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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힌다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자들 무죄 확정판결 잇달아

[취재파일] 잘못된 역사는 바로 잡힌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전진하는 것일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반복하며 전진하는 것일까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확실한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와 근거들이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대법원 1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소속 공작원에게 국가기밀을 전달하고 유신헌법을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올해 58살 김정사, 59살 유성삼씨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두 사람은 재일동포 출신으로 1970년대 서울대 사회계열과 한양대 의대로 모국유학을 왔다 1977년 4월 국가보안법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보안사에 체포된 뒤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1979년 8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복역했습니다. 두 사람이 누명을 벗기까지 3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죄 확정 판결의 근거는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이자 무효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고문과 위협으로 이뤄진 피고인들의 진술은 임의성이 없다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하지 않았다.” 였습니다.

이 판결보다 6일 앞선 판결도 있습니다.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하고 긴급조치 4호를 바방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83살 추영현씨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습니다. 추씨는 44살이었던 1974년 북한 실생활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고 긴급조치 4호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4년 3개월을 복역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였던 그는 8순 노인이 돼서야 아무 죄가 없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지난 14일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금됐던 올해 54살 백병규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이 같은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백씨는 1978년 11월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철폐를 주장하는 내용의 지하신문을 제작해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지에서 배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6개월 정도 교도소에 있다가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습니다. 백씨의 경우 혐의를 벗는데 35년이 걸렸습니다.

법원 관련
하루 전 13일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됐던 올해 예순살의 임상우 서강대 사학과 교수 등 옛 서강대생 4명이 재심을 통해 39년만에 누명을 벗었습니다.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자 무효이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행위도 범죄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경찰과 중앙정보부 소속 수사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도 인정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지난 달 29일에는 1978년 전남대에서 당시 교수 11명이 민주교육헌장을 비판하는 교육지표를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해직과 동시에 구속됐던 사건에 대해서도 무죄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올해 78살의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는 치매기로 재판장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송교수의 부인은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세월이 너무 흘러 무덤덤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달 26일에는 올해 59살의 최권행 서울대 불문과 교수 등 민청학련 사건의 피해자 9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6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2011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매우 큰 반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배상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유신 시절 취해진 긴급조치 위반 행위에 대한 무죄확정 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0년 12월에 긴급조치 1호에 대해, 2011년 4월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 날조-유포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고 4호는 민청학련 같은 단체에 가입하거나 관련 활동을 못하도록 금지하며 위반하는 경우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수색해 비상군법회의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근거규정입니다. 1975년 5월 선포된 긴급조치 9호는 집회와 시위등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민변
이렇게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계속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긴급조치 1,4,7,9호 피해자들에 대해 대법원에 비상 상고해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피해자 개인이 재심을 청구하거나 형사보상 절차를 밟아야만 구제를 받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검찰이 비상상고를 하게 되고 대법원이 이 걸 받아들이면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되고도 재심 청구를 못했거나 이미 숨진 피해자들이 자동으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 2006년 발표한 보고서에는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가 천명이 넘지만 당시 각 법원에서 재심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은 350명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비상상고가 이뤄지게 되면 400-600명이 일괄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민변의 전망입니다.

정치권도 거들고 나섰습니다.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낸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데요, 유신헌법하 긴급조치 위반 유죄판결의 일괄무효가 이 법안의 핵심 내용입니다. 긴급조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임을 확인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선고된 유죄판결은 무효로 하고, 판결에 부소하여 내려진 처분도 효력을 상실하도록 한다. 그리고 형선고로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격도 모두 회복하도록 한다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국민통합,사회통합을 위한 법안이기 때문에 6월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술자리에서 반정부 발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기문란 혹은 국가보안을 위해한 범법자가 되게끔 했던 유신시절 긴급조치는 이렇게 40년의 시간을 흘러서 법적으로도 엉터리였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20대에서 4-50대 한창 나이의 사람들을 옭아매고 오랜 세월 고통 속에 살게끔 했던 올바르지 못한 상황이 이제야 바로잡히고 있는 겁니다.

1980년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탄압하며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에 대해서는 조금은 일찍 역사의 단죄가 내려졌습니다. 1994년 만들어진 12.12-5.18 특별법을 통해 12.12는 군사반란으로, 5.18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유혈진압한  내란행위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세력 모두가 법정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이 죄수복을 입고 포승줄에 묶여 법정에 서서 재판장의 준엄한 선고를 듣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단순히 위 두 사안뿐 아니라 과거 조선,고려시대 등 오래전 우리 역사속에서도 한 때의 역적이 후대에 신원되고 복권되는 모습을 역사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힌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다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속에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고쳐야 한다고 앞장서 외쳤던 사람들의 희생과 고난이 어둠속에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60-80년대 안락한 개인의 삶 대신에 국가와 사회, 후손들이라는 더 큰 대의를 선택하고 일어선 선배들의 외침과 눈물, 저항 덕분이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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