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흙무더기를 뒤졌습니다. 못이 나오고. 기다란 금속 자재도 나오고. 썩어가는 검은 비닐도 나왔습니다. 건설폐기물입니다. 환경보건기술연구원에 부탁 드려 토양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대조군이 필요해서, 근처 야산에서도 땅을 파 시료를 얻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석회(ca) 성분이 야산에서 채취한 대조군보다 80배나 많이 검출됐습니다. 석회는 시멘트의 주성분이니까, 건설폐기물의 DNA를 검출해낸 셈입니다. 이 석회 성분이 나무의 영양분 흡수를 방해해서, 말라 죽게 만든 것입니다. 잿빛 흙에서는 중유 성분까지 나왔습니다. 이건 도로포장재로 쓰는 아스콘에서 나온 건데,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성분입니다. 죽음의 땅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범인은 누구일까요. 누군가 흙을 덮어버린 건 2005년입니다. 흙을 60cm 덮었기 때문에,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안입니다. 땅주인은 2005년 성토 작업을 하겠다며 일산 동구청의 허가를 받고, 현장 사진을 찍어 구청에 보냈으며, 구청은 작업이 잘 끝난 것으로 판단해 준공을 승인했습니다. 땅이 높아지면서 주인은 지목을 ‘답’에서 ‘전’으로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면 땅의 쓰임새가 많아지면서, 땅값이 오르기 쉽습니다. 땅주인은 그러고 3년 뒤 2008년, 이곳을 조경업자에게 임대했고, 그 뒤로 5년간 수많은 묘목이 말라죽기를 반복해온 겁니다. 불법 매립, 대체 누가 그랬을까요?
일산 동구청에는 명함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2005년 매립 시공업자가 구청에 남긴 명함입니다. A건설 이 모씨. 지금은 건설사 이름이 바뀌어 충북 영동에 가있습니다. 영동의 건설사를 찾아갔습니다만, 사장은 A건설을 인수한 건 2002년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법인 등기부등본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씨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2005년 일산 동구청에 A건설 임원이라면서 명함을 남긴 이 씨는, 당시 있지도 않은 유령 회사의 명함을 남긴 셈입니다. 건설폐기물 매립을 작정하고 유령 명함을 남긴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건설사였지만, 구청은 그걸 모른 채 매립을 허가하고 준공을 내줬습니다. 매립 허가와 준공 승인은 “문 닫은 건설사는 못 한다”, 뭐 이런 규정이 없으니까 술술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힌트도 있습니다. 건설폐기물의 생김새입니다. 고양에는 수도권에서 나오는 건설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체가 몇 군데 있습니다만,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술적 차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나오는 폐토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폐토에 돌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폐토의 흙이 얼마나 균일한지, 이런 게 사람의 지문처럼 어떤 업체의 폐토인지 힌트를 준다는 것입니다. 업계 사람들은 폐토를 보면 금방, 어디 거구나 알게 됩니다. 땅 속 폐토를 만져본 사람들은 현장에서 한 업체를 지목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어서, 레이저의 눈빛으로 업체들을 계속 감시할 생각입니다.
일산 동구청은 뒤늦게 불법 매립을 확인한 만큼 토지주에게 땅을 원상 복구하라고 시정 명령했습니다. 기한은 7월 1일까지입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땅의 표면에 있는 황토를 전부 들어내고, 밑에 깔아놓은 딱딱하게 굳은 건설폐기물 층을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비용이 좀 들어갈 겁니다. 그때까지 땅을 원상 복구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동구청은 밝혔습니다.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구청에 유령 명함을 남긴 사람부터 찾을 텐데, 자기는 보나마나 모른다고 하겠죠. 폐토가 나온 폐기물 처리업체도 모른다고 잡아뗄 것이고, 땅주인도 모릅니다~로 일관할 겁니다. 피의자들은 대개 아는 게 없습니다. 나무가 죽든 말든, 사람들이 먹는 농작물이 오염되든 말든, 뒷구멍으로 열심히 폐기물 묻고 계신 분들은 정신 좀 차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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