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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진 목숨, 다섯 번의 자살시도 그리고 생존"

"부모는 살고 자녀만 숨진…" 포천 자매 살인 사건 수사 결과

[취재파일] "모진 목숨, 다섯 번의 자살시도 그리고 생존"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됩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우리 인생에 있어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명한 진리는 최근 어렵게 해결된 장기미제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경기 포천 산정호수 부근 여우고개 절벽 아래에서 유골 두 구가 발견됐습니다. 열세 살, 열 살 난 자매의 유골이었습니다. 이른바 ‘포천 자매 살인사건’의 출발점입니다.

한 등산객이 발견한 유골. 경찰은 이를 토대로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사망시점을 발견 열 달 전인 2010년 2월로 추정합니다. 몇 안 되는 정황을 토대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자매가 목 졸려 숨지거나, 차량 뒷좌석에 타 있다가 절벽에서 추락하면서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유력한 용의자로 자매의 부모를 지목했지만, 부모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 사건은 그렇게 장기미제가 됐습니다.

실체를 알 수 없었던 사건은 2년 뒤인 지난달 유력한 용의자였던 47살 이 모씨 부부가 검거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이 사건의 큰 줄기는 부모가 자녀를 죽인 살인 사건으로, 경찰은 범행 동기와 방법을 밝히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했습니다. 수사 초기 경찰은 산정호수에서 자녀를 목 졸라 살해한 이씨 부부가 시신을 차에 싣고 여우고개로 이동해 차량과 함께 밀어버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면서 숨겨진 사실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떻게 살해했을까. 결론은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었습니다.

타살이라는 경찰의 추정은 맞았지만, 살해 전후 과정엔 복잡하게 얽힌 사연들이 있었고 방법과 경위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씨 부부는 자녀와 동반 자살을 기도했고, 믿기 어렵지만 이틀사이 무려 다섯 번의 자살시도를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경찰 역시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사건을 역추적 하며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씨 부부는 지난 2010년 2월 자녀를 데리고 포천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민박집에서 숙박한 이 씨 가족, 자매는 잠들었지만 부모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몰래 일어나 가방 속에 숨겨뒀던 번개탄을 꺼냈습니다. 동반 자살을 시도한 겁니다. 그러나 화장실을 간다고 갑자기 깨어난 막내딸이 문턱에 걸려 넘어져 울기 시작했고, 동반자살은 실패했습니다. 첫 번째 자살시도였습니다.

산정호수로 이동한 이씨 부부는 그제 서야 자녀에게 여행의 실제 목적을 설명합니다.

“아빠 엄마는 너희를 키울 만한 경제적 능력이 안 된다. 죽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우리가 죽으면 너희들은 보육시설로 갈 텐데, 어떻게 할 지 너희들의 뜻을 존중하겠다.”

막내 딸이 울며 먼저 답합니다. “아빠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기 싫어, 함께 할래”

큰 딸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고민했지만, “아빠 엄마를 따라 갈래요”

차량 안으로 들어간 이 씨 가족. 부모는 “다음 세상에선 부유한 집안 자녀로 태어나라”며 번개탄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콜록 거리면서 일어났습니다. 동반자살에 또 실패한 부모는 큰 딸부터 먼저 목 졸라 숨지게 했습니다. 어린 두 자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 째 자살시도였습니다.

이 씨 부부는 자신들만 살아남자 자녀의 시신을 싣고 여우고개 절벽 근처로 갑니다. 그리곤 절벽 아래로 차량은 떨어졌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자매의 시신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왔습니다. 이 씨 부부는 차량에 동승했을까. 당초 경찰은 절벽의 지형과 시신이 튕겨져 나올 만큼의 충격을 감안할 때 이 씨 부부는 동승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차량만 절벽으로 밀어 버린 것으로 추정한 겁니다. 그러나 최종 수사 결과는 ‘동승했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천운이었는지, 절벽 아래 70미터 근방에서 발견된 차량은 낙하 20미터 지점에서 나뭇가지에 걸려 1차 충격이 완화됐습니다. 게다가 자살을 하려고 했던 이 씨 부부는 평소 습관대로 안전띠를 한 상태로 가속 페달을 밟고 절벽 아래로 운전을 한 겁니다. 이 씨 부부의 진술을 믿지 않았던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차량 상태를 분석합니다. 기어는 ‘주행모드’, 시동은 'ON' 상태. 주행 모드에선 차량을 밀 수 없고, 또 사람이 밀어선 차량이 70미터 거리를 날아갈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겁니다. 이 씨 부부의 3번 째 자살시도도 이렇게 무위에 그친 겁니다.

