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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무간도'에 빠진 노점 단속반원

[월드리포트] '무간도'에 빠진 노점 단속반원
10여 년전 '무간도'라는 제목의 홍콩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국제적 폭력조직인 '삼합회'에 위장잠입한 한 경찰관과 거꾸로 경찰 첩보를 빼돌리기 위해 경찰관이 된 폭력조직원이 주인공이었던 영화입니다. 얽히고 설킨 인연이 가져다주는 고통, 이중생활로 인한 심리적인 압박감, 가중되는 정체성의 혼란 등을 탁월하게 그려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수작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내용의 '신세계'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이 '무간도'라는 영화를 연상시키는 일이 중국 우한시에서 실제 벌어졌습니다. 경찰은 아니고요, 청관, 즉 노점단속 담당 공무원입니다. 남성 현장단속반원 구이모와 본부의 여성 사무요원인 양모가 함께 노점상으로 나섰던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낮에는 청관 제복을 입고 노점단속 활동을 펼치다가 밤이면 지하철 역앞에 노점을 차려놓고 물건을 팔았던 것입니다. 한 누리꾼이 구이씨의 이런 생활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고 중국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무간도

낮에는 노점을 없애기 위해 일하다가 밤만 되면 스스로 노점상이 되는 청관. 최근 청관들이 각종 폭력 사고를 잇따라 일으켜 여론의 도마에 올라있었던 만큼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중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노점단속반원이 어떻게 노점을 할 수 있느냐'는 비난보다는 오히려 '청관 생활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노점상으로 나섰겠느냐'는 동정론이 더 많았습니다. 완장을 찼다고 마구 공권력을 휘두르는 청관들이 알고보니 일반 서민들과 같은 삶의 애환을 갖고 있다는데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간도

하지만 우한시의 청관관리 당국이 해명에 나서면서 오히려 여론이 정리되기는 커녕 악화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한시 당국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들 구이모와 양모로 하여금 노점을 했던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는데요, 내용인 즉슨 "돈을 벌기 위해 노점을 한게 아니라 노점상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체험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노점상 활동을 하며 기록한 일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일지에는 노점상으로 나선 사람중에 용돈이 필요한 대학생, 생활비를 더 벌고 싶은 회사원, 취직을 시켜주는 곳이 없는 장애인도 있었다면서 노점상인들의 형편과 어려움을 더 잘 알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간도

하지만 이런 해명이 상황을 진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습니다. 중국 누리꾼들은 오히려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비판은 "마약단속을 하겠다고 마약 중독자가 돼봐야 하나, 도둑을 잡겠다고 도둑질을 해봐야 하냐"는 것입니다. 노점을 직접 해봐야 노점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달리 제기되는 의혹은 공개된 사진이 도저히 몰래 찍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대놓고 찍은 티가 난다는 것이죠. 최근 우한시 청관들은 인도에 불법주차된 자전거를 단속하는 과정에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심지어 한 회원의 머리를 발로 짓밟는 장면이 공개돼 가담한 청관들이 모두 면직되고 담당 부서장은 보직해임됐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일부러 '쇼'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들의 노점상 활동을 일종의 '스파이 행위'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노점상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들속에 끼어들어 관련 자료를 확보한 뒤 나중에 더 철저히 단속을 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노점상인 척 하고 접근해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보다는 정식으로 공청회를 갖고, 노점상의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이를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무간도'라는 용어는 불교에서 일컫는 18층 지옥 가운데 가장 낮은 층의 지옥이라고 합니다. 죽음도 환생도 없이 영원히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이라고 합니다. 고통의 수준은 가장 낮다지만 무간도에 빠진다면 견디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한시 당국의 '쇼'였든, 새로운 발상의 실적 올리기였든 애꿎게 두 젊은 공무원들이 무간도에 빠진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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