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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원세훈 불구속은 누구 책임?"

[취재파일] "원세훈 불구속은 누구 책임?"
최근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 공방이 뜨거워 지고 있다.

수사팀의 구속 의견이 법무부와 검찰 간의 '의견 조율'이라는 과정을 거치자 결국 불구속으로 뒤바뀐 데 대한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무엇이 잘못됐고, 그 잘못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수사에 '한 달', 결정에 '한 달'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윤석열 팀장)은 한 달 넘게 이번 사건을 수사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검사들을 비롯한 수사팀들 대부분은 밤을 꼬박 새고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기 일쑤였다.수사팀의 한 검사는 반복되는 밤샘 조사에 한 달 동안 5kg이 빠졌을 정도로 강행군이 이어졌다.

6달 전, 사상 초유의 '검란'을 겪은 터라 수사팀에는 절체절명의 위기 의식도 있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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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즈음이었다. 대검에서는 우려가 나왔다.선거법을 적용하는 것에 엄청난 정치적 무게가 있기 때문이었다.이번 수사 결과로 '촛불 시위' 정도가 아닌 '횃불 시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수사팀은 "정도로 가야 정치적 후폭풍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속 의견을 꺾지 않았고 채동욱 검찰총장도 동의했다. 이 의견 조율에 1주일 정도 걸렸다.

이번엔 법무부가 막아섰다.선거법 적용 자체가 무리한 것 아니냐는 황교안 법무장관의 의견이 대검에, 그리고 수사팀에 전달됐다.수사팀은 논리와 증거를 다듬어 재차 구속 의견을 보고했다.

황 장관은 응답하지 않았다.황 장관의 의견을 지지하는 쪽과 수사팀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검찰이 양분되는 모양새까지 나왔다. 이번 수사의 공보관을 담당했던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보강수사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났고 결국은 황교안 장관의 뜻대로 불구속 기소 결정이 났다.

수사에 한 달, 결정에 한 달이 걸린 셈이다.       
황교안

"약혼식은 못해도 결혼은 해야지"  

구속, 불구속을 따지는 신병 문제에 있어 한 수사 검사의 결론이 지휘부와의 조율을 거쳐 뒤바뀌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러나, 검사 개인이 아닌 수사팀의 결론이 뒤집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니, 매우 비정상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공안'과 '특수'의 시각차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논리다. 국정원 의혹 특별수사팀은 공안과 특수에서 나름 정평이 난 검사들로 구성됐다. 그런 수사팀 내에서 갑론을박을 거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오히려 수사팀 내 공안에서는 '구속', 특수에서는 '불구속'을 주장하는 편이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공안으로 대표되는 황교안 장관과 특수로 대표되는 채동욱 총장의 의견이 맞서면서 나온 편가르기성 추측이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베테랑 공안, 특수 검사들이 한 달 넘는 수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 황교안 장관의 반대 의견에 따라 바뀐 것이다. 황 장관은 "지휘권을 발동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의견 조율에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고, 조율을 거쳐 검찰이 불구속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결혼을 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한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약혼식은 할 수가 없게 됐다.약혼식을 못하더라도 결혼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약혼식=구속', '결혼=선거법 적용'이라는 얘기다. 황 장관은 명백하게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그것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시간끌기'라는 미증유의 초식을 사용했다. 

다시 검찰개혁..

금태섭 변호사가 얼마 전 페이스 북에 이번 사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요약하자면, 황 장관이 잘못했지만 책임은 검사가 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장관의 부당한 지휘나 간섭에 대해 검사들이 "안됩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된다는 논리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검사의 인사권은 법무장관에게 있다.인사권자에게 '맞서라'는 얘기와 다름 아니다. 기자 조직에서도 위에서 '찍어누르는' 경우와 종종 맞닥뜨린다. 기개 있게 '맞서는' 것이 폼 나는 일이지만, '약혼식'을 포기하고 '결혼식'을 설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기자도 인사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황교안 장관의 부당한 지휘권 행사다.정무직인 장관의 여러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수사팀의 결론이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결론이 바뀌는 과정을 '정상적인 의견 조율'로 볼 수 있는 국민은 많지 않다.

검찰의 신뢰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책임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검찰 개혁은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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