절벽 아래에서 깨어난 이 씨 부부. 아내가 먼저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리곤 바위 조각을 발견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돌로 내 머리를 내리 쳐라”고 말합니다. 또 다시 죽음을 선택한 겁니다. 남편은 아내의 말 대로 했고, 그 뒤 자신의 머리를 순차적으로 내리쳤습니다. 몇 시간 뒤, 이번엔 남편이 먼저 눈을 떴습니다. 죽지 않은 겁니다. 몇 분 뒤 누워있던 아내도 눈을 뜹니다. 잔혹한 자살시도 조차 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깨어난 아내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얼어 죽자”

2010년 2월 영하의 날씨 속에 이 씨 부부는 옷을 벗었습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이 씨 부부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눈이 떠졌습니다. 다섯 번째 자살시도조차 통하지 않은 겁니다. 이 씨 부부는 그제서야 ‘자살’ 대신 ‘살자’를 생각해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질긴 목숨, 하늘에서 우리보고 죽지 말고 살라고 하는 것”이라며 생존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자녀는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일그러진 차량, 부러진 나무, 흩어져 있는 자녀의 시신을 본 이 씨 부부는 큰 딸과 작은 딸을 한 데 모았습니다. 큰 딸은 돗자리고 덮어두고, 작은 딸은 옷가지로 감싸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엔 “시신을 발견 한 사람은 장례식을 치러 달라”는 메모장을 써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섯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하고서야, 자살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된 이 씨 부부. 걸어서 절벽을 벗어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푼의 돈을 받고 동상과 다친 머리를 치료한 후 인터넷을 보고 일자리를 찾습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충북 진천, 경남 밀양을 떠돌아다니다 부산의 한 농장에서 정착했습니다. 그러다 2년2개월 뒤, 수배 전단지를 본 한 시민의 신고로 이 씨 부부는 농장에서 검거됐습니다.

이 씨 부부가 다섯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이유는 뭘까. 경찰이 파악한 건 바로 ‘1억3천만원 빚’ 때문.  학습지 판매원이었던 이 씨 아내는 지점장에게 팀장 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곧 있으면 팀장이 공석이 되는데 팀장을 해보는 게 어때, 학습지 판매량을 조금만 더 높이면 다음 팀장은 당신이다”

일반 판매직이었던 이 씨 아내는 팀장이 될 꿈에 부풀어 학습지 판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 해 지점 매출액 6억 원 중 4억5천만 원이 이 씨의 아내가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판매가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이 곳 저 곳에서 빌린 돈으로 학습지를 미리 구매했고, 인터넷을 통해 싼 값에 재판매하다 적발됐습니다. 채무상환을 위해 아파트까지 처분해 버렸습니다. 일용직 근로자였던 남편, 회사에 징계까지 받은 아내는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남은 1억3천만원의 빚을 월 50만원의 월급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들어 동반자살하려 했습니다.”

장기 미제였던 포천 자매 살인 사건은 이렇게 정리됐습니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결과를 토대로 이 씨 부부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최근 구속기소했습니다.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은 “목숨이 이렇게 질길 수 있는지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모진 목숨, 처음부터 소중히 여겼으면...죽음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것부터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이 씨 부부의 머리엔 2년 전 흉터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매일 그 흉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목숨은 수단이 될 수 없다, 그 자체가 온전한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씨 부부는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까. 깨달았더라도 어린 자매는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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