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국회 5급 보좌관 한 명이 모 회사 부장급으로 영입됐다고 합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인데도 그 회사에서는 파격적으로 부장급 대우를 해 주면서 모셔갔다고 합니다. 부장급이다 보니 연봉도 1억 원을 거뜬히 넘겼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6,7급 비서관 보좌진도 두 명 더 추가로 영입했습니다. 한꺼번에 국회의원 보좌진 세 명을 영입한 이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로 지적을 받고 있던 여러 회사 가운데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이례적인 영입에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뒷말이 무성했다고 하는데 일자리가 많아졌으니 썩 나쁘진 않았을 겁니다. 보좌진 영입은 이 회사뿐만이 아닙니다. 내부거래와 크게 연관 없어 보이는 회사까지도 보좌관을 영입해 가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들이 뭐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이른바 '대관'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국회 입법이나 정부 정책에 상관없이 모회사 덕에 편하게 수익을 내다보니 대관업무의 필요성을 별 느끼지 못했던 회사들이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 바람이 세게 불자 뒤늦게 대관 업무에 뛰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지난달 국회 정무위에서 총수일가 내부거래 규정과 관련된 논의가 법안심사소위에서 시작됐을 때, 관련 국회의원 사무실 문턱은 쉴 틈이 없었다고 합니다. 해당 기업 간부는 물론이고 사장까지 전사적으로 투입돼 국회의원 사무실을 쉴새없이 드나들었다 합니다. 자기 회사 입장도 들어달라며 보좌관, 비서관 가릴 것 없이 두꺼운 자료를 들고 와서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법안 관련 당사자들의 국회를 찾아와 입장을 설명하는 것을 당연한 일이겠지만, 간부들까지 총동원돼 애걸복걸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급했으면...'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들불처럼 번져가던 상생의 목소리가 좀 잠잠합니다. 총수 일가 내부거래 관련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정무위도 조용합니다. 대신 남양유업이 촉발시킨 밀어내기와 갑을 문제가 더 시끄럽습니다. 6월 국회에서도 갑을 문제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이고, 공정위도 식품과 유통업체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공정거래 규제 대상이 제조 대기업에서 식품, 유통업체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고, 총수 일가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에서 밀어내기와 갑의 횡포로 화두가 바뀐 분위기입니다. 똑같이 불공정 거래 문화를 개선해 을의 권한을 보호해 주겠다는 취지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핵심 규제 대상과 구체적인 중심 규제 항목이 한 달 새 바뀐 형국입니다. 부당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로 비판을 받고 총수 일가 지분을 버리고 사업 철수를 선언했던 회사들은 이제 조용하고 대신 밀어내기로 대표되는 식품, 유통업체들이 바짝 몸을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지난달까지 사면초가에 몰렸던 대기업들은 한 숨을 돌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전격적으로 영입하면서 대관업무를 강화했던 업체들도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나 부당 내부거래와 밀어내기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 지는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해당 중소기업과 납품업체, 대리점 주들에겐 모두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밀어내기’에 묻혀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대책과 법안 마련에 소홀함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잠시 돌아가 있는 비판의 시선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피해자는 여전히 충분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