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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웨덴에선 핵폐기장 유치전이 벌어진다고?

고준위 핵폐기장 유치에 목숨 건 두 도시 이야기

[취재파일] 스웨덴에선 핵폐기장 유치전이 벌어진다고?
어제부터 초등생 딸내미가 사회 공부가 어렵다며 책상에 앉아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요즘 <지역 자치>에 대한 걸 배우고 있는데, 님비 현상(지역 이기주의) 같은 용어를 처음 접하는 어린 아이로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가 봅니다. 딸내미 참고서에는 님비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 쓰레기 매립장 설치 문제 등이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합친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쓰레기 폐기장을 만든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지역 주민의 반대 함성이 벌써부터 귓가에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핵쓰레기장, 그것도 오랜 기간 강한 방사성 물질을 내뿜는 <고준위 핵폐기장>을 유치하려고 도시 간에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스웨덴 포스마크(Forsmark) 와 오스카샴(Oskarshamn)의 얘기인데요, 두 도시의 시장이 지난 2009년 6월 최종 부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는 날까지 치열하게 유치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마치 올림픽 개최지 선정 때처럼 말입니다.

취파용 스웨덴 지도

<고준위 핵폐기장>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든 뒤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나 이를 재처리한 폐기물 등을 최종적으로 처분하는 곳을 말합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엄청나게 뜨거운데다 강한 방사성 물질을 오랜 기간 방출하기 때문에 보통 30~50년동안 물 속에서 냉각한 뒤에 지하 3백~1천미터 깊이의 암반층에 묻을 수 있도록 폐기장을 건설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면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기술력 확보와 지역 이기주의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고준위 핵폐기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아직까지 한 곳도 없습니다. 다만, 스웨덴과 핀란드, 이 두 나라는 <고준위 핵폐기장>을 건설할 부지를 확보한 상태인데요, 앞서 말씀드린 치열한 유치전이 바로 스웨덴에서 벌어진 겁니다.

저는 지난달 한국여기자협회에서 주최한 '2013 이슈포럼-원자력 안전과 사용후 핵폐기물 이해하기' 참가자로 스웨덴 오스카샴을 다녀왔습니다. <고준위 핵폐기장> 유치전을 벌이다, 포스마크에 밀려 탈락한 곳입니다. 먼저, 오스카샴의 사진을 좀 볼까요?
오스카샴
오스카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스웨덴의 명성을 말해주듯, 오스카샴은 인구 2만 2천명의 매우 작은 도시인데도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습니다. 바다와 숲을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랍니다. 일정을 시작하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했습니다. 소도시의 중심에는 작은 상점들이 있고, 문화센터와 도서관 등이 있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뛰어난 나라여서인지,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보아도, 다들 중산층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부유하고 평화로운 이 곳에서 왜 <고준위 핵폐기장>을 유치하려고 했을까요? 

스웨덴은 모두 10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매년 2백톤 정도의 사용후핵연료가 나옵니다. 말씀드린대로,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는 매우 온도가 높고 강한 방사성 물질을 내뿜는데,스웨덴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각 원전에서 9개월~1년 정도 냉각한 뒤 중간저장시설인 CLAB (Central Interim Storage for Spent Fuel) 으로 운송해서 30년동안 저장하고 있습니다. 오스카샴에는 원전 3기가 있고,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인 CLAB이 건설돼 있습니다.

수조
수조

북한의 핵무기 개발 뉴스 때마다 나오는 푸른 수조가 보입니다.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시키는 수조입니다.
이 시설은 최대 1만톤의 핵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서 30년 이상을 냉각시킨 뒤에 최종처분장, 즉 <고준위 핵폐기장>으로 보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 원전을 방문해도, 똑같은 핵연료봉 냉각 수조는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스웨덴처럼 중간저장시설이 따로 있진 않습니다. 우리는 울진,월성,고리,영광의 4개 원전 단지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임시저장하고 있는데요, 중간저장소나 최종처분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각 원전에서 임시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현재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상태이지만, 중간저장소나 최종처분을 위한 핵폐기장 건설은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헥폐기물


오스카샴에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중간저장시설 뿐 아니라 지하 450 미터에 건설된 "에스포 암반 연구소"가 있습니다. 앞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지하 3백~1천미터에 처분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이 연구소는 지하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저장하는게 가장 안전할 지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목조로 지어진 건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휴양시설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지하 450미터 지점까지 내려가면 새로운 전경이 펼쳐졌습니다.

