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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범신 "우리가 빨대를 꽂고 있는 아버지들을 챙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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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위기의 아버지' 시리즈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소설가 박범신 선생을 만났습니다. 지난달 베이비붐 세대, 은퇴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소금'을 출간하셨죠. 1946년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68살이신데, 어찌나 목소리가 선명하시고, 말씀이 유려하신지...

박범신 선생은 소설 이야기와 함께 우리 시대 소외된 아버지들에 대한 생각을 밝히셨습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굉장히 깊이 있고, 신선했습니다. 리포트에 소개된 인터뷰 내용 이외에도 시청자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글로 옮겨봤습니다. 인터뷰 핵심 내용들을 제가 임의로 굵은 글씨체로 바꿨습니다. (실제 인터뷰는 위 동영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카메라 없이 진행된 사전 인터뷰에서 한 번 말씀을 정리하셔서, 실제 인터뷰는 다소 간략히 진행됐습니다.)


기자 : 우리 가족 안에서 현재 아버지들의 위치,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박범신 : 지금 늙어가는 아버지들 너무 쓸쓸하지요. 그래서, 이 소설은 '늙어가는 아버지의 구부러진 등을 한 번 보자'는 취지로 썼습니다. 냉혹한 말로, 우리가 빨대를 박고 빨아서 생명을 얻고 학교를 다니고 커온 근원을 가진 등이지요. 쓸쓸하게 돌아 누워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자는 거예요. 옛날 가부장제 아래에서 어머니들이 불평등을 받았던 가정이 건강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쓸쓸하다는 그 역시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아버지가 쓸쓸한 가정은 건강하지 않다." 저는 이 말이 굉장히 와닿더군요.) 쓸쓸한 아버지의 등을 인간적으로 수평적 관계 속에서 한 번 들여다보자는 차원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고요.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는 뭔가 폭력적인 게 있어 보여요. 끝없이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과 희생만 해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나는 우리도 그냥 다 자라면 아버지 이름을 한 번 부르는-그런 언어습관은 불가능하겠지만-아버지를 한 이름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 인간으로 보자는 거지. 아버지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런 소통의 시도가 젊은 세대들에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기자 :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박범신 : 지금 아버지들 세대는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인데요.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으로서 풍요를 구가하는 세대라고 할 수 있죠. 반면,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우리는 6.25 동란 우리가 원했어요? 원하지도 않은 전쟁이 동서 냉전 체제의 한 가운데서 우리나라에서 오폭처럼 폭발하는 전쟁이라고 하니까.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닌 상처 투성이의 전쟁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른바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암담하지요.  그들은 젊은 시절 강력한 유신과 같은 정책인 독재, 불평등 구조를 겪었고 절대 빈곤 세대였기 때문에 강력하게 가족을 위해서 야수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명령만을 수행해왔던 세대라고 할 수 있죠. 한 번도 자기 주체적인 꿈을 좇아가보지 못한 안쓰러운 젊은 날을 보낸 세대예요.(제가 리포트에 썼던 인터뷰입니다.) 그 결과가 2만불 소득이라고 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부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아버지들이 사회적 그늘에 대한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에요. 많은 부분에 책임이 있지만, 한 세대가 해야 하는 일은 그렇게 많은 게 아니거든요. 그들이 압축성장을 통해 나타낸 사회적 그늘은 새로운 세대들이 극복하도록 함께 도와야 할 문제이죠.


기자 : 소통을 모르는 아버지들, 누구의 책임입니까?

박범신 : 평생 오로지 야수적으로 일하면서 가족들을 돌본 아버지들이 지금은 회사에서도 거의 쫓겨났죠. 가정에서도 고집 불통이고, 말이 안 통하고... 그들은 민주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민주적인 소통을 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새로운 세대들하고는 갭이 생기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정말 이상하고 말이 안 돼'... 이래서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어요. 정부나 사회적 어떤 조직 안에서도 당연히 소외되어 있죠. 쓸쓸하게 뒷산이나 등반하고 있거나 새로운 창업은 거의 불가능한, 젊은이들도 일터가 없는 시대에 너무 외로운 지점에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이것은 굉장히 비윤리적이라고 봐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아버지들이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도와야 하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들 스스로가 자기를 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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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절대 빈곤을 빠져나왔으니까 이제 자기 주체로서의 인생 설계가 있어야 한다고 보죠. 노후 대비라고 하는게 경제적인 것만 대비하면 안돼요. 정서 문화적 대비도 해야 하죠. 내 소설 소금의 주인공은 가출하지요. 소비 지향인 세 딸과 마누라를 두고, 결국 뭐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가출하는 건 아니고 소설 속에 여러가지 장치들이 있어요. 하여튼, 끝내 가출하지요. 소설 속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아빠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가출하고 싶은 아버지, 하나는 자기가 잠든 사이에 표나지 않게 온 가족이 몽땅 가출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아버지." 그러나 실제 이 세상의 99%의 아버지는 견디고 있는 아버지이죠. 견딘 끝에는 가족들로부터 더 소외된 자리로 밀려나 있잖아요. 그래서, 아버지들 스스로가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데 소설 '소금'이라는 텍스트가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새로운 젊은이들에게는 당신의 아버지들이 어떻게 치사함과 굴욕을 견뎌내고 얻은 어떤 2만불 소득의 나라의 혜택을 받고 있는지, 적어도 아버지들이 어떤 꿈을 버리고 이룩한 기반 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지는 새로운 세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뜻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할 수 있죠.


