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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처녀 가장 김보경, 5년 만에 우승컵 번쩍

레슨 한 번도 안받고..골프 '문외한' 아버지와 통산 2승 따내

[취재파일] 처녀 가장 김보경, 5년 만에 우승컵 번쩍
"집 식구들 밥 안 굶기려면 제가 열심히 뛰어야지요..체력이 될 때까지 뛸 겁니다"

"초등학교 때 골프 시작하고 지금까지 누구한테 정식 레슨 받아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혼자 하루 종일 연습 하다보니 골프에 대한 눈이 뜨이더라구요.."

"캐디 백 메시는 아버지는 골프를 한 번도 쳐 보신 적이 없는 분이세요..그렇게 9년을 함께 해 오셨어요"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스프링스 골프장에서 끝난 E1 채리티 오픈에서 '슈퍼루키' 김효주를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 김보경은 다른 우승자들처럼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자수성가한 27살 처녀 가장 답게 우승 인터뷰도 아주 담담하고 의젓했습니다.

김보경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아가씨'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촌이라고 불렀던 아버지의 후배 권유로 동네 실내 연습장에 가서 골프를 처음 접했답니다. 실내연습장 사장에게 기본적인 스윙을 익히고 정식 레슨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골프장 그린피가 없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2년간 필드에 나간 게 10번도 안 되고..그렇다보니 100타를 깨는 데도 2년이 넘게 걸렸답니다.

동네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경제 형편도 안 좋고 딸의 골프 재능도 별로인 것 같고..해서 골프를 그만두라고 했지만 김보경은 한 번 시작한 건 끝을 보는 성격이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골프 연습만 했답니다. 퍼팅이 안되면 3~4시간씩 퍼팅만 하고 샷이 안되면 잘 될 때까지 그 샷만 죽어라..했다는 겁니다.

열심히 하다보니 스코어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처음 100타를 깨고 탄력이 붙어 80대 타수에 진입했고.. 내친 김에 부산 지역 대회에 나가 3등을 하고 나니 아버지도 딸의 재능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아버지에게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대수술을 받고 가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갔고 김보경은 이 때부터 혼자 모든 걸 해결했습니다.    

돈이 없어 남들 다 가는 동계 전지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돌봐주신 연습장 사장님 덕분에 연습은 무료로 원 없이 했다네요.. 

집안 생계를 자신이 해결해야 했기에 고 3때 프로로 전향하고 이듬해인 2005년 본격적으로 투어에 뛰어들었습니다. 

데뷔 첫 해 상금 2900만원을 벌었고 2006년부터는 스폰서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돈을 아껴야 했습니다.

전문 캐디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 비용이 아까워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캐디 백을 메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돼 아버지도 선뜻 받아들이셨습니다.

골프 김보경1


처음엔 답답했습니다.

클럽이 어떻게 다르고 그린 경사는 어떻게 읽는 건지 전혀 모르시는 아버지와 실전에서 의논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했습니다..시간이 약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신 아버지도 골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김보경은 데뷔 4년차였던 2008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아버지와 호흡을 맞추며 초대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생애 첫 우승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신설 대회인 E1채리티오픈에서 아버지와 또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법도 했지만 이 무뚝뚝한 부산 아가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아버지는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김보경은 자기 스스로를 무미건조하고 단순하고,감정 기복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아마 그래서 중요한 승부처에서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갖추게 된 건지도 모르지요.. 정식 레슨 한 번 안받고  골프를 독학으로 해서 우승을 두 번이나 했으니 공부로 따지자면 사교육 한 번 안받고 자기 주도형 학습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보경


김보경에게, 그동안 레슨은 안 받았더라도 혹시 골프의 멘토는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했습니다.

"그런거 없십니더.. 중계 보고 누구 따라하고 그럴 시간에 연습 1시간이라도 더 하는 게 나아예.." 

순간, 인터뷰 시간을 너무 오래 빼앗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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