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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치졸한 배신의 싸움 4년…그 끝은?

[취재파일] 치졸한 배신의 싸움 4년…그 끝은?
'누가 더 잘못했나?'

배신의 게임이 끝났다. 그것도 아주 치졸하고 지저분했던 게임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늘 판유리 과점업체인 KCC와 한국유리에 담합 혐의로 과징금 384억원을 부과했다. KCC 225억원, 한국유리가 160억원을 부과 받았다.

이들이 담합한 유리는 판유리다. 일반 아파트에 쓰이는 5~6mm짜리 유리인데 가장 대중적인 유리로 유리시장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담합이 이뤄진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출액만 1조2천억원에 달할 정도다.

유리 시장의 맹주였던 한국유리는 80년대 이 시장에 뛰어든 KCC에 시장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었다. 2천년대 들어서는 양사가 판유리 시장의 80%를 나눠먹게 된다. 어느 한 쪽이 가격을 내리기라도 하면 금방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로 손을 잡았다. 두 회사만 담합하면 국내 판유리 시장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였던 KCC 역시 ‘why not'이었다. 2007년부터 두 회사는 판유리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고, 네 차례에 걸쳐서 60% 가까이 값을 끌어올린다. 제곱미터당 3천4백원 정도 하던 판유리는 2년 뒤에 5천5백원이 넘어 가게 된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두 회사가 소비자들이 2천억원이 넘는 부담을 추가로 떠안은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의 밀월관계는 한국유리가 먼저 깼다. 공정위에서 담합혐의로 조사하는 분위기가 감지됐고, 담합 사실을 먼저 신고하면 과징금 부담을 현격하게 줄여주는 ‘리니언시’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공정위가 현장조사를 하자마자, 공정위에 자기들이 담합했다고 먼저 신고를 한다. 한마디로 KCC 뒤통수를 먼저 치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유리 본사와의 관계가 비틀어져 ‘신고 조건 미비’라는 어이없는 판정을 받고 신고 우선권을 KCC에게 내주게 된다. 신고 우선권을 뺏기게 된 한국유리는 또 공정위를 상대로 우선권을 유지해달라며 소송까지 제기했다.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손을 들고 경쟁하는 꼴이다. 한 푼의 이익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게 기업의 속성이라고 한다지만, 지저분한 진흙탕 싸움이다. 그런데 이 싸움이 더 구린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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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리가 신고 우선권을 KCC에 빼앗기고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을 때, 공정위의 한 과장이 김앤장으로 전격 영입된다. 실무 과장이 이례적으로 김앤장으로 들어갔는데, 당시 김앤장은 한국유리의 담합 건을 변호하는 법적 대리인이었다. 그리고 그 과장은 이 담합 건을 조사하던 실무 과장이었다. 김앤장은 영입한 그 과장이 절대 한국유리 담합 건을 담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KCC가 또 응수를 한다. 2008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 수장으로 있었던 권오승 전 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전격 영입한 것이다. 공정위 고위 인사들이 대기업 사외 인사나 고위 인사로 영입되는 일은 다반사이지만, 거액의 담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KCC가 직전 위원장을 모신 것을 두고 또 말이 많았다. 공정위가 제대로 조사를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2009년에 시작한 공정위 조사 결과가 4년이 지난 오늘 발표됐다. 결과는 380억원의 과징금.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부과할 수 있다. 담합기간 동안 두 회사의 판유리 매출이 1조 2천억원이니까 천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에 부과된 과징금은 최대 금액의 1/3 수준이다. 뒤집어 보면 과징금의 2/3를 할인해 준 셈이다. 소비자들은 2천억원의 안줘도 될 돈을 그 회사에 넘겼는데 회사가 내는 벌금은 그 돈의 10%가 조금 넘을 뿐이다. 수백억원씩 물게 된 기업 입장에서야 한 푼이라도 줄이고 싶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괘씸한 생각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특히,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경쟁하듯 다투는 상황에서 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서 384억원이라는 거액의 과징금을 내린 공정위의 조사도 수고했다고 마냥 칭찬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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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파일을 작성한 후에 김앤장에서 연락이 왔다. 김앤장이 당시 담합 조사를 담당했던 실무 과장을 영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앤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한국유리가 법무 대리인을 다른 로펌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따라서 담당과장이 이 담합 건에 대해 관여할 수 없었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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