들도 사실 실제로 찾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가 없답니다.)

이걸 어떻게 찾을까요? 기록물을 찾아낼 수 있는 키워드를 정해야 합니다. 키워드를 잘 조합하면 정상회담 기록을 다 찾아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대화록조차 찾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제(3일) 국회가 국가기록원에 자료공개요구서를 보내면서 실무협의를 하고 있는데, 국회와 국가기록원이 키워드를 어떻게 넣을지 조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찾아내면 자료를 막 꺼내갈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 지정기록물 원본은 보안이 유지되는 곳에서 사본 형태로 다시 제작됩니다. 그리고 원본은 다시 서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사본 형태로 만들어진 기록이 국회나 제3의 안전한 장소로 보내져 지정된 소수의 국회의원들이 열람을 하게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비밀 어떻게 공개?

대통령의 비밀은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습니다. 외부 누설이 확인되면 3년 이하의 징역,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집니다.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고, 최장 7년까지 출마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처벌 규정을 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여야는 표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정상회담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말합니다. 벌써부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해서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시간에 공개하는 방안, 이미 공개된 국가정보원 대화록과의 대조를 통해 같다, 다르다만 확인하는 방안, 심지어 언론사의 특종을 이용한 비공식적인 공개 방안까지(국정원의 정상회담 대화록은 특정언론사의 특종 형식으로 외부에 알려졌습니다.) 다양한 방법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법적인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철저한 비밀을 요구하는 현행법상 공개 수위와 방식을 놓고 위법 논란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공개 효과를 놓고도 '동상이몽'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 결과가 공개된다고 했을 때 여야는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민주당은 정상회담 대화록뿐만 아니라, 사전 준비 기획서, 사후 조치 보고서까지 전부 공개하면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취지 발언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새누리당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음성이 담긴 파일이 공개되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취지로 말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마치 경기 전의 프로레슬러들처럼 서로 승리한다고 격한 표현으로 장담하고 있지만, 결과는 사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국가기록원 안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화록뿐만 아니라 전후 기록까지 공개된다면 그 파장은 가히 핵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야도 겉으로는 승리를 자신하고 있지만, 어떤 돌발변수가 나올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의 민생과는 별로 상관도 없는 이슈에 파묻혀 국회 본연의 업무에는 관심도 없다는 국민들의 비난 때문에 정치권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늦어도 오는 12일까지 국가기록원은 정상회담기록을 국회로 보낼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 여야가 적절한 타협방안을 찾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서로 기싸움에 밀릴 기세가 아닙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던 대통령의 비밀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여야 모두 승자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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