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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란 감독, 내년 월드컵은 고향에서 TV로 봐라"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과 일전을 앞두고 우리 대표팀 최강희 감독과 포르투갈 출신인 이란 케이로스 감독, 양팀 사령탑간의 ‘장외 신경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우즈벡 기자가 최강희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두 팀 가운데 어느 팀이 본선에 올라가길 원하십니까? 최 감독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란이 좀 더 밉습니다. 우즈벡이 올라가는게 더 좋다고 해야될 것 같고, 반드시 이란에게 아픔을 줘야 된다, 저는 선수들과 그렇게 준비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 때 당했던 푸대접과 텃세 때문입니다.   

최 감독의 이런 발언을 외신을 통해 접한 이란 케이로스 감독은 과민반응을 보였습니다.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최강희 감독은 이란 국민을 모욕했고, 대표팀 감독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한국 축구의 수치다." "우리는 한국을 푸대접한 적이 없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심지어 "우즈벡과 함께 본선에 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우즈벡 유니폼을 한 벌 선물해주고 싶다"고 비꼬기까지 했습니다.

이란 케이로스 감독


처음에는 '자국 언론들 앞이니 일부러 그렇게 강한 멘트를 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케이로스 감독은 그제 전세기를 타고 입국한뒤 오후 첫 훈련때 국내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습니다. 보통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감독들은 하루 전 공식 기자회견을 제외하고는 상대국 언론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데, 케이로스 감독은 10분 가까이 긴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리고 작심한 듯 최강희 감독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최강희 감독은 한국대표팀보다 우즈벡 대표팀을 위해 일하는 사람 같다. 최 감독이 우즈벡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가 한 벌 준비해왔는데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만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다음 발언은 정말 억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한국 팬들 앞에서 나는 최강희 감독에게 묻고 싶다. 정말 우즈벡을 꺾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내가 보기에는 최 감독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는 우즈벡을 한 골차로만 이기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우즈벡을 꺾어야하는게 감독의 임무였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한국 팬들에게도 해명해야 할 것이다." 최강희 감독이 한 골차로만 이기고 싶어했다고요? 최강희 감독이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었나요? 그리고 멀쩡한 한국 팬은 왜 끌어들입니까?

최강희_500


최강희 감독도 다시 맞받아쳤습니다. "단순한 멘트를 놓고 국민 감정 운운했다는 것에 대해 섭섭합니다. 우즈벡 유니폼을 보내려면 한 벌 말고 선수들 것까지 11벌을 보내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란 감독이 세계적인 팀에서 좋은 것만 배웠기를 바랐는데, 엉뚱한 것만 많이 배운 것 같고 내년 월드컵은 포르투갈 고향에서 TV로 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참고로 케이로스 감독은 명문 레알 마드리드 감독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지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지도자입니다. 

이런 과민반응과 독설은 팀내 결속을 다지고 상대를 흔들려는 케이로스 감독의 심리전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 선수들의 승리 의지를 북돋워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강희 감독도 오랜만에 특유의 입심을 보여줄만큼 자신있는 모습입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때는 이란 간판스타 네쿠남과 우리 박지성 선수의 설전이 화제가 됐습니다. 네쿠남이 테헤란 홈경기를 앞두고 "한국팀에게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다"며 도발하자 박지성 선수가 "지옥이 될지 천국이 될지는 경기가 끝나봐야 알 것"이라고 응수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경기에서 우리는 네쿠남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 박지성 선수의 짜릿한 동점골로 값진 무승부를 거뒀습니다.

한국축구와 이란축구는 유난히 악연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외 신경전도 많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96년 아시안컵 때 우리 대표팀은 이란에 6대2 참패를 당했습니다. 한국 축구사에 손꼽히는 참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란 축구팬들은 아직도 한국을 보면 "Six-Two!"라며 그때의 대승을 언급한다고 합니다. 4년 전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우리가 이란에게 잊지 못할 아픔을 안겼습니다. 이미 본선행을 확정한 우리팀은 이란과 마지막 경기를 져도 상관없었고, 이란은 반드시 이겨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박지성 선수의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탈락했고, 북한이 사상 첫 본선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도 이란전이 마지막 경기군요. 이란이 더 절박한 상황도 그때와 비슷하고. 최강희 감독이 화끈한 승리로 8회 연속 본선 진출을 자축하면서 케이로스 감독을 고향으로 돌려보낼지... 오는 18일 울산에서 시원한 승전보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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