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병원 전자의료기록이 조작되다니…

[취재파일] 병원 전자의료기록이 조작되다니…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제보자 한 명을 소개받았습니다. 제보자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30대 간호사였습니다. 이 제보자는 의료기록이 조작돼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취재를 요청했습니다. 내용인즉슨, 남편이 폐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숨졌는데, 병원 측이 이런 사실을 숨기려고 일부러 진료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억울하게 떠난 남편의 사연을 밝혀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일반적인 의료사고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제보자가 바로 문제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보자는 그동안 자신이 간호사로 일하며 모아왔던 자료를 꺼내 보여줬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제보자의 주장처럼 곳곳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였습니다. 조작의 흔적은 손으로 쓴 수기기록은 물론 컴퓨터로 입력하는 전자의료기록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보자의 남편은 결핵에 걸려 동네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치료를 받았음에도 증세가 좋아지지 않아, 부인이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입원해 정밀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영상의학과 의사는 ‘결핵’과 함께 ‘폐렴’ 증상이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주치의인 호흡기내과 의사는 ‘결핵’ 약만 처방하고, ‘폐렴’ 치료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간호사인 제보자가 ‘폐렴’ 치료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담당 의사는 제보자가 너무 민감하다며 ‘결핵’ 치료만 해도 된다며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20일 뒤 환자는 폐렴이 악화돼 다시 병원으로 실려 왔고, 결국 입원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년 만에 바뀐 진단서…‘폐렴’이 ‘결핵’으로
장례를 마치고 1년 뒤, 남편의 진단서를 다시 정리하던 제보자는 다시 충격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처음 갖고 있던 진단서와 다른 진단서가 전자의료기록 컴퓨터 서버에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애초 ‘결핵’과 ‘폐렴’ 소견이 보인다고 적혀 있던 진단이 어느덧, ‘심각한 폐렴처럼 보이는 결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병원 측이 ‘폐렴 치료를 하지 않은 건 실수가 아니었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자의료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처음부터 ‘심각한 폐렴으로 보이는 결핵’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조작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처음 진단 당시 ‘폐렴’은 없었고, ‘결핵’만 있었기 때문에 ‘결핵’만 치료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보자가 처음에 갖고 있던 진단서, ‘폐렴’이 기록돼 있는 진단서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지만, 병원 측은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설사, 병원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호흡기내과 교수와 의료전문변호사 등 전문가 7명에게 물었습니다. “‘폐렴처럼 보이는 결핵’의 일반적인 치료법은 무엇인가요?” 7명의 의견은 모두 같았습니다. “‘폐렴’이든 ‘폐렴 보이는 결핵’이든, 어느 경우든 치료법은 ‘광범위 항생제 처방’으로 동일하다.” 그럼, 병원은 항생제 치료를 했을까요? 진단서 어디에도 ‘항생제’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결론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병원이 '결핵'‘과 '폐렴' 증상이 있다는 걸 알고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폐렴' 치료는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환자가 숨졌고, 그 문제를 덮기 위해 당시 진단 기록을 조작했다.‘

[단독]전자의료기록
결핵 배양검사 통보일마저 누락
전자의료기록이 바뀐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병원 측은, ‘결핵’ 치료만 열심히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결핵을 확진하는 검사결과가 환자가 숨진 뒤 2주일 뒤에나 나왔다는 점입니다. 결핵균을 배양해서 확진하는 검사는 대게 8주 정도가 소요됩니다. 하지만, 숨진 제보자의 남편처럼 증세가 위중한 경우엔, 열흘 만에 결과가 나오는 ‘속성 진단법’ 선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병원은 어찌 된 일인지 이 속성 진단법 대신 ‘8주짜리’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결핵 배양검사가 환자가 숨지고 한참 뒤에 나오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역시 일반적인 치료법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제보자가 처음 받았던 진단서에는 결핵 배양검사 통보일이 정확하게 명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한 진단서에는 이 통보일이 삭제돼 있었습니다. 결핵은 전염성이 매우 높은 질병이라, 검사결과 통보날짜를 기준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결핵 예방약을 복용하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통보일이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전산시스템에 입력은 했는데 출력만 제대로 안 됐을 뿐이라며 전산상의 오류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인 제보자가 다시 전자의료기록을 검토해봤지만, 여전히 검사결과 통보일은 빠져 있었습니다. “결핵치료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런 비판을 피하려고, 의도적인 기록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부고발자, “전자의료기록도 조작할 수 있다.”
사실, 전 처음 제보를 받고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이 병원의 직원 한 명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보자의 주장처럼 전자의료기록을 쉽게 바꿀 수 있는지, 먼저 객관적으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내부 고발자가 제게 털어놓은 얘기는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손으로 쓰는 수기 의료기록을 쉽게 조작할 수 있어 전자의료기록을 도입했지만, 전자의료기록도 다 수정할 수 있다. 담당 팀장이나 과장 등 높은 사람이 전자시스템을 묶거나 풀 수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사후에 기록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다. 실제로 사후에 기록을 바꾸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의료기록은 의료사고가 나거나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기초자료가 됩니다. 따라서 함부로 조작하거나 고치는 걸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손으로 의료기록을 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쉽게 내용을 추가하거나 누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조작을 막기 위해 전자의료기록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이마저도 관리가 매우 허술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의료계 안팎에서 전자의료기록의 조작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전자의료기록을 수정하면 기록이 남고, 그 기록을 환자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결국, 전문가들은 나의 의료정보가 어떻게 관리-이용되고 있으며, 또 누가, 언제,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대한 알권리를 명확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의식이 필요한 시점
미국의 전기 작가인 앤서니 서머스가 쓴 ‘오만한 권력 : 리처드 닉슨의 비밀세계(The Arrogance of Power : The secret world of Richard Nixon)’이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 제직하고 있을 때 일이다. 그는 자신의 기분이 무척 변화가 심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닉슨은 국방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명령을 따로 내려두었다고 한다. “내가 탄핵을 받으면 해병대를 출동시킬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국방장관 당신이 그 명령을 막으시오.”

비록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적어도 닉슨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의식만은 확실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해당 병원 관계자를 포함한 여러 곳에서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또, 제보자는 병원 측으로부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막말을 듣고, 신변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병원이 이 전자의료기록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뉴스 리포트가 나가고 많은 분이 자신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며 취재해 달라고 요청해 주셨습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략적인 맥락은 제보자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의료정보를 가진 쪽은 병원일까요, 환자일까요? 당연히 ‘병원’입니다.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를 관리하는 주체도 모두 환자가 아닌 ‘병원’입니다. 제보자는 해당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였기 때문에, 다행히(?)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환자가 자신의 의료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결국, 이 의료기록 조작 문제는 의료계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의료계의 뼈저린 반성과 자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