기자 : 아버지 세대보다 젊은 세대의 고민 문제가 더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박범신 : 요즘에 청춘이 고독하지요. 우리 때에 비해서 경쟁도 훨씬 세졌고 특히 청춘의 문제는 이 자원의 독주, 자본의 프로그램이 너무 정교하기 때문에 끝없는 소비의 욕망만 키우고 본질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어려운 시대라는 데에 있어요.  이미 청춘에는 아무런 명령이 없죠. 아버지 세대들은 '절대 빈곤을 극복해라'는 사회적 명령 아래 야수적으로 일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청춘에게는 아무런 명령도 없죠. 인생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가야 하는데 세계에서 제시하는 것은 자본의 프로그램 뿐이에요. 소비, 대량 소비, 소비를 위한 욕망만이 자기 것인줄 착각하고 있는데 그 소비를 위한 욕망은 본질적으로 자기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젊은이들은 불안하죠. 소비를 위한 욕망을 좇을 수도 없고 본성을 좇을 수도 없어요. 막막하죠 청춘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그러잖아요. 아프죠. 그러나, 나는 모든 청춘은 세대를 초월해서 다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버지들의 청춘은 사실 더 막막했지, 생각하면. 그렇지 않겠어요? 앞으로 우리가 5만불 소득에 와도 청춘은 스스로 막막하고 아픈 거예요. 자기들이 갖고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갭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시대가 청춘이거든. 난 젊은이들한테 말하고 싶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아픔을 이겨내니까 청춘이지. 당신들이 아버지보다도 더 잘 배웠잖아. 기운도 세잖아. 훨씬 일할 수 있잖아. 더 훨씬 일할 수 있잖아. 아버지가 8시간 일하고도 파김치처럼 지칠때, 당신들은 10시간 일해도 견딜 수 있는 젊음이 있잖아. 그러면 야, 그걸 극복하는게 청춘이어야되지. 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당신들도 20대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자기 헌신을 하라는거에요. 세상을 위해서 헌신하라는게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위해서 헌신해야 될 거 아니야. 누군가에게 빨대를 박고 평생을 시종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너무나 권태로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죠.


기자 : 아버지의 제자리를 찾아드리는 일, 누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범신 : 이제 지금의 베이비부머 늙은 아버지 세대들의 가장 쓸쓸한 이유의 하나는-지금 젊은 아빠들도 마찬가진데-자식들을 어떻게든지 아버지가 책임지고 교육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에요. 아버지들이 책임이 무거워서 쓸쓸한게 아니라, 돈은 벌어다 대는데 자식들에게 영향력을 가진것은 자본이 만든 소비 문명이에요. 옛날의 아버지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어왔지만, 동시에 자식들을 통솔하고 자기 이상대로 자식을 교육할 수 있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 우리 아버지는 돈을 벌 뿐이고, 애들은 자본주의가 교육해버려요. 10만원짜리 청바지를 좋다고 하지만 애들은 나갔다오면은 30만원짜리를 사내라는 것 아닙니까. 거대한 소비 문명이 애들을 다 장악하고 있고, 애들은 오로지 아버지가 쓸쓸한 것이거든요.
 
특히 늙으면 이 아버지들을 돌이켜보면 그들이 잃어버린 건 뭐였을까. 2만불 소득의 조국을 만든 그런 영광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은 첫 마음, 첫 사랑, 첫 꿈을 잃어버렸다고 봐요. 이 소설에 그게 잘 나타나 있어요. 첫사랑을 읽는 대목이. 이제 자식들이 컸으면 책임도 좀 덜어졌으니까 늙어가는 아버지들이 나머지 인생에서 첫사랑, 첫꿈, 첫마음을 되살리도록 가족이 도와야돼요. 젊은 가족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교육받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다른 세상으로 끌어내서 아버지 주체를 가지고 아버지의 첫 꿈을 회복해서 살 수 있도록 아버지를 도와줘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처럼 당근이랑 채찍이라는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소통이 잘 안되는 아버지를 소통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내고. 또 아버지가 잃어버렸던 꿈을 회복해서 다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하죠. 그래서 아버지를 우리 가족 안의 젊은 한 동료로 이렇게 만들어내야 난 건강한 가족이 되는 것이고, 가족이 건강해야 우리가 일 열심히 해서 얻어온 2만불 소득의 이 나라의 아름다운 모든것도 함께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거지.

현재는 뭐 2만불 소득이 됐지만 우리 삶은 계속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젊은이와 늙은이가 분열되고 좌와 우와 나누고  온갖 것이 다 나눠진 건 우리 탓이 아니에요.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이걸 이렇게 나눠놓는 것이거든. 반인간, 반문화로 만들어야 소비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이 원리를 정확하게 알고, 그 자본의 노예가 되면 안 되지. 자본을 우리가 하나의 삶의 전략으로 자본주의를 활용해야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를 새로운 문화의 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식들이 많이 도와서 하나의 동행자로-스무살이면 뭐 어른이니까-아버지를 그냥 수직적 구조의 어떤 존재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한 인간으로 함께 손잡고 갈 수 있도록 동행자의 자리에 아버지가 앉을 수 있도록, 가르치지고 하고. 야단도 치고. 아버지 야단치는 방법은 좀 다르겠지만, 난 그래야 한다고 봐요.


기자 : 선생님도 아버지신데, 스스로 어떤 아버지로 평가하시는지요.

박범신 : 난 좋은 아버지였다고 봐요. 가족들과 그대로 대화를 많이 하고,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도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오픈 마인드로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하거든. 젊은 사람들과도 격없이 지내려고 하죠. 자식들과도 비슷하다고 봐요. 그렇게 어려워하는 아버지는 아니죠.(박범신 선생은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장남은 연극연출가 '박병수' 씨, 따님은 미술디자이너 '박아름' 씨) 그런데, 다음 생에 태어나면 아버지는 안 할래. 반 농담이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너무 어려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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