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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비애

[취재파일]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비애
철강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10여 년 가까이 화물 배송을 맡아온 김 모 씨. 김씨는 자신이 이 회사의 정규직 사원은 아니지만 크게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회사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고, 다른 동료와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고, 상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왔습니다. 물론, 봉급도 정해진 날짜에 들어왔고, 회사 사정에 따라 야근도 하고, 잡무도 하며 지냈습니다. 이처럼 김 씨는 자신이 이 회사의 직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적어도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가족 같던 회사는 한순간에 매몰차게 돌아섰습니다. “그동안 우리 회사는 김 사장님과 위탁계약을 맺어 왔기 때문에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회사는 김씨에게 특정한 사업에 대한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해왔을 뿐이며, 이제 그 계약을 끝내려고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회사 직원이 아니라 퇴직금을 줄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김씨는 절망했습니다. 따져도 보고, 항의도 해봤지만, 회사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회사-직원’, 이런 ‘수직적 고용관계’가 아니라 ‘회사-회사’, ‘수평적으로 계약’한 것뿐이라는 게 회사 측의 주장이었습니다.

김씨처럼 겉으로 특정 회사에 소속돼 일하지만, 실제로는 회사 측이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라고 합니다. (흔히 ‘특수직 근로자’ ‘특고 근로자’로 부르기도 합니다.) 택배기사, 텔레마케터,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등이 대표적인 직업입니다. 최근에는 그 대상 직종도 넓어져 방송작가와 대리운전기사, 병원 간병인, 동물병원 간호사 등도 이 특수고용직 근로자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경제난에 특수고용직 근로자 급증
최근 특수고용직 근로자가 많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 요인입니다. 회사가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4대 보험과 퇴직금은 물론 각종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또, 직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해고하기도 쉽지가 않아집니다. 반면, 직원을 특수고용직 근로자로 계약하면, 기업 입장에선 이런 부담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업으로서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이 심각해지며, 기업들은 경기 변동에 따른 위험성과 고비용 구조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이 ‘특수고용직 근로자’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근로자의 처지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쩌면 생존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절박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특수고용직 근로자를 선호하는 이유를 뒤집어서 근로자 입장에서 해석해 보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특수고용직 근로자들 대부분은 열악한 근무 여건과 해고의 위협에 항상 노출돼 있다. 신분만 ‘노동자’에서 ‘자영업자', '사장님'으로 바뀌었을 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활동도 무력화되고, 노동기본권이 박탈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실제 특수고용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지난해 3월 기준으로 181만 9,000원에 불과합니다. 전체 임금근로자 평균 211만 3,000원에 비해 낮은 수준입니다. 또, 근로자가 아니라 ‘사장님’이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도 제한돼 있습니다. (산재보험은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6개 직종에 대해 가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특수고용직 근로자 전체 가입률은 9.8%에 불과합니다.) 그렇다 보니,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되는 민원 사례는 한 해 평균 천 여건에 이릅니다. 임금이나 퇴직금을 주지 않거나 근로시간을 넘겨 근무시키고, 부당하게, 일방적으로 해고했다는 내용 등이 대부분입니다.

특수고용직 근로자에 대한 기초 연구조차 부족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특수고용직 근로자 대한 기초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특수고용직 근로자는 대략 200~2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이조차 정확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1.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했나. 2. 취업규칙 인사 규정 적용 대상 여부 3. 업무 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가. 4. 근무시간과 장소를 사용자가 정하는가. 5. 노무 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작업도구를 가지고 있는가. 6. 기본급-고정급을 받는가. 7.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언뜻 보기엔 기준이 명확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특수고용직의 노동 형태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같은 업종이라도 세부적으로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하더라도 근로자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특수고용직 근로자의 수를 정부 약 115만 명, 학계는 약 200만 명, 노동계는 250만 명으로 제각각 추산하고 있습니다. 만약 노동계의 주장대로, 특수고용직 근로자가 250만 명이라면, 이는 전체 노동자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입니다. 정확한 통계 기준조차 없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안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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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직 근로자에 대한 논의 시작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이들 특수고용직 근로자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해고된 뒤 5년간 복직 투쟁을 벌여 온 학습지 교사들이 제기한 해고무효소송에서, “교사들이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무 대가로만 생활한 만큼, 최소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지위는 인정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고용상황이 애매해 항상 불안해한다. 이들에 대한 임금과 보험의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리운전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4대 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안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대책’에는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민간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법적 효력을 갖춘 표준계약서를 보급하는 등 부당해고나 불공평한 처우를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선진사회의 기존 조건은 무엇일까?
취재과정에서 여러 직종의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을 만났습니다. (뉴스 리포트가 나간 뒤, 자신도 비슷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많은 근로자들께서 제보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사회학, 노동학, 법학 등 학자들과 관계 기관에 근무하는 행정가들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각자 바라보는 관점이나 제시한 해결책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수고용직 근로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 선진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불행한 사람이 적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슨'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프로그램돼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때로는 생존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일수록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 결국, 나와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하고, 발전적으로 이끈다는 지적. 국가와 기업, 근로자, 우리가 모두가 다시금 새겨보아야 할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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