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와 관련한 뉴스가 나간 이후 댓글이 무려 8천여건이 넘게 달렸습니다. PC방을 자주 찾는 흡연자들의 볼멘소리부터 비흡연자들의 찬성론까지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실내 간접흡연을 막고 건강을 증진하자는 정부의 원칙과 방향 자체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설령 흡연자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다만 PC방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하소연도 한번쯤은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흡연석/금연석 구분은 기억하시는데로 지난 2004년 당시 국민건강증진법이 개정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지난 2004년 이후에는 전체 면적의 최소 50% 이상을 금연석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PC방 허가를 받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때문에 요즘 PC방을 가 보면 대부분이 금연석과 흡연석이 구분돼 있습니다. (범 PC방 생존권연대 추산 96%의 PC방이 금연석/흡연석 구분이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PC방에 가 보신 분들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흡연석이 완전히 밀폐되지 않고 그저 공간만 나누어 둔 곳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흡연석의 담배연기가 그대로 금연석으로 스며들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왜 그럴까요? PC방 업주가 인테리어 비용을 더 쓰기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PC방도 공중시설이다보니 당연하게도 전기법, 소방법, 국민건강증진법등 여러가지 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소방법 상 금연구역을 완전히 밀폐시켜 분리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겁니다. 흡연석과 금연석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대신 연기가 드나들지 않도록 에어커튼 설치를 '권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영세한 PC방 입장에서 에어커튼은 설치비나 운영비가 만만치 않아 도입이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부 보조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따라서 2004년 부터 지금까지는 실제로는 담배연기가 넘나드는데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형태로 금연석과 흡연석을 형식적으로 구분한 채 PC방을 운영해 왔던 거죠. 그리고 금연정책을 펴는 정부도 형식적인 금연석/흡연석 구분을 눈감아줬던 거고요.
PC방 업주들의 또 한가지 지적은 밀폐된 형태의 별도 흡연구역을 실내에 만든다면 현재의 흡연석을 완전 밀폐하여 연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겁니다. 실내에서의 간접흡연이 그토록 문제가 된다면 아예 별도 흡연실조차도 만들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법 취지에 맞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바꿔서 얘기하면 별도 흡연구역 설치라는게 어정쩡한 탁상행정식 타협방안이라는 거죠.
범PC방 생존권연대측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약 5천개 정도의 PC방이 폐업신청을 해서 현재 전국적으로 약 12000개 정도가 남아있다고 하는데요, 전면 금연정책 이후에 폐업하는 PC방이 속출할 지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우 PC방 전면 금연 정책 실시 이후 PC방의 50~70%가 폐업했다는 추산결과도 PC방업계와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데 이것이 공신력있는 자료인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해보입니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는 혐연권은 헌법상 사생활의 자유와 함께 건강권과 생명권에까지 연결되므로 인간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에 따라 보장받는 흡연권보다 우선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건강권과 생명권이 보다 중요한 기본권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만 중요한 것은 헌재가 인간의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따른 흡연권 역시 하나의 기본권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겁니다. 다만 이 두 기본권이 어쩔 수 없이 충돌할 경우에는 비흡연권이 우선한다는 것이죠. 제 아무리 흡연자라도 이러한 헌법적 취지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다만 기본권들이 갈등을 일으킬 때 양측이 침해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균형과 조화의 길을 모색하는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어느 한쪽의 기본권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방안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일부 PC방 업주들은 어차피 밤 10시부터 아침 9시까지는 청소년들이 PC방을 이용할 수 없게 돼 있으니 오후 10시 이후에는 흡연이 가능하도록 법을 완화해달라거나, 아니면 아예 미성년자를 받지 않는 성인 흡연자 전용 PC방 허가를 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거나 정책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만, PC방이 치킨집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서민업종 가운데 하나이고, 현실적으로 흡연과 게임을 함께 즐기는 인구가 분명히 존재하다면 좀 더 섬세한 금연정책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흡연자도 쾌적한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고, 흡연자도 비흡연자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눈총을 받지 않으면서 PC방을 이용할 수 있는 적당한 접점은 과연 없는 것일까요? 최소한 담배를 통해 연간 거둬들이는 세금 1조 8천억원 중 일부를 그러한 타협점을 찾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인지 생각해봤습니다.
ps. 참고로 이 사안은 시각이 첨예하게 갈릴 수 있는 사안이므로 객관을 가장하지 않고 한 가지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말로 '흡밍아웃' 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담배를 피웁니다. 덧붙이자면 소싯적(?)에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시절까지는 PC방도 즐겨 다녔습니다. (배틀넷 채팅창에서 가장 많이 썼던 단어는 salsal 과 GG 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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