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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중 서해상에서 무슨 일이?

검은 뒷거래 10년 넘게 이어져

[취재파일] 북-중 서해상에서 무슨 일이?
"北, 中 어선과 어민 16명을 나포한 뒤 '몸값'으로 1억 원 요구" "北, 中 해역서 해적질"

지난 19일 대부분의 중국 언론이 대서 특필하고 우리나라 언론도 많이 다룬 기사입니다. 북한군으로 보이는 북한인들에게 나포됐다는 중국 어선의 선주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나포 사실을 공개했고, 중국 언론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하면서 중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나포 행위의 주체가 북한이라는 점, 석방비가 무려 우리 돈 1억 원 가량으로 고액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해역도 아닌 중국측 해역에서 나포됐다는 선주의 주장이 그대로 보도되면서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으로 나빠진 중국내 반북 여론이 더욱 들끊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느니, "식량과 원유 원조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등 인터넷상에는 반북 정서가 여과없이 표출됐습니다. "정부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며 비난의 화살이 중국 정부에게로까지 쏟아지자
중국 정부가 즉각 조사와 교섭에 나섰고, 어선과 어민들은 언론 보도 이틀도 안 된 지난 21일 새벽 모두 풀려났습니다. '몸값' 내지 '벌금'은 내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어선과 어민들이 나포 보름여 만에 무사히 석방되면서 자칫 북-중간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뻔했던 사건은 비교적 '조용히'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북-중 양국 정부간 교섭으로 '사건'은 원만히 해결된 듯 보였지만, 중국 정부와 언론에서 문제 제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5월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참에 북한측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 측에 정식으로 사건의 진상과 재발 방지책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중국 언론들도 앞다퉈 북-중 접경지역 항구인 단둥이나 다롄으로 몰려가 현지 어민들을 상대로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서해상에서 북한과 중국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실상도 하나 둘 벗겨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도 중국 어선이 두 차례나 북한 측에 나포됐다가 돈을 내고 풀려났다는 사실과 함께, 그동안 10여 년 넘게 북-중간 검은 뒷거래가 성행해왔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즉, 중국 어선들이 북한 측에 뒷돈을 주고 북한 해역에서 조업해 왔으며 중국 측은 금품과 조업 기술 전수를 대가로 지불해 왔다는 것입니다. 북한 측의 일방적인 '해적질'이 아니라 북-중 '공생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겁니다.

중국의 '제노만보'는 '방팅(幇艇)'이란 용어가 단둥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인다고 전했습니다. 일종의 '보호비'로 단둥 현지의 중국 회사 3곳이 방팅비를 중국 선주들로부터 대신 수납해 북한 측과 나눠 갖는다고 전했습니다. 방팅비는 하루, 일주일, 한 달, 분기 단위로 낼 수 있는데 큰 배는 하루에 3천 위안(54만 원)이고 분기 단위로는 21만 위안~25만 위안(380만 원~450만 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방팅비를 내면 북한 측 대리인인 중국 회사가 어선의 고유 번호가 적힌 증서를 발급해주고 이 증서가 있는 배는 중국과 북한의 국기를 달고 북한 해역도 막힘 없이 다닐수 있다는 겁니다. 한 어민은 "방팅 증서가 있으면 심지어 북한 해안에도 상륙할 수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도 북한 해안에 여러 번 오른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보호비를 내고 북한 해역에서 조업하는 관행은 10여 년 전부터 있었고, 몇 년을 주기로 북한측 대리인이 교체되기 때문에 현재는 방팅 증서를 발급하는 회사는 단둥에 3곳만 남았다고 전했습니다.

방팅비도 비싼데 왜 중국 어민들은 중국 쪽 바다는 놔두고 북한 수역으로 몰려갈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중국 어선들의 우리 서해상 불법 조업과 똑같은 이유였습니다. 중국 수역은 환경 오염과 어족 자원 고갈로 고기가 없지만 북한 해역에는 어족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어민 대통령


어민들은 방팅비가 해마다 오르지만 뒷돈을 쓰는 것 이상의 수익을 올릴수 있기 때문에 북한 수역으로 몰려갈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 어민은 "북-중간 암묵적 해상 경계선인 동경 124도를 사이에 두고 중국 해역에는 고기가 없는 반면 북한 해역으로 몇 백 m만 넘어가도 게를 비롯한 질 좋은 수산물이 많이 잡힌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어민들은 방팅비를 보통 현금으로 내지만 때로는 북한 측의 요구에 따라 어선의 각종 장비와 부품, 쌀, 식용유 등으로 내기도 하며 북한 측이 어로 기술과 노하우의 전수를 요구할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뒷돈을 내고 조업을 하기 때문에 돈을 내지 않은 중국 어선이 몰래 북한 해역에 들어갔다가 경비정에 나포되면 북한 측은 중국 선주에게 배값의 절반 가량에 해당하는 벌금을 요구하며 방팅회사가 벌금 전달을 맡는다고 합니다.

북-중간 이런 검은 뒷거래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내 여론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 합니다. 여전히 북한을 비난하는 여론이 대다수이긴 합니다만,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린 중국의 자업자득이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중국 매체는 방팅비 관행을 파헤친데서 한발 더 나아가 방팅 회사가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운영중이라고 보도하기까지 했습니다. 해당부서인 중국 농업부는 즉각 보도 내용을 부인하면서 정부와 방팅회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중국 언론의 오보인지 아니면 보기 드문 탐사보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중국 언론의 후속 보도가 계속되면서
진상 규명을 요구받은 북한 측보다는 중국 정부가 오히려 진땀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중국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당국의 철저한 검열을 받는다고 알려진 중국 언론이 정부의 책임을 묻는 이런 오보를 냈다고 쉽게 치부해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중국 정부는 나포됐던 어민들이 석방됐던 지난 21일, 북한 당국에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설명해주고 재발 방지책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중국 언론의 문제 제기가 계속될지, 어디까지 파헤쳐질지, 과연 중국 정부가 북한 측의 설명을 토대로 이번 사건의 진상을 공개할지 자못 궁금증이 커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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