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중국. 간단한 문제를 하나 내 보죠. 다음 상황에서 중국이 가장 바라는 상황을 순서대로 나열해 보세요. ①남북한이 현재와 같이 분단된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한다. ②남북한이 통일하면서 미군이 철수한다. ③남한에 미군이 주둔한 상태에서 분단돼 있는 현 상태가 계속된다. ④남한이 북한을 통일하면서 미군이 중국의 턱밑까지 진출한다. 풀기 쉽죠? 답은 당연히 ①→②→③→④번 순입니다. 요는 중국의 관심이 남북한의 통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군의 동향에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중국을 상대로 쓰겠습니까? 즉, 북한의 핵보유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어서라기 보다 이를 빌미로 미군이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증강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나아가 북한의 핵보유가 동북아시아에 핵보유 도미노를 불러 올 가능성에 대해 우려합니다. 북핵 위협을 이유로 일본이 전술핵 보유에 나서고, 결국 대만까지 핵무기를 갖는 사태로 이어진다면 중국으로서는 최악입니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반드시 핵보유를 포기하게 한다기 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고 관리만 할 수 있다면 만족입니다. 요컨대 북한이 핵을 들고 계속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지금과 같이 대화 국면으로 상황을 가져가기만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내용을 고려해 볼 때 중국은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을 각오하고서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박을 가할까요? 아니죠. 북한이 더 심하게 말썽(예를 들어 계속 미사일과 핵실험을 하며 미국과 세계 여론을 계속 자극하는 등의 행동)을 부리지만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도와 줄 것입니다.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니까요. 6자회담이 실질적인 협상이 되도록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는 한국, 미국, 일본과 달리 우선 회담 테이블에 앉자고 중국이 주장하는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갑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서 설명한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이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이 남북한의 전쟁 가능성을 무릅쓰고라도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1997년 상황처럼 말이죠.
일본은 간단하게 정리하죠.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 가장 호들갑을 떨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면서도 한미일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일본도 북한 핵의 사정거리 내에 있으니까 실재하는 위협이고 따라서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다만 북한이 일본에 핵공격을 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에서 그런 이유보다는 북한 핵을 빌미로 다른 속셈을 차리려는게 더 큽니다. 북한 핵을 계기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럼으로써 일본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려합니다. 아울러 북한 핵을 핑계로 군사 대국화의 명분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 가장 속내를 짐작할 수 없다고 느껴지지만 의외로 가장 분명합니다. 북한의 의도는 '나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핵확산과 개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각종 제재를 풀고 경제 원조를 해주면서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맺자'입니다. 요즘 북한이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다'라고 말하면서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회담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비핵화'는 우리가 과거에 써 왔고 그래서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비핵화'와 전혀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북한에 모든 핵무기와 핵시설을 없에는 대신 경제원조를 해주겠다'는 '비핵화' 논의를 해왔지만 북한은 이제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 미국과 동등한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핵무기 군축 논의를 하자'는 것으로 '비핵화'의 의미를 바꿨습니다. 다시 말해 '나만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국 너희도 북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핵무기(예컨대 괌과 일본 오키나와에 전개된 전술핵이나 항공모함, 잠수함을 통한 핵 전개)를 함께 없애야만 진정한 비핵화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은 자신들의 몸값을 대폭 올린 셈입니다.
따라서 김계관 부상이 중국에 와서 내놓은 '비핵화' 협상은 북한이 새롭게 내놓은 의미의 '비핵화'를 의제로 한 대화인 것이고 UN에서의 기자회견은 '비핵화의 뜻이 이렇게 달라졌는데 선제조건과 같은 흘러간 얘기를 하고있냐, 말도 안된다'는 표현입니다. 북한이 어떤 수사를 써서 어떤 수준으로 대화 제의를 해도 이런 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정리, 요약해보죠. 한마디로 북핵 게임의 참가자들이 갖고 있는 의도는 우리나라의 이익이나 바람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가 북한의 핵포기를 위해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중국은 그럴 뜻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습니다. 미국은 남북한간 전쟁을 억지하는 가장 큰 힘이지만 동시에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일본 역시 자신들의 잇속만 차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북한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는 사실상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사방이 벽이요 암초네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외교는 현재 어떻게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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