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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바보' 노무현을 추억하면서

4년 전 그 날의 기억

[취재파일] '바보' 노무현을 추억하면서
4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저는 미국에서 들었습니다. 그 날 밤 혼자서 술을 들이키다 문득 그의 정치 일생을, 제가 만났던 정치인 노무현을 정리하는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기억의 힘 조차 약화시킵니다. 하지만 기자로서 노 전 대통령과 대면하고 대화하고, 그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던 기억은 지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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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친구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위성으로 중계되는 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전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다가 그 뉴스를 보고 제 눈을 믿지 못했습니다. 미국인 친구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믿을 수 없는 뉴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당혹스럽다가 화가 났습니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참담했습니다. 그리고 '바보'노무현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떤 전직 대통령들은 국민의 생명을 무시해가면서까지, 또 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의 통치자금을 받고, 그 대가로 검찰의 수사와 재판을 받았어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데, 왜 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그런 길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단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의 서거 소식에 충격받을 국민들은 어쩌라고 말이지요. 그러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왔습니다. 조금 뒤에 지금 서울에 있는 아내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텔레비젼 뉴스 속보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난다면서 이 지경까지 방치한 정치권이나 검찰, 언론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자일 하는 남편에게 대오각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더니 슬프다고 했습니다. 비슷합니다. 저나 아내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럴 겁니다.

노무현 5공 청문회


1988년인가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5공 비리와 광주' 청문회에서 한 정치인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의 질문과 호통은 쏙쏙 귀에 들어왔습니다. 저런 정치인이 우리나라에 있었나 싶었습니다. 그가 노무현이었습니다.

그 다음해 세밑이었습니다. 6공과의 타협끝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국민 사과 연설을 했습니다. 한 정치인은 그를 향해 "살인마"라고 소리쳤고, 또 다른 한 정치인은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졌습니다. 명패를 던진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이었습니다.

1990년 1월 어느날 서울 낙성대역 근처 한 식당에서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한 잔 하다가 텔레비젼에 등장한 당시 대통령과 두 야당의 총재를 봤습니다.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겼던 그들이 한 식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또한 충격이었고 한 야당 총재를 지켜보는 관점에서는 배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속한 당의 의원들은 대부분 그를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옳지 못한 일이라며 그대로 야당에 남아 형극의 길을 걷겠다고 밝혔습니다.그 중에 한 명은 이런 정치현실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며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고 잠적했습니다. 그가 노무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졌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졌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도 떨어졌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습니다.

노무현 새정치국민회


그를 직접 만난 것은 1998년 제가 새정치 국민회의 출입기자로 있을 때였습니다. 최고위원이었던 그는 현직 약사인 곱상하게 생긴 남자 수행비서 단 한 명만 대동하고 주요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88년의 일을 거론하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기자에게는 쑥스러워했습니다. 당시 당 지도부와의 물밑 신경전끝에 그는 그 해 7월 재보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해 6년만에 다시 국회의원이 됩니다.

그런데 다음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2000년에 그는 이상한 결정을 내립니다. 당선이 유력시되던 서울 종로를 떠나 다시 부산에서 출마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 민주당(새정치 국민회의의 후신)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그 당 후보로 출마하면 당선되기가 어려운 점을 알고서도 말이지요. 당연히 그는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때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을 통해 노무현을 '바보'로 부르며 연대감을 나타내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위한 팬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처음 있던 일입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노사모'입니다. 당시 그의 팬클럽이 대전에서 창립 모임을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리포트를 하겠다고 발제했다가 데스크의 반대에 부딪쳐 몹시 씩씩댔던 기억도 납니다.

그 다음해 어느 날인가, 그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기 전입니다. 그와 SBS의 민주당 출입기자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여의도의 조촐한 식당에서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잘 이끌고 싶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3당합당 때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를 따라갔던, 그리고 2001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이인제 의원이 후보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능력이나 정치적 감각, 시대 정신과의 호흡등 그 어떤 면에서도 이 의원에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2002년 3월 16일 광주에서 열린 광주광역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그는 기적처럼 1위를 해냅니다. 당시 그를 도왔던 천정배 의원도, 영화배우 명계남, 문성근 씨도, 많은 민주당원과 광주시민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무현 대선후보 시


