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 보는 법이 없다. 어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애는 나비를 수집하니?" 따위의 말 을 결코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니? 몸무게는 얼마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애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고 믿는 것이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 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에 어떤 집인지를 생각해 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십만 프랑 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야 참 멋진 집이구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베리(Saint- Exupery)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이 구절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며 울먹이는 한 여대생을 만났습니다. 그 여대생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그냥 그림을 그리고 살고 싶어 하는 화가가 꿈인 학생입니다.
"순수회화라는 말 자체가 너무 좋아요. 그림을 그리고 치유를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목적 없이 좋아서 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좋아요."
그런 그녀가 붓대신 피켓을 들었습니다. 작업실에서 캔버스에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시간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비를 맞으며 힘없이, 무력하게 앉아있었습니다. 학교가 자신이 지난 3년간 몸담았던 학과인 '회화과'를 폐지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갈 곳도, 할 일도 없어진 회화과 학생들은 교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폐지를 막아보려고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화과를 폐지하겠다는 학교 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학생들은 취업률이 낮기 때문에 학과 폐지가 결정된 것이라며 분개하고 있었습니다. 취업을 위한 학과가 아닌데, 그림이 좋아서 어려운 입시를 거쳐서 입학하고 매년 등록금을 내고 꿈을 키우고 있는데, 왜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꿈의 터전이 일방적으로 없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왜 단지 숫자로만 모든 것이 판단되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10명 중 1명이 취업한 것과 10명 중 9명이 취업을 한 것이 그 학과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특히 이렇게 순수예술을 하는 학과를 취업자 수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변했습니다. 학생들은 획일화된 기준이 부여하는 점수를 바탕으로 줄이 세워지고, 이 서열에 따라 일방적으로 폐지가 결정되는 현실에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아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는 거구나 학교의 경쟁력과 취업률을 위해 일종의 공장에서 나오는 상품이구나"
한 학생은 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눈동자에서 공허함만이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흐가 취업했냐 피카소가 취업했냐!"
우리는 취업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는 항변이었습니다. 예술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정당한 절차와 비용을 들여서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왜 뽑아놓고, 등록금도 다 받아놓고,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은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왜 일방적으로 학과를 폐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했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전해진 학교의 답변입니다.
"우리학교 회화과에서 고흐와 피카소 같은 작가가 나왔나?"
진심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학교에 있는 교원, 특히 폐과 문제를 놓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한 상대들도 교육자일 겁니다. 단지 학교 행정직 직원이 아니라 학생들을 일선에서 가르치는 교수님들 중 보직을 맡은 분일 겁니다. 교육자가 최소한 진심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학교 관계자를 만나봤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
학교의 솔직한 입장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순수예술 지켜야 하는 필요성도 알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장도 알지만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회화과를 위해 학교 전체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왜 회화과 하나 폐지하는 게 다른 모든 학생들을 다 살리는 길일까요.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강력한 '대학 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에 해당하는 대학에 대해서 정부지원 제한, 대출제한, 경영부실 대학 선정, 퇴출, 이렇게 4단계로 나누어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생 수는 주는데 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2018년, 당장 5년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 중 약 70~80%가 대학을 진학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미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이 정원을 다 못 채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지방대학은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나선 겁니다. 일부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강화해서 특화된 대학을 만들어 대학교육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대학평가의 평가항목들이 아쉽습니다. 그 평가항목들이 학교를 학생의 목을 죄고 있습니다.
대학평가의 평가항목들은 크게 8개입니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입교원 확보율, 교육비 전환율, 학사관리, 장학금 지급, 등록금 부담 완화, 법인 지표입니다. 얼핏 보면 학교의 가시적인 성과 뿐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지원 등 학교의 투자나 노력까지 포함한 듯한 지표로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평가 비율입니다. 8개의 평가기준 중에 50%에 해당하는 조항이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입니다. 결국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낮으면 아무리 다른 점수가 높아도 위험하다는 겁니다.
지방대학은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인지도도 낮기 때문에 신입생을 끌어들이기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고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이 낮아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면서 정부의 지원이 끊기고 이로 인해 이미지마저 실추되면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취업이 될 만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학과들을 만들고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요즘에 인기도 없고 취업도 안 되는 순수예술 분야인 회화과 보다는 디자인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가미한 예술학교로 바꿔서 학생들도 끌어들이고 취업률도 올려야 학교가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지방대학은 순수예술과 기초학문 분야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 분야는 돈 많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은 서울에 있는 큰 대학에서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푸념을 늘어놨습니다. 학교도 스스로가 직업 양성소로 변하는게 싫지만,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는 겁니다. 생존,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생존을 강요하는 구조조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학교 관계자들도 학교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위에서 지적했듯이 평가항목에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가시적인 성과로 설명되지 않는 순수예술과 기초학문의 기여도와 같은 요소들도 평가항목에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숫자로 설명되는 부분의 평가 비율을 조정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정량 평가뿐 아니라 정성 평가를 강조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단순 수치로 쉽게 도출되지 않는 정성가치를 평가요소에 반영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대학은 직업 양성소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와 교양을 함양시키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부도 평가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부터는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의 비율을 각각 5%씩 내리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평가 지표에 대한 연구도 계속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연구는 취업률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 이외에 학교 본연의 역할인 교육에 대한 평가항목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경쟁은 갈수록 빨라지고 구성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경쟁과 효율이라는 잣대에 매몰되더라도 우리 사회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할 가치도 분명 있습니다. 배움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은 우리사회가 지켜줘야할 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가 학문에 대한, 예술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과 순수함마저도 외면한다면 이들은 앞으로 타오르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만을 찾아 방황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