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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료 15% 절감?' 연료 절감기의 진실

[취재파일] '연료 15% 절감?' 연료 절감기의 진실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13.05.26 09: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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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연료 15% 절감? 연료 절감기의 진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제보 아닌 제보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인터넷 공동구매를 통해 약 20만 원을 주고 '차량용 연료 절감기'를 샀는데, 별 효과를 못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광고에는 분명 15% 이상의 연료를 아낄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전혀 실감할 수 없어 실망이 크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보라기보다는, 그냥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하소연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제보가 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을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자동차 동호회 회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상식으로는 연료 절감기가 전혀 효과가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동호회 회원들이 이 제품을 공동 구매하려고 한다며 진실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자동차 동호회 몇 곳을 들어가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많은 회원들이 이 연료 절감장치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구매해보고 성능이 좋아졌다'라는 내용의 사용 후기를 남긴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말한 '연료 절감기'가 무엇인지 직접 찾아봤습니다. 제품은 매우 간단한 작은 링 모양이었습니다. 과연, 이 작은 링이 어떻게 연료효율을 15%나 높일 수 있을까? 판매자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봤습니다. 판매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제품을 연료 주입구와 공기 흡입구에 달면, 기기에서 원적외선이 나와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 흐름을 좋게 해 연료 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언뜻 듣기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얘기였습니다.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취재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취재였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참 깊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시청자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게 아닌가, 이럴 걸 꼭 기사를 통해 알려 드려야 하나'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원적외선이 차량 연비를 높여준다?

우선, 판매자를 만나 제품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판매자는 자신이 제품을 직접 설치해 주겠다며,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제품을 설치하는 내내 참 잘 한 선택이라며, 연비 효율을 높일 수 있다며 자랑했습니다. "원적외선이 나와서 공기의 흐름을 활발하게 해준다. 차가 자기 성질을 충분히 낼 수 있게 도와준다. 마치 자양강장제를 먹은 것처럼 차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과연 그런지, 자동차학과 교수들과 직접 실험해 봤습니다. 제품을 장착했을 때와 장착하지 않았을 때 연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측정해봤습니다. (제품 부착은 사용설명서와 판매자가 알려준 방법을 참고 해서, 전문 기술자가 제품을 차량에 부착했습니다.) 공인된 연비 측정 장비를 달고, 세 명이 탑승한 상태에서 도심 20km와 고속도로 40km를 달렸습니다. 운전 습관에 따른 오차를 줄이기 위해, 운전은 규정 속도에 맞춰 진행했습니다. 아울러 차량 흐름에 따라 연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 오후 3시 이렇게 세 차례 걸쳐 반복실험한 뒤 평균값을 측정하기로 했습니다.
한세현 일회용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기기를 장착하기 전의 연비는 15.88km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기기를 장착한 뒤 측정한 연비는 15.47km에 불과했습니다. 기기를 장착하기 전보다 오히려 기름을 더 많이 먹은 것입니다.


"연비를 5%만 높여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자동차학과-기계공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의 한결같았습니다. "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마디로 난센스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얘기다!" 어느 전문가는 제게 이렇게까지 얘기했습니다. "한 기자, 내가 한 기자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앞으로 이런 건 묻지 말아줘요. 자꾸 한 기자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게 됩니다. 현대, 벤츠, BMW 같은 세계적 자동차 회사들도 연비 1~2%를 높이려고 수백억 원들 들여 10년씩 연구하고, 학계에서는 자동차 연비를 5%만 높일 수 있으면 노벨상을 준다고 합니다. 이런 간단한 장치 달아서 연비 15% 높일 수 있다면, 그거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직접 나서야 보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취재를 모두 마치고, 해명과 반론을 듣기 위해 제품 판매자에게 다시 연락해봤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제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 실험에서도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취재과정을 설명했지만, 판매자는 제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공식적으로 연비 측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동호회 회원들이 효과가 있다고 후기를 올려줘서 그것을 알렸을 뿐입니다. 중요한 건 실제 사용자의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과학적 근거가 없는 '연료 절감 효과'  명백한 위법 사항

보도가 나가고 많은 시청자께서 많은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았던 것이 '이렇게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았으면서 획기적으로 연비가 좋아진다고 광고한 것은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냐?' 한마디로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대해 위법 여부에 대해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경찰은 시청자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답했습니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 없이 사용자 후기에 의존해 광고한 것은 허위과장 광고, 기망에 의한 사기죄에 해당해 입건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또, 사용 후기는 매우 주관적인 주장으로 과학적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시청자께 다시 말씀드리자, 일부 시청자는 정식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답변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진짜 약'은 여러분의 발 끝에 있습니다.

의학용어 중에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단어가 있습니다.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해 환자에게 복용하게 했을 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말합니다. '플라세보(Placebo)'란 말은 '마음에 들도록 한다'라는 뜻의 라틴어로,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기 쉬운 질환에서는 이 '가짜 약'을 투여해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약품의 실제 임상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가짜 약'을 투여한 군과 진짜 약을 투여한 군을 비교해 과학적 유효성을 따져야 합니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전 이 '플라세보 효과'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제대로 된 공인 검사를 거쳤는지, 또 그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짜 약'에 현혹되지 말고 '진짜 약'을 찾으시면 합니다. 그 '진짜 약'은 바로 운전자 여러분의 발 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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