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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진욱 “과거로 가는 향 있다면 첫사랑할 때로 가겠다”

[인터뷰] 이진욱 “과거로 가는 향 있다면 첫사랑할 때로 가겠다”
브라운관에서 이진욱을 떠나보낸 지 2주가 흘렀다. 배우가 드라마 한편을 마쳤을 뿐인데 '나인:아홉번의 시간여행'의 종영은 그 여운이 유독 짙다. 과거에 있던 선우가 지금쯤 어떤 삶의 곡선을 그리고 있을지, 미래에 있던 선우는 다시 과거로 되돌리려고 했을지 막연한 상상도 가끔 든다. 이진욱이 연기했던 인물 박선우에 대한 지독한 중독증세가 느껴지는 건 기자뿐만 아닐 것이다.

‘나인’을 마친 이진욱은 갸름한 얼굴이 더 날렵해져 있었다. “4킬로 정도 빠졌다.”며 웃었다. 예전보다 더 강한 인상이 ‘나인’의 냉철한 박선우와 더 흡사했다. 이진욱에게 “박선우를 떠나보냈나.”고 물으니 “떠나보내려고 했지만 그러니 더 힘들어서 지금은 잠시 그냥 두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진욱 역시 박선우에 대한 중독현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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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우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했어요”

‘나인’에서 죽을 위기를 맞던 2012년 박선우는 19회에서 과거에서 고독하게 세상을 등진다. 심장박동이 미약해지던 박선우가 남겼던 처절한 휴대폰 메시지가 여전히 귀에 선명하다. 그런 박선우의 처연한 죽음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에 살았던 박선우는 어딘가에 숨쉬고 있었기에 '나인'의 결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서 박선우는 시간에 갇혀버린 비극적 인물임에 분명했다.

이진욱은 “가끔은 멍하니 있다가도 그 때 박선우가 떠올라서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촬영할 때 자신을 버리고 그 인물의 인생을 덧입는다. 4개월 넘게 박선우의 고민을 어깨에 짊어졌고, 끝낸 죽음의 순간에야 깨달음을 얻은 이진욱은 아직도 복잡한 속내가 엿보였다. "송재정 작가님은 ‘잊으려고 하면 더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두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지금은 선우와의 자연스러운 이별을 준비 중이에요.”

그렇다면 '나인'이 끝끝내 이야기 하고 싶었던 '운명'에 대한 메시지는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아직 '나인'의 결말을 어떤 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요. 말그대로 시간 여행이잖아요. 19회에 죽은 박선우의 이야기는 많은 박선우의 한명의 결말일 뿐이에요. 여전히 세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나인'은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국 인생은 '무'(無·없음)라는 거죠. 죽음도 삶도 한 직선상에 있는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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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멜로를 잘하느냐고요?"

'나인'을 얘기하다보니 이진욱과의 대화는 꽤 진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동안 이진욱이 가졌던 삶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자못 진지하게 녹아있는 대목이었다. 담담하지만 진솔한 대답은 이진욱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줬던 진중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데뷔작인 SBS 드라마 '연애시대'부터 '에어시티', '썸데이', '나인'에 이르기까지 이진욱은 가졌던 무게감은 한결같이 묵직했다.

그런 캐릭터들은 '나인'에서 박선우란 인물로 응집이 된 듯 했다. 박선우는 지독히 사랑이 많은 남자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사랑했고, 일찍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 했다. 아버지를 죽음에 빠트린 형에게 분노하면서도 끝까지 형의 손을 놓지 못하는 것도 박선우였고, 운명의 장난처럼 조카가 된 주민영(조윤희 분)을 놓고 괴로워 하는 것도 박선우의 몫이었다.

"박선우는 멜로의 복합체 같았다."는 질문에 이진욱은 껄껄 웃었다. "멜로를 어떻게 그렇게 와닿게 잘하냐."고 묻자 이진욱은 "멜로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멜로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지만 멜로만큼 인간의 사랑에 가깝게 접근하는 연기는 없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표현법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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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과거로 가는 향이 있다면?"

조금은 이진욱에 대한 개인적인 부분이 궁금했다. 지금의 이진욱을 있게한 과거는 어땠을까. 이진욱에게 첫사랑이 언제인지 묻자 이진욱은 "유치원 때"라고 답했다. 판에 박힌 '방송 대답'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이진욱은 손사레를 치며 "지금 생각해보면 꽤 진지했다. 그 때 그 친구의 눈빛도 기억나고, 다가 그 친구의 꿈을 꿨던 것도 생생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떡잎부터 멜로배우였다'고 농을 건네자 이진욱은 껄껄 웃었다.

'나인'처럼 신비의 향을 얻는다면 이진욱이 가고 싶은 곳은 바로 그 첫사랑의 현장이다. "유치원 때 꿈에서 그 친구를 보고 나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그 친구랑 결혼하겠다고 졸랐다가 혼난 기억도 있어요. 향을 얻게 된다면 그때로 가보고 싶어요. 그렇다고 무언가를 바꾸고 싶지 않아요. 그 친구의 현재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그렇게 떨렸던 때 제 모습이 보고 싶어요."

"과거 실패했던 기억으로 돌아가서 그걸 바로 잡고 싶진 않나."고 물었다. 이진욱은 "왜 그렇지 않겠나."고 말하면서 "아직도 그 실패의 한 가운데 있고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지하게 답했다. 이진욱은 "한 실패들을 바탕으로 지금에 내가 있기에 언젠가 좀 더 겸허하게 실패를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배우로서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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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욱은 '나인'을 통해서 인생의 전성기 서막을 알렸다. 정작 본인은 겸손하게 실패의 한가운데라고 말하지만 누가 보아도 이진욱은 최근 몇년 새 가장 월등하게 성장한 배우가 됐다. '나인'의 박선우를 통해 보여준 이진욱의 삶에 대한 고민과 연기를 대하는 진중한 자세는 시청자들의 가슴에 늦봄 이름 모를 들꽃의 진한 향기를 전해준 게 분명했다. 과거에서 자란 박선우의 현재 모습이 기대되듯, '나인'을 통해서 한뼘 성장한 이진욱의 미래의 모습이 자못 궁금해진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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