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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하시모토의 예정된 몰락…차라리 다행일 수도

[취재파일] 하시모토의 예정된 몰락…차라리 다행일 수도
하시모토 일본유신회 공동대표가 자신의 발언이 왜곡 보도되고 있다면서 외국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이를 해명하고 싶다며 기자회견에 나선 자리.

도쿄 주재 외국특파원 클럽이 이날처럼 붐빈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3백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몰려 회견장 안팎은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시모토의 발언에 대한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또 세계 각국이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큰 지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회견장에 일찍 나타난 하시모토는 약간 상기된 표정이더군요. 자신의 위안부 발언 이후 일본 국내외에서 쏟아진 비난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당초 회견은 두시간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하시모토 대표는 기자회견을 시작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끝장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시모토 대표는 우선 2차대전 때 미국군과 영국군, 프랑스군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때 한국군에서도 전쟁터에서의 성 문제가 존재했다며서 '물 타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중단시키기 위한 세계적인 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여성 인권의 대변자가 된 것처럼 자신의 발언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질문에 나선 이탈리아 기자는 하시모토를 향해 여러나라를 거론하면서 이탈리아를 언급하지 않아 고맙다는 농담을 던졌고 회견장에는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시모토는 이어서 일본군이 위안소 운영과 위안부 이송에 관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강제 동원은 민간업자에 의한 것이라면서 국가가 조직적으로 위안부 동원에 나섰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는 증언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에 대해서도 고노 담화가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면서 누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했는지 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시모토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 대해선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법적 청구권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한국 측에서 이견이 있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면서 독도 문제를 포함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은근슬쩍 독도 문제를 다시 끄집어 낸 겁니다.

결국 하시모토는 위안부 관련 발언은 취소하지 않았지만 주일 미군들에게 성매매를 권유한데 대해서는 미군 뿐 아니라 미국인에게 모욕적이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싸늘한 시선은 변하지 않았고 다음 달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하시모토는 결국 방미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하시모토가 지난 13일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을 다시 살펴볼까요? 그는 자신이 미군 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 병사들이 성적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풍속업을 더 활용해 달라고 제언했다고 자신만만하게 밝혔는데요,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선을 넘었다는 것을 자복한 셈이 되고 만 것이죠.

하시모토
그의 발언은 문맥 상 주일 미군들에게 매춘을 권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데 일본말로 이 풍속업이라는 것이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자신이 권유한 풍속업은 매춘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시모토는 자신의 발언이 오키나와에서 발생하는 미군에 의한 성폭력을 걱정하던 와중에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었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 생, 올해 44살의 하시모토는 '법률 상담소'란 일본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변호사로 처음 얼굴을 알린 인물입니다. 변호사 답지 않게 머리를 물들이고 자유분방한 복장으로 출연했는데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들은 보통 속마음인 '혼네'를 숨기고 겉으로 들어내는 행동인 '다테마에'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혼네를 드러내며 속 시원하게 말하는 하시모토의 새로운 접근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속 시원함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그 기세를 몰아 정치인으로 변신한 하시모토는 오사카 지사에 이어 오사카 시장, 또 일본유신회의 공동대표로 승승장구하면서 차기 총리감으로까지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거침없는 언행에 사람들이 실증을 느끼고 차츰 인기가 하락하면서 하시모토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뱉은 일련의 망언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싶어한 하시모토의 속내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는 일본유신회에 이처럼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민당과 민주당에 이어 9%대의 지지율을 달리던 일본유신회는 이번 파문으로 결국 3%로 추락했습니다.

하시모토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 지…그 결과에 따라  자신이 당 대표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 생명을 걸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겠다는 것이죠.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 지금으로서는 뻔해 보입니다. 하시모토의 연이은 망언과 예정된 몰락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만에 하나라도 미래에 일본 총리가 됐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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