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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PIP 교육'을 아십니까? ①

'역량 향상'이냐? '퇴출 강요'냐? - 현대자동차의 PIP 교육

[취재파일] 'PIP 교육'을 아십니까? ①
지난해 12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전경련을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고용형태는 앞으로 자제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자리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최우선 과제입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는 것을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올리겠다는 이른바 ‘일자리 늘, 지, 오’ 공약입니다.

그리고 지난 4월, 국회는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켰습니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정년 60세가 법적으로 보장됩니다. 일자리를 지키고 늘리는 문제는 이제 우리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됐습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주 SBS <현장21>은 ‘PIP 교육의 진실은?’이란 제목으로, 정년까지 일하기 전에 퇴출당하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뤘습니다. (현장21, ‘PIP 교육의 진실은?’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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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PIP 교육’이 무엇인지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Performance Improvement Program’의 약자인데요, 통상 ‘역량 향상 프로그램‘으로 기업들은 부르고 있습니다. 이게 일자리 문제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현장21>은 PIP 교육의 문제를 글로벌기업 현대자동차의 사례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9년부터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만을 대상으로 ‘관리자 역량 향상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PIP 교육을 실시해왔습니다. 서울 근교 연수원에서 2주 동안 합숙을 하면서 하루 종일 경영학 이론과 관련한 수업을 듣는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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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경기도 용인의 한 연수원에서 올해 첫 번째 현대차 PIP 교육이 진행됐습니다.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보니, 과장, 차장, 부장급 등 40, 50대 중년 간부 80여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마치 고3 수험생의 그것을 방불케 할 정도였습니다.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전날 교육받은 내용으로 시험을 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강의가 진행되는데 책 한권을 모두 떼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저녁 7시에는 당일의 과제가 주어지는데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10페이지 이상 분량을 밤 12시까지 작성해 제출해야 합니다. 과제 제출 이후에도 교육생들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데요, 다음날 아침에 있는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보통 새벽 3-4시까지는 불을 밝힌다고 합니다.

이 PIP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현대자동차 측은 “3년 동안의 인사평가 결과 하위 1.5%에 해당하는 간부사원들”이 그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에게 “업무능력을 향상하고 현업에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육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교육생들은 한결같이 “이건 교육이 아니라, 퇴출프로그램이다, 해고를 위한 구실 만들기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교육생들은 무엇보다 회사가 PIP 교육생들을 ‘평가’해서 이를 징계와 해고를 위한 구실로 악용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PIP 교육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간부에게 회사는, “당신, PIP 교육 점수도 낮고, 이후 업무태도와 성과도 변한 게 없어. 당신은 징계위원회 회부야”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PIP 교육 점수를 근거로 감봉, 징계 등의 중징계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업무부진을 이유로 PIP 교육에 보낸다는 겁니다. 재교육 이후엔 또 다시 성적부진, 성과부진을 이유로 징계를 내려 결국 해고를 통보하는 식이라는 것이지요. 해고의 근거가 되는 건 현대차 간부사원 취업규칙입니다. 취업규칙을 보면, 3년 동안 중징계 2번 이상 이면 해고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회사가 PIP 교육을 앞세워 이를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교육대상자들은 한번 PIP 교육 대상자로 ‘찍히면’, 마치 블랙리스트처럼 계속해서 PIP 교육 대상자로 통보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PIP 교육에 불려 다니다 해고까지 이어지기 전에 모멸감과 배신감, 절망감 등을 토로하며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몇 달치 급여 정도의 위로금을 내밀며 퇴사를 종용하고, 결국엔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퇴사하는 형식으로 평생 다닌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지요.

현행법상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만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만 8조원이 넘을 정도여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찾기 어렵지요. 그래서 합법적인 정리해고를 할 수 없는 현대차가 이렇게 PIP 교육을 악용해 정년이 얼마 남지 않는 간부사원들을 쫓아내는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하고 있다는 게 교육생들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PIP 교육을 받은 이후 실제 업무 향상을 이뤄낸 사람들도 많다”면서, “PIP 교육은 징계해고와는 별개이며, 저성과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현장21>은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PIP 교육을 받은 현대차 간부들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됐는지를 전수 조사한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4년 동안 한 차례 이상 PIP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271명. 이 가운데 행방이 파악되지 않은 42명을 제외하고, 연락이 닿은 229명을 분석해봤습니다. 그랬더니 229명 가운데 무려 66%인 152명이 PIP 교육 이후 징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229명 가운데 3분의 1인 75명은 PIP 교육 이후 자진퇴사나 해고 등의 형식으로 결국 회사를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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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자동차는 PIP 교육을 하면서,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보험기금의 지원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장21>이 확보한 고용노동부 문서를 보면, 2011년 서울 정릉에서 진행된 현대차의 PIP 교육에,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직업능력개발 훈련지원금 명목으로 약 4천 만 원이 지원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현대차가 2009년 이후 실시한 PIP 교육은 모두 10여 차례에 달합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기업들이 납부한 고용보험금에서 교육훈련 비용을 환급해주는 제도가 있는데, 이에 따라 환급을 받아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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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현대차의 PIP 교육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던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생산직 사원들과, 사무직 가운데서도 노조 가입이 가능한 대리 이하는 PIP 교육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은 지난 3월 뒤늦게 노조를 만들어 집단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 명 가까운 현대차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 가운데, 현재 노조 가입 인원은 3백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 간부사원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30여년 전 현대차가 포니2를 만들 때 입사했다. 우리 차를 해외로 수출했을 때의 그 기쁨, 첫 해외 공장을 만들었을 때의 그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30년 해 온 나의 일, 지금도 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게다가 우리는 간부사원으로 노조는커녕, 기존 노조가 투쟁할 때 회사에서 구사대를 하라고 하면 말없이 밤을 새며 노조에 맞서 회사를 지켜왔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에게 회사가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현대차의 PIP 교육,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금 길더라도 <현장21> 방송분을 보시고 판단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왜냐하면,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닥쳐 올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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