직접 보지 못해 자신있게 말씀 못드리지만 아마 그도 울었을 겁니다.(그해 대선전에서 노무현 후보 진영이 내세운 첫 광고의 주제가 바로 노무현의 눈물이었습니다.)  광주 경선 닷새전인가요, SBS 뉴스에서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1.1%포인트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노무현이었습니다. 경선 직전 만난 광주시민들중 다수가 그 여론조사를 언급했습니다. 대세론을 외치던 이인제 후보가 결국 바보 노무현 바람에 거꾸러진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등 여러 지난했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는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그의 솔직한 말과 행동은 계속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2004년 2월 그가 SBS 사옥을 찾았습니다. 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을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기자직을 잠시 떠나 있던 저는 안내업무를 맡아 사옥 1층 로비 한 켠에 서있었습니다. 회사의 고위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멀리 서 있던 기자를 보고는 방향을 바꿔 다가오더니 "오랜만입니다." 하며 악수를 건네고는 "어딥니까? 갑시다."하더니 덜컥 제 옆의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당초 저희가 준비했던 코스가 아니어서 당황했지만 현직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모두가 따를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그 날 회견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 빌미가 돼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소추되는 대통령이 됐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많이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선거법 위반이라는 선관위 결정이 나왔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업무정지를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그는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습니다.

방송기자클럽 회견 뒤 한달쯤 뒤에 한 기업인이 한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에게 연임을 부탁하면서 돈을 건넸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성공하신분들이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는 일 없어야 한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시중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기업인의 자살 이유중 하나가 아니었겠느냐고 할 정도로 강도 높은 발언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저 개인적으로 어쩌면 그의 뇌리에 이 기업인이 남아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인의 유족은 지난해 12월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강하게 도덕적 청렴함을 강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가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그가 그렇게 강조해 왔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 상황이 못견디게 힘들었던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인 2007년 12월 22일 대통령이었던 그가 문재인 비서실장을 보내 대통령 당선자였던 이명박 현 대통령에게 축하난을 전했습니다. 20분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회동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여정부가 권위주의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무너뜨렸고 돈 안드는 정치를 정착시켜 이번 대선에서 덕을 많이 봤다. 이번 대선에서 돈을 적게 썼는데 그런 선거풍토를 만들어준 덕분이다. 후임자로서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새롭게 시작할 것은 새로 시작하면서 전임자가 존중받는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게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노무현 검찰 출석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실제로는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검찰에 소환돼 포토라인에 서서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만, 그래서 현 청와대와 여당, 검찰도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어떤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교훈이 있다면 정말로 뼈에 새겨서 우리 국민에게 또 다시 충격과 실망을 주는 일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에게 창피와 치욕을 안겨주는 정치보복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종결되겠지만 깨끗하지 못한 돈을 받는 정치적 악습도 반드시 끊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겠지요.

물론 그런 정치적 견해들에 앞서 때로 더할 수 없는 실망감과 배반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꿈을 줬던 '바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고 그를 추모하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참 따뜻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저 또한 동의합니다.

혹여라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그를 지지했던 진영과 그를 반대하는 진영 사이에 반감의 차원을 넘어 적대감을 나타내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겪어야 하겠지만,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다면 그래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분열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당혹스러워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선진국중에 선진국, 또 정치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는 불과 50년 전에 현직 대통령이 암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존 오스왈드라는 암살범의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국가의 비극이며 백주의 대통령 암살이란 국가의 수치"라고 당시 미국 사회는 절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미국을 지켜냈습니다. 흑백간,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과 설전,대립은 오늘 날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 통합이라는 더 큰 대의명분 앞에서는 서로가 자제하고 힘을 합친다는 게 미국의 힘이라는 미국인 친구의 말도 생각납니다.

노무현 영정


국민으로서, 혹은 기자로서 접했던 정치인 노무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떨 때는 소름 끼치게 격정적인 웅변가로, 어떨 때는 뭐 저런 실없는 사람이 다 있나 싶은 미소로, 어떨 때는 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시대정신을 오로지 혼자서, 혹은 자기들끼리 대변하고 있다는 자만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한 채 그는 떠났습니다.

그의 존재가 우리 정치의 발전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는 시간이 평가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마디가 더 기억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 자신을 "정치적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세대다. 솔직하게 말하면 구세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며 자신도 어느 정도 허물이 있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솔직한 정치인이었고 그런 면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서 없는 글을 맺습니다. '바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노무현 4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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