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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술 없이 어떻게 축제를 하죠?

[취재파일] 술 없이 어떻게 축제를 하죠?
"축제에 술이 없으면 어떨까요?" 대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결같이 제목처럼 반문합니다. "술 없이 어떻게 축제를 하죠?" '말도 안 된다'는 거죠. 대학 축제에 주점이 등장한 게 30년도 더 됐다고 어느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교수님이 대학생일 때도 제가 대학생일 때도 축제의 꽃은 주점이었습니다. 다른 건 다 변해도 캠퍼스 주점은 전통처럼 대학 축제에서 대물림돼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은 학내에 술 판매가 금지된 곳입니다. 술이 없어서 그랬는지 학생회가 준비한 행사가 부실해서 그랬는지 축제 때 영 흥이 안나서 옆 학교로 놀러간 적이 있습니다. 축제를 잘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는데 행사에 연예인도 많이 오고 이런저런 즐길거리가 많았습니다. 그 중에 빠지지 않았던 게 캠퍼스 주점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주점 수십 개가 캠퍼스 곳곳에 설치됐는데, 벌건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게임을 하는 모습이 어찌나 즐거워보였는지 '수능시험을 다시 봐서 이 학교에 와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대학 축제에 가봤더니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흥겨운 에너지가 넘치고, 흥겨움의 중심에는 술이 있습니다.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선후배 사이 벽을 허물고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시작하고, 확실히 축제에 술이 빠지면 좀 서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먹다 보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실수가 과하면 사고가 일어납니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학생들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러다가 사고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군요. 한주 전에 있었던 수도권 한 대학의 축제 기간에는 교수에 연구원, 학생까지 음주운전을 하다가 무더기로 단속에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축제 때는 학생들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차량 전복사고가 나서 1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술 때문에 흥겹지만 술이 원수가 되기도 하다보니 최근 들어 술 없이 축제하는 대학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외대는 지난해부터 축제 기간 주점 설치를 금지했고, 단국대도 올해부터 술 없는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몇몇 기독교계열 대학은 이미 진작부터 학내 금주를 실천해오고 있고요.

술 없는 축제의 장점은 다양한 행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주점으로 몰리던 학생들이 분산되면서 전공이나 동아리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단국대의 경우 예전에 주막이 서던 자리에 치대 학생들이 천막을 설치하고 무료 구강검진을 해줬습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을 위해 면접 대비 화장법을 알려주는 동아리도 있었습니다.

술 없는 축제 캡쳐


술이 빠지니 '서운하다', '고등학교 축제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지만, 20대의 젊음이 가득한 대학 축제는 술이 없어도 흥겹고 꽤나 낭만적이었습니다. 성인인 대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강제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거나 정부가 법으로 못하게 막는 건 학생들 말처럼 '자기결정권 침해'일 수 있습니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이 누군가 강요한다고 해서 쉽게 변할리 없죠.

하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절주 캠페인을 벌인 학교가 있을 만큼 음주문화를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술 없는 축제를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우리 대학생들 이번 축제 기간에는 술을 자제하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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