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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명랑소녀 이일희의 LPGA 정복기

낙천적이고 명랑한 성격으로 언어·낯선 환경 극복

[취재파일] 명랑소녀 이일희의 LPGA 정복기
"카지노에서 5만 원 잃고 2억 1600만 원 벌었으니 남는 장사죠. 하하"

"저는 정말 누구보다도 골프를 즐기는 것 같아요. 골프치면서 와~ 진짜 이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투어를 다니고 이렇게 좋은 바하마라는 곳도 와서 매일 경기 끝나고 수영복 갈아 입고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하고 싶은 골프를 하고. 너무 좋은 직업인 것 같지 않으세요? 경기를 하면서도 바다를 보면 너무 예뻐서 잠깐 내가 경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요. 몰라요. 그냥 저는 즐기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을... 하하하"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일희의 목소리는 아직도 사춘기 10대 소녀 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LPGA투어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서 미국 진출 4년 만에 첫 우승을 일궈낸  25살 용띠 처녀 이일희.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 골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를 지닌 '명랑소녀' 이일희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LPGA 정복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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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모님과 통화했나?

- 어머니랑 통화했어요. 울진 않았어요. 이번 대회 기간 동안 너무 재미있게 쳐서 좋기만 했어요. 솔직히 우승하면 울 줄 알았거든요. 근데 좋기만 하더라고요. 하하. 몇몇 언론에서 제가 울었다느니 울먹였다느니라고 쓰셨는데 저는 운 적도, 울었다고 말 한 적도 없어요.

Q. 폭우로 골프장이 물에 잠겨 36홀 대회로 축소됐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 정상적인 대회 운영이 아니었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홀이 12개 뿐이었어요. 1라운드와 2라운드는 파 45로 진행됐고 최종라운드는 18번 홀(파5) 물이 빠지면서 파3홀 대신 이 홀에서 플레이를 하게 되면서 파 47이 됐어요. 최종일 강풍까지 불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저는 오히려 이게 기회가 되겠구나 싶었어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저는 바람을 이용했어요. 훅 바람이면 오른쪽을 겨냥하고 뒷바람이면 공을 바람에 태우고, 앞 바람일 때는 공을 낮게 깔아서 치는 기술은 없으니까 그냥 클럽을 길게 잡고 공을 띄워서 세웠어요.

Q. 2009년 퀄리파잉스쿨 통해 이듬해인 2010년 미국에 진출했는데, 투어 생활 중 힘들었던 기억은?

- 가장 힘들었던 건 첫 해(2010년) 말(영어)도 안 되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혼자 투어 일정 짜고 이동하고 대회에 나가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힘들었어요. (신)지애랑 친한데, 지애가 처음에 많이 도와줬어요. 그렇다고 모 언론에 나온 것처럼 며칠씩 지애집에서 신세 지고 그런 건 아니고요. 딱 하루 지애 집에서 잔 적이 있어요. 아무튼 첫 해에는 댈러스 교민들한테 신세 많이 졌어요. 호텔은 비싸서 대회 주최 측에서 마련해주는 하우징(무료 숙박)이나 한인 민박을 많이 이용했죠. 그리고 영어는 잘 못하더라도 일단 막 부딪치니까 그냥 되더라구요. 하하.

이일희_AP


Q. 선수생활의 터닝 포인트라면?

- 볼빅(국산 골프용품업체)을 만난 게 제 선수생활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2012년 볼빅에서 후원 시작하고부터 성적이 엄청 좋아졌거든요. 그해 US여자오픈 공동 4위도 볼빅의 후원 덕분이었어요. 사실 볼빅 후원 받기 전까지는 스폰서가 없어 주머니 사정도 안 좋고 성적도 안 좋고, 부모님도 그만 고생하고 들어오라 하셔서 눈물을 머금고 2011년 말에 국내 투어 복귀를 시도했었어요. 그런데 국내 투어 시드를 못 딴거예요. 2011년 KLPGA 퀄리파잉 스쿨에 응시했는데 떨어져버린 거죠. 정말 앞이 캄캄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볼빅 문경안 회장님께 전화드렸죠. 좀 도와달라고. 그 때 문 회장님께서 제 손을 잡아주셨고 그게 제 골프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죠. 덕분에 작년(2012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와 투어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성적도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작년에 상금랭킹 40위까지 올라가게 된 거예요. 돈을 좀 벌게 되면서 작년 말에 차를 샀고. 이달 초  댈러스에 아파트 월세를 구했어요.

Q. 프로 데뷔는 2006년 18살 때인데 국내에서 2007년부터 2009년 중반까지 투어를 뛰었고 준우승만 두 차례. 우승은 한 번도 못하고 곧바로 2009년 말 미국으로 건너갔던데.

- 저는 골프 시작 처음부터 미국 무대에서 뛰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성적에 관계 없이 국내에서 뛰어야 하는 의무 기간 2년을 끝내자 마자 미국으로 온 거예요. 다행히 퀄리파잉 스쿨을 20위로 통과했고 2010년부터 미국 투어를 뛰게 됐죠.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미국에 온 게 정말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프로골퍼로 지낸다는 것 정말 멋진 일이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골프)을 하고 여행하듯이  지도 보면서 투어를 다니고 아름다운 자연도 즐기고 돈도 벌고. 하하하. 전 정말 골프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Q. 키는 169cm. 샷 거리는 어느 정도?

- 드라이브샷 평균 비거리는 255야드. 장타자는 아니예요. 7번 아이언으로는 150야드 쳐요.

Q. 현지에서 영어로 한 인터뷰 보니까 카지노에도 갔었다는데?

- 바하마 애틀랜티스 호텔 카지노에 갔었어요. 100달러 갖고 가서 45달러 잃었어요. 45달러 잃고 19만 5천 달러 벌었으니 나쁘지는 않죠? 하하하. 호텔 수영장 슬라이드도 너무 재미있었구요. 수영장 바로 옆이 대서양이라 그냥 매일 뛰어들었어요.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이일희는 우승 상금으로 2억 1600만 원을 받았고 후원사 볼빅으로부터 우승 상금의 50%인 1억여 원을 보너스로 받습니다.)

낙천적이고 명랑한 성격으로 프로 데뷔 7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미국 무대에서 일군 이일희는 정말 즐겁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골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재능이 있는 자는 열심히 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군요. 프로데뷔 7년 만에 생애 첫 승의 물꼬를 튼 이일희의 골프 인생은 앞으로도 탄탄대로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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