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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배가 휘두른 주먹에 '반신불수'

폭력에 노출된 대학 운동부

[취재파일] 선배가 휘두른 주먹에 '반신불수'
 8시 뉴스를 앞두고 편집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편집 중인 뉴스 주인공의 어머니였습니다.

 "기자님, 우리 상필이가 응급실에 다시 왔어요."

 한상필.
 급성뇌경색, 이로 인한 언어장애, 그리고 오른쪽 마비.
 이제 20살을 갓 넘긴 한 청년의 인생은 두 달 전부터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지난 3월 9일 밤 11시 50분쯤, 전라북도에 있는 한 대학의 사격부 숙소 1층에는 1학년과 2학년이 모두 죄인처럼 모였습니다. 토요일이었던 그날 외출을 나갔던 2학년인 한상필 군과 동기는 귀가 시간인 11시를 넘겨 술을 마시고 숙소에 늦게 들어왔습니다. 선배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늦은 두 후배를 혼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의 훈계에 한군은 '죄송하다. 내가 잘못한 거니 다른 후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끝나자 선배는 한 군의 빰을 때리고 발길질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먹으로 한 군의 턱을 때렸습니다. 한 군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폭력_500

 선배의 훈계는 여기서 끝이 났습니다. 한 군을 비롯한 후배들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한 군의 상태가 안좋았습니다. 부랴부랴 감독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감독이 한 군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턱이 부서졌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한 어머니는 아들의 모습이 이상했습니다. 말이 어눌하고, 기억을 잘 못했습니다.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를 기억해 내고 쓰는데 수십 분이 걸렸습니다. 턱만 부서진 게 아니었습니다. 급성 뇌경색. 선배에게 턱을 맞으면서 뇌에 피를 공급해 주는 혈관을 다쳤습니다. 밤새 한 군의 뇌는 신선한 피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두 차례 마비가 찾아왔습니다. 첫 번째 마비는 곧 회복됐지만, 두 번째 마비 이후에 한 군의 오른쪽 몸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언어장애도 쉽게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두 달간 한 군은 갑자기 찾아온 장애와 싸우고 있습니다.

 평소에 매일같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던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누구보다 착한 아들이었고, 성실한 아들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사격장갑이 다 떨어져도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 참고 참았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키우면서 말썽한번 부리지 않고 자기일을 성실히 해 나갔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갑자기 찾아온 장애에 어머니는 매일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조사에서 김 군은 죄송하다고 하는 한 군의 말에 더 화가 났다고 진술했습니다. 술에 취해 선배에게 대드는 것처럼 느낀 것 같다고 사건을 담당했던 조사관은 취재진에게 전했습니다. 경찰은 김 군을 상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했습니다. 그리고 선수자격도 3년간 정지됐습니다.

 김 군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이들을 가르쳤던 감독도 자진 사퇴했습니다. 때린 학생도 맞은 학생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인데 부모님들도 너무 힘들어하고 자신도 괴로워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학교도 폭력사건이 발생해 두 달간 나름의 노력을 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군에 대해서 유기정학 처분과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한 군을 위해 학교에서 위로금도 모아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격부가 학교 소속이 아니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사격부는 체육회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학교는 이름만 빌려주고 있다는 겁니다. 

 학교는 단지 체육특기생으로 학생들만 선발해서 수업만 할 뿐이지 사격부 운영과 관리감독 책임은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이게 우리나라 비인기 종목의 한계라고 털어놨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비인기 종목 운동선수들은 거의 이렇게 학교에는 체육특기생으로 들어와 외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푸념하듯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숙소 일회용

 사건이 일어난 사격부의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사격부의 숙소는 학교 안에 없었습니다. 사격부의 숙소는 학교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곳의 한 주택가에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숙소 안에는 술병이, 싱크대에는 먹고 씻지 않는 그릇들이, 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침구류가 깔려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한 시간은 점심 때였는데 아직도 이불에서 나오지 않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규율이 강조되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엄한 선배이어야 하고 때로는 따끔한 훈계도 필요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집단생활을 어릴 때부터 해왔다면 더욱 수직적인 문화가 익숙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그 규율이, 따끔한 훈계의 방법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관행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폭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기 때문입니다. 

 한 군은 국가대표를 꿈꾸던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습니다. 성실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던 꿈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한 군은 너무나 선한 눈을 가진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께 미안해하고 빨리 재활해서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매일매일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효자였습니다. 때린 김 군도 후배들 사이에서는 항상 자기 관리 철저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좋은 선배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폭행사건이 있던 날 한 군은 김 군에게 전화를 걸어 술을 한 잔 하자고 할 정도로 사이 좋은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감독도 10년 이상 넉넉치 않은 환경에서 학생들만 바라보고 지도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한 가족의 가장입니다. 이들의 삶은 한차례 주먹질로 모두 달라졌습니다.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꿈을 잃었습니다. 세상에 맞을 짓도, 맞을 만한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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