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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두환 추징금 환수…사회 정의 구현 위한 마지막 기회

환수 특별팀, 과거 재판 기록 토대로 비자금 추적 중

[취재파일] 전두환 추징금 환수…사회 정의 구현 위한 마지막 기회
전두환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검찰이 특별팀을 구성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검찰 입장에선 ‘24시간-하루’가 천금만큼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일 겁니다. 남은 추징금 1672억원의 시효가 10월11일, 앞으로 110일도 남지 않은 터라  ‘신발 한짝’이라도 찾아야 시효를 연장할 수 있게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손 놓고 있다 이제야 특별팀을 구성했냐고 비판의 시선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검찰이 추징금 환수에 있어선 항상 한 발 늦었습니다. 2006년 전두환 은닉 재산 중 하나였던 서울 서초동 토지에 대해서도 언론 보도 후에야 추징을 했고, 2013년 10월11일로 추징금 시효 3년을 연장시킨 것도 검찰의 손이 아닌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백만원 자발적 납부 덕이 컸습니다.

이미 전두환 추징금은 사법정의를 떠나 사회정의의 문제가 됐습니다. 형법상의 추징은 징역이나 벌금 등 본형에 추가되는 일종의 부과 형벌의 성격이 강합니다. 범죄와 관련된 부정한 이익을 범인에게 남겨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몰수가 불가능할 때 그 만큼의 액수를 금전으로 환산시키는 것입니다. 대부분 추징금 미납의 경우 사법정의와 연결시키는데 전두환 비자금은 사회정의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건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형벌이 온당하게 부과되지 않은 탓이 크고 그 책임에선 정치권, 법원, 검찰,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시민을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그는 사면을 받았고, 재산이 없다지만 여전히 대저택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호화 골프를 치고 있고, 새정부 출범 때나 정치권이 요동칠 때 마다 정치권 인사들의 접견을 받으며 제왕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를 볼 때 일반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 더욱이 광주 민주화 운동 유공자와 그 유족들이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분노를 넘어설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미납 추징금이 사회정의와 직결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섭니다. 1996년 그를 기소한 주체는 검찰입니다. 그리고 1년 전인 95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면죄부를 준 것도 검찰입니다. 성공한 내란은 처벌이 어렵다는 독일의 형법 이론을 빌려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검찰은 1년 만에 뒤집어 그를 기소했습니다. 
이런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는 데 정치권과 법원의 책임도 큽니다. 1980년 대 전두환 정권의 폭정에 입을 다물고 시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침묵했던 정치권은 뒤늦게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검찰이 기소하자, 한쪽 눈을 감고 있던 법원은 그제 서야 무기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긴 침묵을 끝으로 드디어 정의를 찾는가 싶더니 1997년 정치권은 그런 그에게 사면을 내립니다.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목 때문이었습니다.

형벌이 생긴 근원은 ‘응보’입니다. 국가가 대신 해주는 복수로, 사적 복수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해 국가가 대리해 합법적으로 응분의 대가를 내리는 겁니다. 이 때문에 법원을 포함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기관은 법테두리 내에서 형벌을 내릴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용서를 대신 내릴 수 있는 권한은 위임을 받지 않았습니다. 형벌에 있어서 용서는 온전히 피해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을 국가가 원상회복해 줄 수 없고, 그 고통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장 힘들게 지낸 피해자의 의견이 무시된 사면은 그가 자행한 범죄, 그를 두고 벌어진 왜곡된 역사가 재생산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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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의’로 인해 시민이 죽었고,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정의’를 외쳤고, 어렵게 찾은 정의를 다시 ‘왜곡된 정의’로 만들어 버린 데는 언론, 법원, 검찰, 정치권도 한몫 했습니다. 이런 탓에 전두환 추징금은 우리 사법정의를 넘어서 ‘사회정의, 역사정의 바로 세우기’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전두환이 거둬들인 9500억원 환수 가능할까
검찰 관련

그에게 다시 형벌을 부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미 사면을 받았고, 일사부재리 원칙 때문에 다른 죄, 즉 추가범죄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형벌을 부과해 수감시키거나 법정에 세우는 건 어렵습니다. 그나마 남은 형벌이 바로 추징금입니다.
96년 전두환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그가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은 9500억여원이라고 검찰은 밝혔습니다. 법원이 선고한 추징금은 2200억여원이었는데, 그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화폐가치로 환산하지 않아도 충분히 9,500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전두환 정권 말인 1987년 국가 예산이 15조5천억원, 국가 예산의 16분의1 정도를 챙긴 것과 마찬가지니까,  대기업 두 곳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그 규모가 큽니다.

그러나 당시 수사팀은 공소시효와 대가성 등 법률적으로 기소 가능한 것만 계산해 2천억원정도를 뇌물로 판단했습니다. 이 역시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불법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과거 재판기록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합니다.
그는 당시 현대그룹 220억 원, 삼성그룹 220억 원, 동아그룹 180억 원, 한진그룹 160억 원, 대우, 롯데그룹 각 150억 등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43개 곳으로부터 수시로 청와대 집무실에서 돈을 챙겼습니다. 기업들이 이렇게 돈을 건넨 준 이유는 뭘까. 당연히 대가를 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유를 1996년 첫 공판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오히려 밤잠을 못 잘 정도로 불안해했고, 기업인들은 세금을 내는 것 같은 사명감에서 돈을 준 것이다”

통장 잔고가 29만원이라는 발언 등 그가 남긴 어록 중 하나입니다. 죄의식이나 부끄럼없이 뇌물을 받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언입니다.

여기서 과거 재판 기록을 이야기한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최근 구성된 검찰 특별팀도 과거 재판기록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비자금이 어떻게 구성됐는지부터 살펴 추적을 해나기기 위해섭니다. 당시 수사의 핵심은 뇌물보단 내란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업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뇌물 수사를 진행했고, 돈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기소를 하기 위해선 ‘받았다는 것’만 확실하게 입증하면 되기 때문에 ‘어디에 썼는지’까지 확인할 여력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96년 전두환 비자금을 수사한 검찰은 9500억원 중 7000억원이 통치자금으로 사용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치 활동에 활용했다는 건데, 여기엔 정치를 위한 각종 행사, 선거에 소요된 비용, 정당 운영비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나머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후인 지난 2004년 그의 아들 전재용씨가 비자금 채권 일부를 현금화시키다 들통 난 적이 있는데 그 뒤론 비자금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특별팀은 이처럼 아직 확인되지 않은, 드러나지 않은 비자금을 찾아서 추징금을 환수하려고 합니다.

20년 넘게 돈세탁을 했으니 찾기가 어려운 건 당연합니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으니 그 흔적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입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자녀들이 소유한 재산을 역추적하는 방법도 검찰은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의 재산 증식 과정을 역 추적해 전두환 비자금과의 연결고리를 찾겠다는 겁니다. 연결점만 확인되면 부패재산으로 간주할 수 있어 추징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입증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손만 놓고 있을 수 없고, 검찰도 이런 인식에 공감하고 있기에 특별팀까지 꾸렸습니다. 한 검사는 “지금까지 뭘 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환수에 착수 했냐”는 비판은 받을 수 있지만, “결국 못 찾았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비판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특별팀까지 구성했는데 아무런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난다면 검찰 입장에서도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추징금 시효를 코앞에 두고서야 ‘지연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나선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도 성공 못하면 앞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선배들의 과오와 침묵을 대신 책임지려 나선 결기 있는 후배 검사들이 추징금 환수로 검찰의 업보를 씻을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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