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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입가격이 영업비밀? 한국 소비자만 '봉'

- 관세청의 희한한 해명에 대해...

[취재파일] 수입가격이 영업비밀? 한국 소비자만 '봉'
수입가격 공개제도,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수입품이 우리나라에만 오면 유독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정부(관세청)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카드가 있을 줄이야. 이 정책 카드는 200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관세법 29조에 따라 관세청장은 수입가격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수입 물품의 국내 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에 관세청이 할 수 있는 것이지, 수입가격을 꼭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입가격은 수입품의 물건 가격에 운임과 보험료, 관세 등을 포함한 가격입니다. 이 '수입가격'은 자장면 '원가'를 말할 때, 밀가루 얼마, 인건비 얼마,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 것과 다른 가격입니다.

정부가 수입가격을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관세법 개정안이 시행된 첫 해인 2008년, 보도자료를 내고 언론에 공식 브리핑도 했습니다. 소고기, 삼겹살, 유모차, 양주, 청바지, 운동화, 안경테의 수입가격을 공개했습니다. 특정 브랜드가 얼마, 이런 식으로 한 건 아니고, 평균 가격은 얼마, 이렇게 계산했습니다. 특정 브랜드의 수입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관세법상 할 수 없고, 법에도 수입물품의 ‘평균 신고가격’을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관세청은 당시 수입가격을 석 달에 한 번 공개하겠다고 공언했고,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고기와 삼겹살을 제외하고, 유모차, 양주, 청바지, 운동화, 안경테의 수입가격 공개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석 달에 한 번 공개는 말뿐이었고, 공산품의 경우 5년간 단 한 번도 수입가격을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관세청 관계자는 수입업체들의 반발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가 안정이라는 공익도 중요하지만, 수입업체 사익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업비밀을 공개했다는 수입업체들의 항의를 그대로 수용한 관세청. 당시 EU 항의공문도 받았다며 곤혹스러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관세청은 지난 5년간 수입업체의 사익을, 물가안정이라는 공익보다 상위에 둔 셈이 됐습니다. 정부 입장이라고 보기엔 좀 민망합니다.

SBS 보도 직후 관세청이 해명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관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80여 가지의 농수산물 평균 수입가격이 나와 있는데, 이런 농수산물의 경우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적고, 반면 공산품은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수입가격 공개를 안 해왔다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필리핀 바나나와 페루 바나나의 경우 가격 차이가 작아서 평균가를 내도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적은데, 이탈리아 유모차와 네덜란드 유모차는 가격 차이가 커서, 평균 수입가격을 공개해봤자 영업비밀만 침해하고,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세청 설명은 곰곰이 듣다 보면 이상합니다. 공산품 수입가격은 공개해봤자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실익 없는 숫자가 수입업체의 영업비밀이어서, 공개할 경우 통상 분쟁을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의미 없는 숫자가 영업비밀이다? 거꾸로 농수산물의 평균 가격은 나름 가격 모니터 기능도 있고 유의미한 수치인데, 그것은 도리어 영업비밀이 아니다? 이거 모순 아니냐고 관세청에 물었더니, “1개 업체가 독점 수입하거나, 소수 업체가 과점 수입할 경우 평균가격 자체가 특정 업체의 수입가격에 가까워지므로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럼 그런 품목을 제외하고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수긍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관세청의 이상한 설명은 또 있습니다. 공산품의 경우 가격 공개 효과를 높이고자 '브랜드별 가격'을 공개할 경우 업체의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브랜드별 가격'은 관세법상 아예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애초에 '평균 가격'만 공개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브랜드별 가격을 공개하면 당연히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커지니까, 법을 만들 때부터 제한을 둔 것입니다. 즉, 관세청은 현행법상 불가능한 걸 할 경우에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으니, 수입가 공개를 안 해왔다는 희한한 논리를 공식 입장이라고 내놓은 것입니다. 정부가 내놓는 많은 해명 자료를 봐왔지만, 이번처럼 이상한 건 처음 봤습니다. 이런 해명 자료는 관세법 조항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는 국민들을 기만하는 셈인데, 법 조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직자들이 이런 류의 자료를 홈페이지에 걸어놓는 것은 아주 잘못된 행태입니다.

수입가격이 영업비밀이다? 글쎄요. 인터넷 몇 번 두드리면, 정확한 수입가격은 몰라도, 다른 나라의 인터넷 판매가는 쉽게 알 수 있고, 관세야 품목 별로 모두 공개돼 있는 수치인데, 수입가를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는지는 계속 의문입니다. 또 한 가지, 관세법의 기본 전제는 “수입가격은 영업비밀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관세법은 29조에 수입가격 공개를 규정하면서 단서 조항을 두길, 관세청장은 수입물품의 상표나 수입자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은 공개할 수 없도록 정해놨습니다. 즉, 수입가격은 공개하되, 영업비밀은 공개하지 말라는 건, 두 개념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관세청 주장 혹은 믿음대로, 수입가가 영업비밀이라면, 관세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관세청은 그럼 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인하대 경제학부 정인교 교수는 수입가는 영업비밀이라고 볼 수 없고, 농수산물은 괜찮고, 공산품이라고 해서 영업비밀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관세청은 애매한 논리로 농수산물 수입가만 공개해온 걸 정당화하고 있지만, 제가 느낀 것은 수입업체 눈치보기입니다. 수입업체의 ‘입김’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특정 품목의 수입가가 영업비밀인지 여부가 결정돼온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 이걸 공개하면 또 논란이 생긴다”는 관세청 관계자의 설명이 못내 찝찝합니다. 통상 분쟁이 생기지 않을 품목을 골라 수입가를 공개하는 섬세한 전략을 짜거나, 평균 수입가격은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탄탄한 논리를 세우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기대일까요? 관세청이 지금이라도 수입가 공개 방안을 강구해 서민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관세청이 관세법을 열심히 해석하기보다는, 우직하게 집행하는 기관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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