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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뚱뚱하면 아베크롬비 입지도, 구경하지도 말아라?

[취재파일] 뚱뚱하면 아베크롬비 입지도, 구경하지도 말아라?
5월 19일, 제스 M. 베이커라는 여성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편지글과 사진입니다. 제목은 ‘아베크롬비&피치 CEO 마이크 제프리즈에게’. 일단 사진 몇 장을 함께 보실까요?
아베크롬비2
아베크롬비

사진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블로그의 주인인 베이커입니다. 함께 사진을 찍은 남성은 존 C. 셰이. 블로그에 적은 자신의 소개글을 보면, 베이커는 아리조나 주에 살면서 세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고요, 그리고 정신 건강 전문가이자 뚱뚱한 모델이라고 합니다.

베이커가 올린 20장 가까운 사진에는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일단 베이커가 상의를 입지 않은 사진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베크롬비&피치 셔츠를 입고 있고요, (아시다시피 아베크롬비는 미국의 유명 캐주얼 브랜드죠.) 남성 모델은 상의를 입지 않은 채 등장합니다. 또, 보시는 것처럼 Attractive & Fat 라는 문구가 박혀 있습니다. 딱 봐도 Abercrombie & Fitch 를 떠올리게 하려 했다는 생각이 드시죠?

아베크롬비라는 브랜드를 잘 모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의 집 보일러실 바구니를 뒤적여 아베크롬비 종이 가방을 꺼내봤습니다. 아쉽게도 여성과 남성 모델이 함께 찍은 것은 아니지만, 근육질 남성 두 명의 상의를 벗고 몸싸움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네요. 참고용으로만 봐주세요.
아베크롬비 종이가방
아무래도 제 종이가방 만으로는 부족한 듯하여 일반적인 아베크롬비 모델들의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아베크롬비
아베크롬비2
베이커의 사진이, 아베크롬비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는 게 명확히 느껴지시죠? 특히 마지막 사진처럼 남성 위에 여성이 엎드려 있는 모습은 베이커의 사진과 구도마저 흡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3년 전 미국에 갔을 때 들렀던 아베크롬비 매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아베크롬비 화보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건장한 몸매의 남성들이 반바지만 입고 매장 앞에 서 있었거든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니까 파리 특파원으로 있다가 돌아온 저희 선배도 "샹제리제 거리에서 줄이 제일 긴 곳이 아베크롬비 매장이야. 간판도 글자도 없는데 앞에 몸매 좋은 남성들이 서 있고 여자 손님들과 사진도 찍더라고." 하며 경험을 보태십니다. 저는 그 때 '노골적으로 몸매를 드러내며 옷을 파네, 참 특이하다.'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하기로 하고, 베이커의 사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베이커는 자신 스스로도 뚱뚱하다고 말했을 만큼, 통통하게 살이 붙은 몸매를 사진 속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등과 옆구리 살이 접히는 상반신 누드 포즈를 취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옆에 있는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남성과 상당히 비교가 되는데도 말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비교 효과를 극대화 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이커는 왜 패러디 아닌 패러디 사진을 찍은 걸까요? 힌트는 제목에 있습니다. 앞서 적었듯이 콕 집어서
'아베크롬비 & 피치 CEO 제프리즈'라고 수신인을 밝혔습니다. 최근에 제프리즈는 외모 차별 발언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는데요, 사람들을 화나게 한 그의 말 가운데 몇 개 골라봤습니다.

“매장에서 덩치가 거대한 사람들이 쇼핑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원하죠.”

“외모가 괜찮은 사람들만 우리 옷을 입길 원합니다. 우리 회사에 뚱뚱한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어요.”

“아베크롬비는 막 서핑 보드에 뛰어오를 것처럼 보이는 빨래판 근육을 가진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외모가 괜찮은 사람을 매장에서 고용하는 이유입니다. 외모가 괜찮은 사람은 자신과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을 매장으로 불러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멋진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고 싶은 거예요."

그의 발언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S라인 몸매의 여성, 복근이 분명하게 새겨진 남성, 지금 세상에서 선호 받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동성이면 나도 저런 멋진 몸매를 갖고 싶다 느낄 것이고, 이성이라면 대놓고 좋아하는 티를 내지는 못해도 속으로 ‘괜찮다.’ 여기겠죠. 사실 어찌 보면 이건 본능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한 기업의 대표가 개인적으로 멋진 몸매 선호하는 수준을 넘어 외모 차별에 해당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여러 번 하는 게 괜찮은 일일까요?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기업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인 소비자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오만불손한 말을 쏟아내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베이커는 그래서 이 사진을 찍은 겁니다. 뚱뚱하면 쓸모없는 것처럼, 아베크롬비 옷을 입을 자격조차 안 되는 것처럼 비하하는 말을 쏟아내는 제프리즈에게 ‘뚱뚱해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말입니다. 베이커가 제프리즈에게 쓴 편지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뚱뚱한 사람 무시하는 거냐?’ 라는 식의 단순한 화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외모에 차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세상이 많기 때문에 그런 발언이 충격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 뚱뚱하다는 것과 매력적인 것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설명합니다. 특히 자신은 제프리즈는 결코 할 수 없는 누드도 찍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차별 발언에 대해 반대하는 움직임을 불러일으켜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여유도 잊지 않습니다. 그녀의 이런 용기 있는 사진과 글에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아베크롬비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미 불매 운동이 시작됐고요, 그레그 카버라는 한 작가는 아베크롬비라는 브랜드를 바꿔보자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주소 http://www.youtube.com/watch?v=O95DBxnXiSo)
이 영상은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 7백만 건을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살짝 알려드리자면 카버는 제일 먼저 제프리즈가 쏟아낸 외모 차별적인 말을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특정한 외모 조건을 갖춘 사람만 자신들의 옷을 입길 원하는 아베크롬비의 현 주소를 바꾸자고 제안하죠. 이를 위해 자신이 먼저 옷가게로 가서 아베크롬비 옷을 사고, 그 옷들을 거리의 남녀노소 노숙인들에게 건네는 모습을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행동 강령도 나옵니다. 먼저 옷장을 열어 아베크롬비 옷이 있는지 확인할 것, 그리고 그 옷들을 주변에 사는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것,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한 일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려 공유할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베이커가 Attractive & Fat 으로 아베크롬비의 행태를 비꼰 것처럼, 웃음이 터지게 하는 문구도 나옵니다. ‘Abercrombie & Fitch. The world's number one brand of homeless Apparel.' 번역하면 ‘세계에서 제일가는 노숙인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 & 피치.’ 정도가 되겠네요.
 
통쾌한 ‘을’의 반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http://www.themilitantba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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