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구 주민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골목길이 생긴 게 30년 전. 수십 년을 마음 놓고 다니다가, 갑자기 돈을 내놓으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목욕탕이나 어디라도 가려면, 그 골목길을 밟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얄궂습니다. 그 땅을 밟지 않으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진입로. 거기를 막으면 맹지에 살게 되는 셈이고, 집안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는 셈입니다. 근데 아무 일 없다가, 이름 모를 사람으로부터 소송을 당하니, 말문이 막히는 겁니다. 처음엔 흥분하다가, 곧 이성을 되찾고, 진짜 돈 내야 되나? 걱정이 앞섭니다.
뭔 희한한 일이래? 나는 상관없는 듯,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수는 없는 게, 이런 통행료 분쟁은 계속 늘고 있고, 내 집 앞 골목길이 지자체 소유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집 앞 골목길은 누군가의 사유 재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택지를 개발할 때,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게 되는 대도로와 달리, 주택가 뒷길은 사유지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하던 시절, 이런 사유지 골목길이 수두룩하게 생겼고, 지금은 세월이 흐르고 소유권이 계속 뒤바뀌면서 끝없는 소송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도로를 매입하게 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골목길 소송이 잇따르면서, 이 분야도 나름 판례가 쌓이고 있습니다. 일단 누군가의 사유지라도 땅 주인이 통행을 못하도록 골목길을 아예 막아버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2011년 춘천에서 땅 주인이 주민에게 통행료 달라고 했다가 거부당하자, 드럼통 3개로 골목길을 완전 봉쇄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잘 쌓았는지, 사람이 진짜 못 다녔습니다. 자기 땅이라고 자신 있게 드럼통 쌓은 건데, 교통방해죄로 기소돼 법원에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무리 자기 땅이라도 민법상 ‘주위토지통행권’이라고, 공익을 위해 사람은 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통행료를 줘야 하나? 안 줘도 되나? 이 판단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 신사동에서는 골목길 주인이 주민 6명에게 매달 10만 원씩 내라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역시 이웃이 아닙니다. 원고는 다른 동네 사람이죠. 2006년 공매로 골목길을 사들였습니다. 주민들은 30년 넘게 그냥 다녔다면서 환장할 노릇이었는데, 1심에서는 이겼습니다. 통행료 안 줘도 된다는 판결이 나온 겁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원고가 통행료를 받을 수 없는, 쓸모없는 도로라는 걸 알고 산 거 아니냐, 이게 법원 판단입니다. 쓸모없는 땅을 알고 매수했으면서 이제 와서 통행료를 청구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2006년 이전의 땅 소유자가 재산권을 행사한 적도 없습니다. 이 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입니다. 2004년 경북 구미에서도 주민이 승소한 사건이 있습니다.
정반대 판결도 있습니다. 2008년 경북 상주에서는 주민이 땅 주인에게 매년 59,600원을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 신사동과 다른 점은 골목길의 옛 주인이 적극적인 권리 행사를 해왔다는 점입니다. 2006년 땅을 팔기 전까지 재산세를 계속 내왔고, 주민에게 제발 골목길 땅 좀 사가라고 적극적으로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해당 골목길을 매수한 사람에게 재산권이 그대로 승계된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판례는 꽤 있어서, 2005년엔 서울 통의동에서 주민이 매달 5만9천 원을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고, 앞서 1996년엔 10년치 430만 원을 내라는 판결도 나온 바 있습니다. 이런 판례가 있으니, 대전 골목길 주민이 덜컥 겁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대전 골목길의 8가구는 통행료를 내야 할까요? 원고가 골목길 땅을 사기 이전 소유자가 주민들에게 통행료를 청구하는 등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수익권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 이런 수익권 행사 여부를 파악하고 2010년에 땅을 산 것인지, 30년 전 골목길이 처음 생긴 과정은 어떠한지, 이걸 일일이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통행료는 둘째 치고,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 전략을 짜고, 신경 쓸 일이 엄청 많아졌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살다가 소송을 당하는 건 피할 방법이 없지만, 주택을 새로 구입할 때는 집 앞 진입로의 등기부등본도 떼 봐야 할 판입니다. 진입로가 단 하나일 경우, 또 그 진입로가 사유지일 경우, 혹시 대출 담보로 잡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담보로 잡았던 도로가 경매에 매물로 나오게 마련이고, 그럼 낙찰 받은 사람은 재산권 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통행료 소송의 바로 전 단계가 이런 ‘골목길 담보 대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속 편한 선택은, 진입로가 여러 군데인 집을 선택하거나, 지자체 소유의 대도로 변에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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