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는 정작 우리나라의 북핵 대응 전략은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회에 정리하려는 뜻도 있었습니다만, 솔직히 알쏭달쏭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은 취재를 한 대상인데 오히려 더 알 수 없다니 아이러니죠.
우리나라가 대단히 수준 높고 복잡한 외교 기법을 구사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거꾸로 아직 일관성 있는, 분명하고 확실한 외교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우리의 외교 전략에서 주체적이거나 능동적인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표현해야 더 맞을 듯 합니다. 일단 제가 파악한 북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 자세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전임 MB 정권 당시의 대북 외교는 일종의 북한 고립 전략이었습니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고사 작전입니다. 이런저런 경로로 파악한 바로는 당시의 외교안보팀은 우리가 북한에 이른바 '퍼주기'만 하지 않으면 MB정권 5년 안에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듯 합니다.
당시 금강산 관광이나 각종 대북 원조, 개성 공단 개발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투자나 필수 물자 공급의 상당 부분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판단할 만도 합니다. MB정부는 정권 초에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대북사업에서 깔끔하게 손을 뗍니다.
물론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을 사살함으로써 빌미를 제공했습니다만, MB정부의 대응은 그 이상으로 전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안도와주면 어떻게 되나 한번 볼까?'하는 모습이었죠. 하지만 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북한 정권의 주민 통제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큰 점도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따져볼 때 1인당 국민소득이 1천 달러 이하 수준인 나라에서 시민봉기로 정권이 바뀐 사례가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군부 세력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1인 독재체제를 강고하게 유지중입니다. 국제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됐습니다. 정권의 불안전성을 야기할 만한 요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금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죠. 내용은 대부분 아실테니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남한과 북한이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서 '서로' 협조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더 직설적인 말로 바꿔볼까요?
'이제는 남한이 핵 개발 등으로 뒤통수를 맞으면서까지 무조건 도와주는 일명 '퍼주기'는 하지 않겠다. 북한이 태도와 자세를 개선하는 만큼 도와주겠다'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뢰의 가장 기본 전제는 물론 북한의 핵포기입니다. 핵 고리가 풀려야 그 다음 단계의 상호 교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미사일 발사 시험과 제 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결국 '신뢰 프로세스'는 한 걸음도 걸어보지 못한 채 족쇄부터 찬 셈이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의 초반 대북 전략은 MB정부와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한미일이 강고하게 연합해 북한을 압박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북 국제 제재를 강화합니다.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대화의 장으로 나옵니다. 북한이 실질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핵 포기 절차를 밟는 조건으로 관련 제재를 완화해주고 나아가 우리는 대북 투자와 경제개발을 위한 협조를 강화합니다.
말로는 참 쉬워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상에는 두 가지의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있습니다. 먼저 중국의 태도입니다. 북한은 핵을 정권 유지의 보루로 삼고 있습니다. 핵 포기를 하지 않겠다고 법에 명시할 정도입니다. 핵을 쉽게 포기할 리 없습니다.
따라서 핵을 포기할 만큼 북한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합니다. 한·미·일은 이미 북한에 대한 가능한 모든 제재 수단을 동원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앞에서도 여러번 설명했듯이 현재로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습니다. 한·미·일과는 이해관계가 전혀 다릅니다.
또 하나는 북한을 궁지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입니다. 한 유명 보수 논객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만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질수록 경제적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입니다. 이미 올해 초 경험한 일입니다. 실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도저히 선택지로 삼을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정부로서는 중국 설득에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만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함께 보조를 맞춘다면 북한을 굴복시키고 핵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니, 중국이 완전히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더라도 전보다 우리 쪽으로 바짝 다가선다는 모양새만 취해줘도 대성공입니다. 이런 중국의 태도는 지렛대가 돼 북한에 대단히 큰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공동선언문에 밝힌 내용은 자신들의 기존 입장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로,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지지가 아니라 환영으로, 북한을 세심하게 고려했습니다.
북한에 선결조건을 요구하기보다 6자회담을 빨리 시작하자며 은근히 북한의 입장을 두둔했습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의 정상이 첫 만남에서 호감과 신뢰의 바탕을 닦은 만큼 앞으로 양자간 협의가 선순환할 가능성이 커진 것은 분명히 의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을 왕따시켜 굴복하게 만드는 작전을 완성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대한 불쾌감이 커도, 우리에 대한 호감이 높아져도 북한에 대한 전략적 배려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외교적 속내는 뻔합니다. 이를 우리가 바꿀 힘은 사실상 없습니다. 그러니 미국에 기대서, 중국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지금의 상황을 이어가는 것은 너무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외교 전략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요인으로는 핵을 갖고 있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핵을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성을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핵을 보유하지 않아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음을 믿게 하면 됩니다. 전자는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우리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도, 주도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후자는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퍼주기냐, 아니냐'만 따지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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