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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박근혜 대통령은 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취재파일] 박근혜 대통령은 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5월 18일 오전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 북구 운정동  5·18 민주묘지. 현직 대통령으로는 5년 만에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기념사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제 5.18 정신이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행복이고,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각계각층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서 국가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길에 민주화를 위해 고귀한 희생과 아픔을 겪으신 여러분께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행사 막바지에 접어들어 논란이 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 연주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념식장 맨 앞줄에 앉아있던 강운태 광주광역시장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등이 일어났습니다. 강운태 시장은 태극기를 노회찬 공동대표는 오른손을 휘저으며 따라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기념식장 한쪽에 앉아있던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도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 기념식전에 임을위한 행진곡을 부르실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보면 아시겠죠."라고 짧게 말했었는데 팔을 휘젓지는 않았지만 입이 움직였습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도 열심히 따라부르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잠시 뒤 박근혜 대통령. 첫소절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념식장 무대 왼편에 위치한 인천 오페라합창단을 잠깐 쳐다보더니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옆 자리에 있던 강운태 시장 태극기를 건넵니다. 박 대통령이 일어나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 현오석 경제부총리, '제창거부' 논란에 중심에 있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도 모두 함께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합창 내내 서 있었지만 노래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끝난 뒤 기념식장 뒷편 관객석으로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나왔습니다. 흰 소복을 입은 중년의 여성들, 검은색 복장을 한 중년의 남성들은 반주가 끝났지만 또 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통령이 퇴장한다는 사회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의 제창은 계속됐습니다.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를 놓고 이번 5·18 기념식은 시작전부터 소란스러웠습니다. 며칠전 일부 종편에서는 탈북군인이라는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군이 5·18 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이어갔고 보수성향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5·18을 폄하하는 글들도 올라왔습니다. 5·18 전야제가 있었던 광주 금남로에는 5·18 역사를 왜곡 매도한 종편의 퇴출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매달렸습니다. 국가보훈처의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조치에 대한 후폭풍도 거셌습니다. 광주 민주묘지 입구에서는 5월 단체 회원들이 입장을 거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지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시민사회단체 회원은 구묘역에서 별도의 기념식을 열어 항의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기념식 도중에는 일부 시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요구하며 항의하다 행사진행요원들에게 이끌려 퇴장당하기도 했습니다. 연행된 시민들은 끌려나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을위한 행진곡)이 노래를 부를라고 이 곳에 온디 못 부르게 하면 안되는 것이제~"…"대통령이 왔다고 혀서 쪼까 기대를 혔는디…됐어. 됐당게. 나가 나 발로 걸어나갈 것이여…."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5·18 기념식이 온전한 기념식이 되지 못했다." 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부터 말했던 대통합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 5·18 기념식이 반쪽 짜리 기념식이 돼 버렸다"고 꼬집었습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국가보훈처가 합창을 결정하면서 혼선과 갈등을 빚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국가보훈처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5·18 묘역에서 당시 행방불명된 열사들의 묘역을 둘러보며 5·18 희생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과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야당 대표 시절 당시에도 호남에서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던 것일까요? 기념식을 경건하게 지켜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어찌됐건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한 야당의 불편한 반응들을 보면 광주 시민들의 실망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굳어있는 표정과 제창 거부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현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 대선후보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박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도 박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만의 대통령 참석이 높게 평가할 일이라면 오히려 대통령의 발언대로 국민행복과 국민통합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목입니다. 5·18 왜곡 보도 논란과 임을위한 행진곡 제창거부 논란, 여기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파문으로 추락했던 청와대의 이미지가 대통령의 제창으로 일거에 반전시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세금 한푼 들지 않으면서도 정쟁으로 인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이 절약됐지 않았을까요? 내년 5·18 기념식때는 박근혜 대통령 어떤 선택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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