지하동굴


지난 1995년 문을 연 에스포 연구소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암반의 특성이 어떨 때 방사성 물질을 가장 잘 방어할 것인지, 보관용기를 수직 또는 수평, 어느 방향으로 묻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지, 지하수가 흐를 때는 얼마나 방사성 물질이 녹아나갈 것인지 등등 처분 방식에 대한 조건을 다양하게 만든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굴 곳곳에서 지하수가 스며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경주에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방폐장을 만들 때 지하수 때문에 많은 우려를 낳은 바 있어서 한 번 더 돌아봤나 봅니다. 제 시선을 의식한 가이드는 지하수가 흐르는 곳을 가리키면서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실험할 수 있어서 안전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게 아니라, 지진이나 해일 등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과학적 연구를 통해 증명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지하동굴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스웨덴 국토가 오랜 세월 어떻게 이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연표였습니다. 60억년 전부터 시작하는 연표를 따라가보니, 스웨덴 국토는 참으로 왕성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북반구에 있던 땅덩어리가 어느새 남반구에 가 있기도 하고, 다시 북반구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스웨덴 국토는 긴 세월동안 종횡무진 이동해왔지만, 인간이 등장한 이후엔 북반구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왔고, 특히 앞으로 1백만년 동안은 1cm 만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따라서 1백만년동안 지하 깊숙한 암반에 핵폐기물을 저장해도 방사성 물질의 유출 같은 사고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핵폐기장
핵폐기장


사실, 원자력 발전이나 핵폐기물에 대한 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이번 스웨덴 방문 한 달 전부터 강의를 듣고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하느라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쉽게 이야기를 풀어갈 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런데, 동굴에 걸려 있던 연표는 지하 암반의 상태에 대한 심오한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데 일반인들이 한 눈에 의미를 이해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가장 쉽게 전달할 방법을 열심히 연구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핵폐기장


주민들에게 쉽게 정보를 설명하는 일은 스웨덴에서도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스웨덴 원전 회사들이 모여 만든 핵폐기물 관리업체, SKB의 스톡홀름 본사에서 사이다 엥스트룀 부사장을 만났을 때, 그녀가 강조한 것도 <고준위 핵폐기장>부지 선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스마크.오스카샴 주민들의 핵폐기장 유치 찬성률이 각각 80% 이상으로 높아지기까지 30년동안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업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것들 - 지하수는 지금처럼 마실 수 있나요? 산딸기 수확에 문제는 없을까요? 등등-을 알려주고,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어디든 찾아갔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주민이 2만 2천 명인 도시에서 무려 1만 1천 번 주민과 만났다는데요, 점심시간 직장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동네 이웃들과 티타임을 즐기는 여성들을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지 선정 과정을 설명하는 엥스트룀 부사장은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를 선택하게끔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해낸 일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핵폐기장


여기서 맨처음에 들었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개발이 시급하지 않은 지역에서 왜 <고준위 핵폐기장>유치에 열을 올렸을까요? SKB 홍보담당자인 제니 리즈에게 물었습니다. "핵폐기장 유치에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무엇이었나요? "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저희는 주민을 설득한 게 아닙니다. 단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지역에 절대 현금으로 보상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주민들을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더니, 그 안전성을 믿고 필요성을 공감한 주민들이 손에 쥐는 현금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핵폐기장 유치를 선택했다는 겁니다.

더욱이 지난 2009년 6월 <고준위 핵폐기장>의 최종 부지 선정에 앞서 포스마크와 오스카샴의 두 시장은 부지로 선정된 도시가 아닌 유치에 실패한 도시에, 부지 유치에 따른 지역 지원금 20억 크로나 (우리돈 3천억원) 가운데 75%를 양보하겠다고 합의했다고 합니다. 결국 포스마크가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로 최종 선정됐고, 오스카샴은 패배의 쓴 잔을 마셨지만 지원혜택을 1:3로 나눠 오스카샴이 더 많이 가져가게 됐습니다. 
핵폐기장

두 도시간의 협약,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유치에 실패한 도시가 지원금을 더 많이 가져간단 말입니까? 엥스트룀 부사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고준위 핵폐기장>이 건설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도시는 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센티브가 따로 주어지지 않아도, 핵폐기장 건설 그 자체가 도시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유치에 실패한 도시에 혜택을 더 주는 것이 오히려 공평할 수 있습니다." 
<고준위 핵폐기장> 건설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한다면 부지 선정에 따라오는 혜택쯤은 양보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홍보담당자 리즈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오스카샴이 핵폐기장 유치에 나선 것은 일자리 때문입니다. 스웨덴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서  일자리가 없다고 굶어죽진 않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겁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돈 한 푼 더 받아내자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필요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주민들이 <고준위 핵폐기장>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지난해 만났던 우리나라 원전 지역 주민들이 떠올랐습니다. 한수원 지원금의 배분을 놓고 30년 넘게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원전 인근 지역에 살고 있지만, 자녀들은 고향을 떠나 취업하는 걸 원하고 있었습니다.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정부는 조만간 <고준위 핵폐기장>의 부지를 마련하기 위한 공론화 프로세스에 들어갈 예정입니다.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에 건설 기간까지 따지면 수십년을 잡아야해서, 더이상 공론화를 미룰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책상.의자가 날아다니고, 반대편에 악쓰며 욕하고, 주먹이 오가는 과정은 생략했으면 합니다. 주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과학자의 입장에선 극히 유치한 것이라 해도, 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도, 주민들이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으면 합니다. 주민들이 내 손에 얼마가 떨어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안전성과 주변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을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계속 그 지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천 년 만 년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를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웨덴의 투명한 의사 결정 구조와 합리성을 우리나라 <고준위 핵폐기장> 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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