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IBK 기업은행의 어린이집은 기업들이 설치한 직장 내 어린이집 가운데서도 보건복지부가 모범사례로 선정할 정도로 잘 운영되는 곳이긴 합니다. 하지만 꼭 이 곳이 아니더라도, 여러 유형의 어린이집 가운데 기업이나 기관이 직접 설치한 어린이집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아이를 맡기기 위해 멀리 돌아갈 필요 없이 아이들과 함께 출퇴근이 가능하고, 사무실에서 가까우니 안심도 되고, 무엇보다 야근 회식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91년 제정된 영유아보육법에는 근로자 5백명 이상 사업장 또는 여성 근로자 3백명 이상 사업장은 직장 내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업장이 919곳인데요, 정작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집계해본 바에 따르면 법대로 어린이집을 설치하고 있는 곳은 359곳 즉 39%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35% 정도는 회사 근처 어린이집과 위탁 계약을 하거나 아님 육아 수당을 주는 형태로 보육 의무를 대체하고 있었고, 26%에 해당하는 236곳은 이런 대체수단도 없이 아예 보육 의무를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오는 2017년까지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리기로 하고 종합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지원금 2억원을 3억원으로 증액하고 까다로운 설치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중소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늘렸습니다. (중소기업은 법규상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대상은 아니지만 근로자 규모나 보육수요로 봤을 때 가장 어린이집을 필요로 하는 사업군입니다.)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어린이집을 설치할 경우 지원금을 최대 6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고, 설치와 관련된 상담팀도 상시 운영할 방침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종합대책은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썩 괜찮은 당근을 제공해서 기업/기관들의 자율적인 움직임을 유도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안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근만으로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는 겁니다. 현재 영유아보호법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어린이집 설치 의무대상으로 지정해놓고 있지만,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행정처분을 하는 등의 강제 이행조치에 대한 조항은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기업들의 명단을 조사해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공개 범위를 더 확대해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까지 해서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입니다. 강제 이행조치가 없으니 공개적으로 면박(?)을 줘서라도 어린이집 설치를 유도해보겠다는 겁니다.
올 1월 처음으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36개 미설치 사업장의 리스트가 공개됐습니다. 어제 8시 뉴스 리포트에는 시간 상 다루지 못했지만, 과연 명단 공개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236개 기업/기관 가운데 대기업 계열사 10곳을 골라 1월 이후 지금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그 결과 딱 1곳이 올 9월에 어린이집 개소를 목표로 공사를 하고 있을 뿐이었고, 나머지 9곳은 검토중이거나 계획만 가지고 있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습니다. 정부의 명단 공개가 큰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어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으니 추이를 지켜보고 과태료같은 강제이행조치를 도입할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문제는 당장 내년부터는 어린이집 설치를 대체해왔던 대체 보육수당 지급을 금지시키겠다는 내용이 대책에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강제 이행조치는 없고, 기업들이 차일 피일 어린이집 설치를 미루다 당장 내년에 대체 보육수당 지급만 없어져버리면 아이를 가진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를 맡길 마땅한 어린이집도 없는 상황에서 지금껏 받아오던 보육수당만 못받게 되는 답답한 상황을 맞게될 수 도 있는거죠.
이제 가정친화적 경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향후 우리 나라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기업/기관들의 인식 전환과 섬세한 정책 운용으로 위의 제 걱정이 그저 기우에 그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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