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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폭력의 대물림

[취재파일]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폭력의 대물림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늘 하던 사람이 더 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폭력도 예외는 아닌 듯 합니다. 개인적인 군생활의 경험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 유난히 후임들을 괴롭히는 선임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선천적으로 나쁘거나 뭔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임이 술자리에서 자신의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선임이 하는 만행은 자신이 직접 당했던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당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해 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학교폭력과 관계된 학생들을 만나 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폭력의 가해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군가에게 그만큼 당한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나쁜 것은 쉽게 배운다' '당한만큼 돌려준다'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안타까운 구절들입니다. 이런 구절들에 벗어나지 않은 또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운동은 맞으면서 하는 거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아직도 폭력이 용인되고 있는 운동부의 폭력입니다.
 
17살 박 모군은 지난 3월, 대만에 있는 축구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대만에서 갈비뼈가 2개 부러졌습니다. 탈취제를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배에게 맞았기 때문입니다. 갈비뼈가 부러진 박군은 한국에 돌아와서 시합을 뛰었습니다. 쉬기도 했지만, 운동도 계속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습니다. 계속 아프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어머니가 감독에게 항의전화를 했습니다. 다음날 아들은 짐을 싸들고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지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내려갔습니다. 박군은 견딜 수가 없어 숙소를 나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박군은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박군과 박군의 어머니는 항의전화를 받은 감독과 코치가 박군을 때렸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박군은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감독과 코치에게 20대 넘게 맞았다고 얘기합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맞았다는 것보다 아픈 아이를 때렸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갈비뼈가 두 개나 부러진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때릴 수 있냐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감독과 코치는 박군이 갈비뼈가 부러진 걸 알면서도 때렸을까.
그리고 왜 때렸을까.
박군 어머니의 주장대로 항의전화 때문에 화가 나서 박군을 때린 걸까.

감독과 코치를 만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오전에 박군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그날 정오가 좀 지나서 박군에게 매를 든 건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전화 때문에 때린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박군의 행실이 바르지 않아 훈계 차원에서 체벌을 했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박군의 갈비뼈가 부러진 걸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박군이 아프다고는 했지만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오지 않아 박군의 갈비뼈가 부러진 걸 몰랐다는 겁니다. 다른 선수들은 병원에 다녀오면 진단서를 비롯해 아픈 곳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는데 박군은 제대로 된 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는 친구들 중에 가끔 운동이 힘들어 꾀병을 부리는 경우도 있고, 평소에도 박군의 행실이 바르지 않아 박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병원 관련
하지만, 박군과 박군의 어머니의 주장은 다릅니다. 박군은 병원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진단 받은 사실을 수차례 이야기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엑스레이 사진도 들고 가서 보여줬다고 합니다. 박군과 어머니가 내민 진단서에는 4월 초의 날짜가 찍혀 있었습니다.

감독과 코치는 박군이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왔는데 이를 판독할 수 없었고, 진단서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감독과 코치에게 이 부분이 서운했다고 얘기 합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한번도 병원을 데리고 가지 않은 감독과 코치를 원망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병원을 한번만 갔어도 갈비뼈가 부러졌던 것을 알았을 텐데, 혼자 아이를 병원에 보내고 아이 말을 믿어주지 않은 감독과 코치가 너무 야속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더니 갈비뼈가 부러진 아이에게 매질까지 했다며 속상해 했습니다.

결국, 박군은 감독과 코치에게 20대 정도 맞고서야 코치와 함께 병원으로 갔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박군과 어머니는 감독과 코치를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감독과 코치를 상해죄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그런데, 박군은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동료와 후배 4명이 박군에게 구타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며 박군을 고소한 겁니다. 그 중에는 박군이 때리고 밀어, 넘어지면서 골반 뼈가 부러졌다고 주장하는 동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농담을 하며 후배를 괴롭히기도 했다고 주장합니다.

박군을 고소한 학부모들도 박군의 평소 행실이 너무 나빴다고 얘기합니다. 술, 담배도 하고 후배들이나 동료들을 계속 때리고 괴롭혔다고 박군을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감독과 코치가 어쩔 수 없이 박군을 체벌한 것이라고 감독과 코치를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박군의 어머니가 감독과 코치를 상대로 거액의 합의금까지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군의 어머니는 감독과 코치에게 합의금을 요구했지만, 합의할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강하게 전하기 위해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했다고 전해왔습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이 동료와 후배에게 그대로 또 폭력을 행사하는 폭력의 대물림.

축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모인 한 축구클럽은 학생이 지도자를 고소하고, 그 학생은 또 동료와 후배에게 고소를 당하면서 진흙탕으로 변했습니다. 체육 분야 관계자들은 예전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운동부에서 암묵적으로 묵인되는 폭력이 낳은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운동은 좀 맞으면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동안 세상으로 표출되지 않았던 운동부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수직적이고 강압적이고 무조건 승리지향적인 운동부의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축구선수를 육성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성인도 아닌, 사춘기 청소년 20명을 운동시키고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어긋날지도 모르는 혈기왕성한 청소년들만 모인 곳에서는 엄격한 위계질서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폭력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결코 허용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에도 수많은 축구클럽이 있지만, 폭력이 교육의 수단으로 동원되지 않습니다. 체벌과 강압은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당장 효과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지도자도 선배들도 빠져드는 늪입니다.

전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팀에는 히딩크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당시 히딩크는 국민 영웅이었습니다. 우리는 히딩크라는 축구 감독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봤다며 흥분했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리더십은 권위를 존중하되, 수평적 인간관계의 형성이었습니다. 강압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통제가 아닌, 아래에서 권위를 얻어 질서를 잡아 목표를 향해 즐기면서 도전하는 리더십을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그런 히딩크와 그런 감독 밑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즐겁게 그라운드를 누비는 축구선수들을 보며 환호하고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1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축구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직적 문화와 폭력이 용인되는 과거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축구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을 위해 이제는 이런 나쁜 잔재를 청산해야 할 시점입니다.

"성추행은 나쁜 것이고, 이런 나쁜 짓을 당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성추행에 대한 사회적 입지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운동을 한다고 맞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혹한 폭력과 체벌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용기. 그리고 폭력과 강압으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폭력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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